그렇게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Part 1

긴 방황의 끝

by 아는 언니

‘앞으론 집에 오지 말아라.’


늦은 밤, 근무를 하던 중 아버지에게서 받은 장문의 문자는 그 어떤 부연 설명도 없이 저 한 문장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쿵’


사고의 흐름이 툭 끊어지면서 나는 소리인가? 보이지 않는 완력이 꽉 움켜 지었다 놓기를 반복하기라도 하듯 요동치는 심장에서 나는 소린가?

적어도 나에게는 갑작스럽게 불운한 일이 터지면 머리가 이해하는 속도보다 몸이 반응하는 속도가 빨랐다.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옮기다 손에 힘이 빠져 놓치는 찰나 재빠르게 발을 피하는 본능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지. 의식의 흐름대로 사고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언가 또 사달이 났구나.’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자존심이 센 아버지는 과부하가 걸린 일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다 ‘펑’ 소리를 내며 터지고 나면 그때서야 이렇게 되었다고 결과를 알려주셨다. 그동안의 경험치가 있었기에 빠르게 머리를 식히고선 다음 날 오후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밤이 되어 본가에 도착해서 아버지를 부르니 몰라보게 야윈 사람이 쓰러질 듯 불안한 걸음으로 나와서 나를 맞아주셨다.


‘이 상황은 뭐지?’


평소 여느 부녀처럼 살가운 전화 통화는 안 해도 안부 정도는 꼬박꼬박 문자로 주고받았는데 왜 이렇게 되실 때까지 아무 말씀도 없으셨던 건지. 안방에 앉아 아버지가 먼저 말씀을 꺼내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몇 달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간에 큰 혹이 있다고, 암일지도 모르니 빨리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 순간부터 모든 걸 다 내려놓으시고 몇 달을 혼자 집에 계셨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는 위암 선고를 받으셨다. 너무 늦게 발견한 탓에 몇 차례 수술을 받으셨음에도 결국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약간의 빚만 지고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누구 하나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어도, 각자의 가슴 속에 멍으로 남았을 테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자 그 오래된 멍이 아버지를 꼼짝달싹 못 하게 암흑 속으로 가두어 버린 것이다. 그 어둠 속에서 아버지는 모든 걸 다 포기한 채 변변치 않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자신의 흔적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계셨다.




너무 예상 밖의 상황을 조우하고 나니 눈물도, 화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피가 차게 식어가는 기분이었다. 일단은 병원에 근무하고 계시던 외숙모께 전화를 드렸다. 우리 집 상황을 대충 알고 계시던 외숙모는 설명을 들으시더니


“윤정아, 네가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빨리 아버지 형제분들께 전화해라. 이런 큰일은 너 혼자 감당 못 한다.”

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다.




아버지가 거의 연을 끊고 사셔서 고등학생 때 이후론 만나지 않았던 큰고모께 전화를 드렸다. 고모는 지금 갈 테니 얼른 근처 병원에 아버지를 입원시키라고 하셨다. 늦은 밤 고모들과 삼촌이 병원에 차례차례 도착하셨고 여윈 아버지를 보시더니 그 누구도 가벼운 인사치레도, 왜 이렇게 되었냐는 원망의 말도 하지 못하셨다.

병원에서 순차적으로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똑같았다. 암일 수도 있으니 더 큰 병원에 가라는 것이었다. 고모는 자신의 집이 있는 울산으로 가서 아버지를 입원시키자고 하셨다. 내가 아버지 곁을 지켜야 했기에 그동안 일했던 카페로 전화해서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바리스타로 들어가던 해 논현동에서 24시간 영업하던 카페는 우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서 근방에 2층 대형 카페가 들어서더니 나중에는 24시간 카페가 5~6개로 늘어났다. 심상치 않은 상황을 감지한 첫 번째 사장님은 재빠르게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셨고, 아버지의 병환으로 휴가를 쓰고 부산에 내려온 시기에 두 번째 사장님마저 새로운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던 상황이었다. 마침 가게를 인수하신 분은 그전에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이었던지라 내가 사정을 설명하며 그만두겠다고 하자 흔쾌히 퇴사 처리를 해주셨다.




그렇게 어느 것 하나 걸리는 일 없이 순리에 따르듯 자연스럽게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곤 병실에서 먹고 자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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