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Part 2

마음의 힘

by 아는 언니

병실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아버지의 거동을 도와드리고 식사가 나오면 챙겨드리고, 병문안 오신 분들을 맞이하고 비슷한 일상이었지만 한정된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방울처럼 잡고 싶어도 움켜쥘 방법 따윈 없었다.


새로 입원한 병원에서는 아버지 상태를 듣더니 이 정도면 통증이 심하셨겠다며 진통제를 달아주셨다. 강한 약 성분 탓에 아버지는 검사받는 시간,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주무시기 바빴다. 노곤하게 주무시는 아버지 곁을 힘든 내색 없이 묵묵히 지키는 나를 보고 주변에서는 대단하다고 칭찬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병실에서 나 또한 요양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지?’란 돌덩이를 늘 가슴에 이고 다녔는데 아버지 안위를 챙기느라 내려놓고 나니 그렇게 숨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흙탕물에서 가라앉지 않으려 허우적거리다 닻에 발이 묶여 바닥을 딛고 서니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발버둥 칠 필요가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본가에서부터 이 병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며칠 동안 아버지 옆에만 붙어있었는데 한 번도 통증으로 힘들어하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건강검진 받은 병원에서는 아버지께 이 정도 크기면 말기일 수 있다고 빨리 큰 병원에 가보시라고 했다는데 말이다. 아버지 안색도 조금씩 돌아오는 거 같아서 암이 아닌 거 같다고 말씀드렸지만 말라서 뼈만 남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셨다.


첫 번째 조직 검사 결과,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간에 이렇게 큰 덩어리가 생길 정도면 암일 확률이 높으니 한 번 더 검사를 진행하자고 하셨다. 그리곤 며칠 후 꼼꼼하게 여러 부위에서 조직을 채취하셨다. 하지만 두 번째 결과에서도 암은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저 조직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고 싶으면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할 거 같다고, 하지만 암은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고 최종 진단을 내렸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빠르게 회복하시기 시작했다. 새벽이면 곤히 자는 나를 깨우기 미안하셨는지 혼자 화장실에 갔다가 넘어지셔서 간호사가 나를 깨우러 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근데 암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아버지는 혼자서 조금씩 거동하기 시작하셨다. 동시에 안쓰러울 만큼 앙상해진 몸도 조금씩 체중이 늘기 시작했다.



난 ‘소원’이나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걸 오래전에 그만두었다. 어린 시절 보름달을 보며 빌었던 소원이 실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에서도 병에 걸리신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내 눈앞에 ‘마음의 힘’이라는 게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희망을 내려놓고 모든 걸 다 포기한 순간 아버지는 아픈 환자처럼 살아가셨다. 그러다 오진이라는 진단을 받자 다시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하셨다.




요즘에도 가끔 그때의 이야기가 나오면 아버지는 아쉬워하신다. 자신이 너무 쉽게 포기하는 바람에 건강을 완전히 되찾기까지 6~7개월의 시간을 요양병원에서 지냈다고. 건강검진 때부터 더하면 거의 일 년을 ‘가짜병' 때문에 치료받으신 거다. 그럴 때마다 난

“그래도 아빤 기적의 사나이예요.”

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아버지의 유일한 가족인 난 병실을 지키는 동안 그 어떤 버팀목도 되지 못했다. 대학교도 그만두고 서울에서 카페 일을 하다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그마저 그만두고 병실을 지키고 있는 내게 어른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셨다. 그리고 암은 아니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환자의 모습을 한 형제에 대한 배려인지 그 뒤로 집안에 큰일이 생겨도 우리 쪽에는 연락을 주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가슴을 찌르는 가시 중 하나가 형제 중 가장 어렵게 사는 형편이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아버지는 형제들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했고 그러면서 사이가 소원해져 버렸다. 그런데 하나 있는 딸마저 제 앞가림 못하고 이젠 백수라고 하니 아버지의 무능력이 그대로 유전되었다는 듯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보셨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렇다 할 경력도 없고, 수완이 있는 것도 아닌 내가 ‘고졸의 백수’라는 불안한 위치에서 벗어나려면 그럴듯한 타이틀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어긋나기 시작했던 대학교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대학교 졸업장을 받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이 많은 졸업생’이라는 애매한 직함만 얻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던 그때의 상황에선 큰돈 들이지 않고 ‘학생’이라는 무리에 속할 수 있는 ‘공부’가 제일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였다. 여러 일을 하며 방황도 하고 끊임없이 고민한 시간이 있었기에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난 29살에 다시 대학교 1학년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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