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결이 맞는 사람은 따로 있다.

인간관계가 버거울 때

by 아는 언니

내 인생의 암흑기를 꼽는다면 29살 대학교에 재입학하던 시기일 것이다. 졸업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데 이렇게 시간과 돈을 들여 사서 고생하는 게 맞을지. 머릿속은 온통 고민과 걱정으로 가득했고, 덕분에 수심이 짙은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겐 무심한 채 학교에 다녔다.


03학번을 그대로 달고 1학년으로 재입학했을 때 같이 수업을 듣던 후배들은 12학번이었다. 얘기해보지 않아도 그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디에 관심이 많을지 알 거 같았다. 9년 전, 나 또한 막 입학한 신입생 시설을 경험했었고 그때 그 시기를 무난하게 보내지 못해서 이렇게 다시 돌아온 거였기에 옆에서 조언이랍시고 오지랖 부릴 여유도, 나에 관해 묻는다고 해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들과는 거리를 두었고 강의실 구석 자리가 내 지정석이 되었다.


그렇게 아무와도 인사조차 하지 않고 겹겹이 둘러쳐진 보호막 안에서만 생활했는데, 그런 나의 관심을 끈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전공 강의가 몇 개 겹쳐서 수업이 끝나고 종종 마주칠 때면 항상 자신보다 체구가 작고 유약해 보이는 동기 한 명을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챙기는 손길이 서툴러서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 아이면 되겠다!’

오전 강의가 끝나자 나도 같이 점심 먹어도 되냐고 먼저 말을 걸었다.




20대 초반 때 난 그냥 사람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같이 놀자며 장난감을 물고 먼저 다가가는 한 마리의 강아지 같았다. 사람이 좋아서 내 곁에 다가오는 사람은 다 반갑게 맞아 주고, 상대방이 부탁하지 않아도 오지랖으로 먼저 이것저것 챙겨대느라 바빴다. 그런데 20대 후반이 되어서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니 타인에게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게 보였다.


일 예로 동창 중에 걷는 걸 너무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둘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고 하면 말 다 한 거지) 내가 서울에서 잠수 타고 지내던 시기에 친구는 경기도에 있는 초등학교에 선생님으로 부임했다. 어떻게 연락이 닿아서 종종 만났는데 그때마다 서울 등지를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걸으면서 이야기 나눴다. 나도 기초 체력이 좋은 편이라 곧잘 따라다녔다.


그런데 그 친구와 헤어지고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온통

‘오늘 실수한 일은 없나, 다음에도 나랑 만나주겠지.’

따위의 고민만 하는 나를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반나절 동안 그 친구를 따라서 걸어 다니느라 화끈거리는 내 발바닥은, 단단하게 뭉쳐서 알이 배긴 내 종아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모든 관심사가 내가 아닌 상대방한테로 향하고 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항상 비슷한 식으로 행동했다. 그야말로 주.객.전.도된 상황!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얼마나 좋았는지, 얼마나 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나랑 만나는 동안 즐거웠고 그래서 다음번에도 만나자고 하면 나와줄지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날 있었던 일을 곱씹는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만약 내가 실수한 걸 찾아낸다면 다음번에는 그러지 않도록 더 신경 써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겠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 쓴다고 해도 정작 상대방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동안 이렇게 쓸모없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썼던 걸까.


나 스스로가 바보 같으면서도 가엽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주’가 타인이 아닌 ‘내’가 되기 위해서 마음을 달리 먹었다.

‘내가 맞춰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랑 결이 비슷한 사람을 찾자.’


어느 곳이나 무리 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능력이 좋아서, 외모가 뛰어나서, 혹은 매너와 화술이 수려해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 역시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그런데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은 누구나 친해지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안 보이는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묵묵히 해가는 사람이다. 약간은 어설퍼서 뚝딱뚝딱거리는 사람.




학교에서 비슷한 결의 동생들을 4명 만났고 현재도 종종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뚝딱이들답게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사는 동생도 있고 아직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동생도 있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을 만나서 응원하게 되는 건 내가 예전에 했던 고민, 혹은 지금 하는 고민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모습 때문이다.


이십 대 시절 혼자 방황하면서도 소중히 지켜냈던 생각의 씨앗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된 것처럼 동생들 또한 9년 뒤 내 나이가 되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 거라 믿는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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