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맞지 않는 일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언니 미안해요.....’
대학교 동생이 카톡으로 보낸 사진에는 마음속으로 겪은 혼란과 힘듦이 그대로 손목에 붉은 꽃이 되어 바르르 떨며 호흡하고 있었다. 꽃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미처 다 세기도 전에
‘언니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미안해요.’라는 내용의 카톡이 왔다.
붉은 꽃을 피우면서 동생의 가슴은 얼마나 시리고 아렸을까. 마음의 통증이 너무 커서 조금은 무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손목에 꽃을 새긴 걸까? 꽃잎이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보며 무섭진 않았을까? 그 아이 마음에 난 심연의 깊이가 얼마나 깊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나마저 동생의 가슴에 난 짙은 구덩이로 빠져들면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할 거 같아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선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신호음이 길어지기 전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언니.....”
“괜찮아.”
최대한 내가 낼 수 있는 차분하고 가벼운 목소리로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 사건이 있기 4년 전쯤부터 ‘무언가 이상한데, 이러면 안 될 거 같은데.’라는 찜찜한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다. 대학교 졸업 후 취업은 포기하고 야시장을 시작했을 때, 흔히 말하는 오픈빨로 야시장이 손님들로 미어터져서 나와 아르바이트생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다. 그래서 대학 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주말이면 부족한 일손을 메우러 부산에서 울산까지 와주었다.
하루치 장사가 끝나고 그날 손님은 몇 명이나 왔는지, 얼마를 팔았는지 헤아리지도 못한 채 기진맥진해서 개지 못해 구석으로 밀어둔 빨래 더미처럼 방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간신히 씻고 일단 잠부터 청하자는 생각에 누웠는데 동생이 옆에서 목소리를 내었다.
“언니, 저 요즘에 우울증 약 먹어요,”
“응, 네가? 왜?”
“그냥 일이 힘들어서요. 심각한 건 아니고 가볍게 처방받아서 먹고 있어요.”
내가 한창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대학교 동생 4명 중 2명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왕창 돈이나 벌어보자는 목표로 야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동생들도 일에 적응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우울증 치료를 받을 아이가 아닌데 싶었지만 힘들게 들어간 걸 알기에, 공무원이 된 걸 부모님이 너무나 좋아하신다는 걸 알기에 왈가불가하지 않았다.
"초년생이라 그런가 보다, 시간 지나고 적응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뻔한 위로의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간간이 동생을 만날 때면 안부를 물었고
“언니 제가 분명히 안 된다고 했는데 민원인이 우겨서 부동산 관련 행정처리 받아놓고는 일이 잘못되니까 저한테 소송 걸었어요.”라며 상황을 설명하였다. 혹시라도 업무적인 실수는 하지 않도록 매일 밤늦게까지 남아서 관련법 공부하면서 잔업을 하는 동생인데 그 노력이 무상하게 억울한 일이 터진 것이다.
“그래도 시간 지나면 해결되겠죠.”라며 동생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야시장을 접고 공기업에 취업해서 부산에 정착할 때쯤 동생의 얼굴에선 그 실낱같던 미소마저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일이 터진 것이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동생을 보며 주변에선 다 일을 그만두라고 말렸고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던 동생은 고민하다 1년의 병가를 썼다. 그동안 힘들게 버텼는데 일단은 푹 좀 쉬게 두자는 생각에 어떻게 지내는지 지켜만 보았다. 그러다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지자
“내가 인천에서 기관사 했잖아, 너도 이거 준비해보는 게 어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정도면 공기업도 들어올 수 있어. 너처럼 책임감 큰 사람이 주기적으로 담당업무가 바뀌는 공무원보다 꾸준히 한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기관사가 적성에 잘 맞을 거야.”라고 조금씩 설득에 들어갔다.
일이 힘들어서 우울증 약을 먹는 아이를 다시 레이스에 참여하도록 출발선상에 세운다는 건 정말 가혹한 일이다. 아무것도 안 하려는 사람에게 다시 달리라고 강요하는데 얼마나 심적으로 큰 부담감이 오겠는가. 하지만 이 아이가 다시 공무원으로 돌아간다면 그땐 정말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거 같았다.
달항아리처럼 둥그런 아이가 계속 네모난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니 여기저기 깨지고 생채기가 날 수밖에. 차라리 하얀 모찌처럼 말랑말랑하기라도 하면 살살 매만져서 모양을 다듬을 텐데, 대쪽 같은 성격이라 그건 도저히 안 되고 이러다 정말 잘못되기라도 하면 산산조각이 날 거라는 게 예상되었다.
그 이후의 과정은 내가 짧은 글로 쓰지 못할 만큼 동생에겐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과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불안증을 이겨내고 이 아이는 결국 우리 회사에 입사하였다.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원래의 달항아리가 되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지내고 있다. 물론 한 번 흠이 나고 깨진 조각이 어찌 단번에 매끄러워질 수 있으랴. 하지만 생채기 난 조각, 금이 간 몸통 모두 자신의 소중한 일부임을 알기에 조심조심 이어붙이며 살고 있다.
당신도 지금 혹시나 당신에게 맞지 않는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힘들어하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 곳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무형의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다각형의 별 모양을 한 사람은 아닌지. 나에게 맞는 자리만 찾는다면 충분히 반짝반짝 빛날 존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