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긴 터널도 끝이 있기 마련
갓 로스팅한 원두의 쌉싸름한 향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넘기니 끝맛이 새콤한 산미를 가졌다. 딱 내가 좋아하는 맛이다. 두꺼운 유리문을 밀어 가게로 들어서는 순간 바깥의 열기 따위에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냉기로 가득 찬 공간이 나를 맞았다. 여기서 잠시 쉬다 가야겠다는 생각에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는데 굿 초이스.
대기의 높은 습도와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의 콜라보는 마치 찜통 안에 든 만두를 찌는 듯 나를 눅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카페에 들어와 차가운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순간인가. 이제야 여름의 더위를 피해 바삐 걷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름휴가를 보내러 오랜만에 서울에 왔다. ‘놀 때는 무계획! 무조건 고!’라는 신념으로 검색하다 괜찮아 보이는 전시가 있어서 갤러리를 찾아왔는데 이 동네였다. 이십 대 후반, 앞이 보이지 않는 흙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여기 바위를 딛고 잠시만 숨 돌리다 가라고. 물속의 부유물이 가라앉고 나면 맑은 물에서 헤엄칠 수 있을 거라고 발 디딜 곳을 내어주었던 도시.
커피를 마시며 햇빛에 반짝이는 거리를 응시하고 있자니 고개 숙인 채 터벅터벅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고시 공부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신림동 고시원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여기서 무얼 해야 할지. 갑자기 없던 의지가 생겨 공시를 준비할 것도 아니고, 하는 수 없이 친구의 컴퓨터를 빌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다. 그때가 2009년 언저리로 한창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생기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바리스타를 구하는 구인 공고가 많았고 그 중 논현동에 자리한 프랜차이즈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원 원장님에게서 맛있는 커피의 비율은 원두 두 숟갈, 설탕 두 숟갈, 프림 두 숟갈이라고 배울 만큼 커피에 대해 무지했던 내가 바리스타라니. 그만큼 막 번성하기 시작한 산업은 수많은 인력을 빨아들였다. 동시에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손님에게 커피 원액이라 정말 쓰다고 일일이 말씀드려야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24시간 영업 매장으로 처음에는 주간 타임에 근무하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고선 월급을 더 준다는 말에 야간 타임으로 옮겼다. 밤 10시에 출근해서 막차가 끊길 무렵, 손님 대부분이 돌아가고 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낮 시간대, 바쁜 일상에 쫓긴 손님들이 남기고 간 고단함과 소란함의 흔적을 쓸고 닦으며 새로운 날을 준비했다. 아침 출근길에 짬을 내 들린 손님들을 응대하다 8시에 퇴근하면 그때부턴 나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늦은 잠을 청하러 고시원에 돌아가는 대신, 역삼으로 청담으로 신사로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대로를 따라 많은 사람과 차들이 바삐 움직이는 흐름 속에서 ‘어디로 가야지 나도 무리에 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걸었다. 휴일에는 한강, 노을공원, 대공원 등지를 돌아다녔다. 고시원의 좁은 방에서 답도 없는 문제를 푸느라 머리만 바삐 굴리느니 차라리 발을 놀리는 게 더 편했다.
고시원 방에 TV도, 컴퓨터도 없었던 난 공부도 하지 않으니 정말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잠수타기 전까지 책을 추천해주던 친구 덕분에 추리소설을 간간이 읽었는데, 관심사를 옮겨 자기계발서를 뒤적거리다 한, 두 권씩 빌려왔다.
뭔가 빨리 답을 찾아야 할 거 같은데 힌트조차 없어서 흙탕물 속에서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팔, 다리만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스테디셀러인 책들을 한 권씩 읽다 보니 나를 괴롭히던 고민과 걱정거리가 무엇이었는지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를 알고 정답을 찾았다고 해서 당장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생각들을 내려놓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타로카드 일을 할 때 사람을 응대하는 일이 나랑 잘 맞는 걸 알았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시작한 바리스타 일을 그전 공장일, 사무직, 학원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 2년을 채울 무렵 바리스타 일이 재밌었지만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여담으로 이십 대 후반의 누가 봐도 경상도 내지 부산 사투리를 쓰는 나에게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손님들이 많았다. 일을 잘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노안이라서 그랬는지 아직도 이유가 궁금하다.) 착실하게 돈을 모으며 서울에 정착할지, 아니면 다른 기회를 찾아서 움직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버지에게서 온 문자 한 통에 결국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안녕하세요.”라고 손님에게 인사하는 직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커피잔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느라 고개 숙이고 걷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15년 전 발끝만 보고 걷던 내가 오버랩되었다. 이제는 인생 좀 살아본 언니로서 그때의 나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많이 불안하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어서 답답하고 너 자신에게 실망도 컸을 거야. 그런데 빛이라곤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터널 속에서 포기하지 않았더라. 깜깜한 곳이라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해 헤매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도 했을 텐데. 그렇게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니.
정말 정말 정말 잘하고 있어. 그러니 고개 들고 어깨 펴고 당당히 걸어. 그 터널 끝에 네가 찾던, 너를 반갑게 맞아줄 길이 있을 거야. 그 빛 속에 네 자리도 분명히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