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사람의 소소한 위로
해가 지고 땅의 뜨거운 열기가 한차례 빠져나간 저녁이 되면 가벼운 복장으로 귀에는 에어팟을 꼽고 동네 산책로를 향해 걸어간다. 에너지가 남아 있어 운동다운 걸음이 가능한 날에는 한껏 흥이 나는 올드팝을 들으며 힘차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바쁜 한 주의 끝자락인 오늘 같은 일요일 밤에는 껄끄러운 찌꺼기들을 흘리고 조금은 시원한, 산뜻해진 기운을 담기 위해 느릿느릿 걸음을 옮긴다. 적당한 미디엄 템포의 곡들을 흘려들으며 동네 풍경을 눈에 담는다.
작은 천을 따라 길게 자리한 산책로에는 진입할 수 있는 입구가 많기에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적당한 골목을 골라 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차가 많이 다니는 이차선도로를 피해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에 낮의 열기를 아직도 집에서 식히고 있는지 골목엔 사람 그림자도 없이 한산하기만 하다.
그러다 대로에 가까운 골목 어귀에 다다르면 저가 브랜드 카페 앞에 길게 늘어선 배달 오토바이들을 볼 수 있다. 다들 일요일이라고 일찍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이 드는 건 아니구나... 캐리어에 담긴 음료를 싣고선 부우웅 소음을 내며 급하게 어딘가로 사라지는 오토바이들을 보니 누군가는 일요일 밤까지 일하고 있을 테지. 또 다른 이는 내일이면 시작될 한 주를 부정하며 밤의 끄트머리를 잡고선 조금이라도 천천히 흘러가라고 기도하고 있을 테지.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을 따라서 도착한 산책로엔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모습으로 분주히 몸을 움직이고 있다. 산책로 코트 한쪽에서 유튜브 음악을 틀어놓고 라인댄스를 추고 계신 어머님, 셔틀콧을 땅땅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신나게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부자(보통은 아버지의 승리로 끝날 때가 월등히 많다. 터벅터벅 셔틀콕을 주우러 가는 아들을 보면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 어린 자식에게 세상의 무서움을 몸소 보여주고 있으시구나 싶다.) 민소매 셔츠에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철봉을 하거나 러닝을 뛰고 있는 사람들까지 저마다 참으로 열심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거 같다.
그러다 좁은 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 위로 호기롭게 내려와서 한발도 내딛지 못하는 어린 손자를 앉고 이쪽으로 건넜다 저쪽으로 건넜다 하시는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컨디션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적당한 거리의 산책을 끝내고선 이제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려면 나도 이쯤에서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혹시나 손자를 안은 할아버지가 불편하시지 않도록 저편으로 다 건너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징검다리 위를 통과하였다.
우리 아버지도 저런 손주 하나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벌써 40대 초반의 나이에 접어든 나는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오는 한 주의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혼자서 이렇게 조용히 산책로를 걷고 있네...
늦은 나이에 공기업에 입사하여 뒤처진 시간을 따라잡겠다는 마음으로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적응하고 있다. 가끔 소개팅도 하고 있고, 새로운 무리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관심 분야의 취미 활동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20년 뒤면 지금의 회사도 퇴사할 텐데 늦은 만큼 적은 연금으로는 노후가 보장되지 않을 테니 제태크 공부를 하고 실제로 투자도 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정말 너니까 그렇게 한 거라며 응원을 보내주지만 정작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많다. 남의 편 같은 배우자도 없고, 나 닮은 자식도 없는데 어떻게 지금의 시간을 보내야 하고, 어떤 모습의 노후를 꿈꾸어야 할지.
남들이 말하는 ‘평범’을 못 가져서 내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힌트를 얻을 만한 정답지는 없지만 이왕이면 잘 하고 싶다. ‘저 사람은 저 사람만의 방식으로 멋있게 혹은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라는 걸 보여줄 수 있게.
그 과정을 위한 상념들과 그리고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걸어온, 절대 순탄치 않았던 걸음의 기록을 여기에 남겨보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저 사람도 저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라고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저 사람이 저렇게 했다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자극도 될 것이다.
누군가가 제 글에서 삶의 실마리를 얻길 바라며 아는 언니 글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