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분명 집에만 두었고 밖에서 꺼낸 기억이 없다. 순간 그 생각이 스쳤다. 얼마 전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속 시나가와 원숭이의 이야기. 인간을 사모하는 그 원숭이는 인간 여성에 사랑에 빠지면 차마 별 다른 것은 못하고 그 사람의 이름을 훔친댔다. 방법으로는 사모하는 여성의 이름이 담긴 물건. 예컨대 민증이나 운전면허증 따위의. 그 후 원숭이는 전력을 다해 그의 이름을 훔치고 해당 여성은 이따금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고. 그 책을 읽고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신분증을 잃었다. 최근 원숭이를 만난 기억도, 내 이름을 까먹은 적도 없다. 과연 시나가와 원숭이가 내 신분증을 가져간 걸까. 기이하고 요상한 일. 뭐가 어찌됐건 민증을 잃어버린 사실은 너무 슬프다. 입이 절로 나온다. 삐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