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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Jan 18. 2022

부산 미식 랩소디(feat.미국인남편)

익숙함과 불편함 그 사이에서

"너랑 내가 부산 또 가나 봐라."


이런 모진 한 마디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산 여행.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나와 남편은 다시는 부산을 같이 가지말자고 한걸까?


코로나 시대 이전 남편과 나는 자주 해외여행을 다녔었다. 시어머님께 죄송하지만 시댁보다는 우리가 가고싶은 나라였던 스페인, 베트남, 일본 등 다니면서 재미있게 여행했더란다. 하지만 한국 내에서는 관광보다는 펜션이나 숙소를 잡고 강아지와 고기구우며 쉬는 여행을 택했다. 하지만 이번 부산 여행은 우리가 해왔던 여행과 차원이 다른 여행이었다. 

광안리에서는 사이 좋았던 우리

이 이야기를 풀기 전 알아야할 것은, 남편은 지극히 내향형이다. MBTI는 성격척도로, 스펙트럼에서 어느정도에 위치해있는지에 따라 성격을 알 수 있는 것이라면, 남편은 I중에서도 극 I 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말도 잘하고 신나하지만, 그 신나게 놀았던 시간만큼 자신이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자신의 기분이 극도로 슬플 때나 우울할 때에는 나와 함께하는 시간도 힘들어할 때가 있다. 연애할 때에는 왜 나한테 털어놓지를 못할까 서운해하기도 했지만, 혼자 성찰하면서 나름대로 치유를 하고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그러려니 한다. 나는 외향과 내향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박쥐같은 사람인데다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할 때 엄청난 행복함을 느끼는 지독한 피플플리저기 때문에 동행자에 많이 맞춰주는 스타일이다. 바르셀로나의 재래시장을 한 번 더 가보고싶다는 마음보다는, 남편이 저녁에 더 즐길 수 있기 위해서 숙소에서 커피한잔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시대에 여행을 제대로 못다니면서 이곳 저곳 다니고싶은 마음이 억눌러지다보니 나는 이번 부산 여행에서 새로운 것을 많이 해보고 싶었다. 서울에서는 먹어본 적 없는 음식도 먹어보고 싶고, 근처 산을 올라가 멋진 부산 경치도 감상하고 싶었으며, 소주도 한 잔 걸치며 취기 오른 다이나믹한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부산에서 가보고 싶은 곳을 한 달 전부터 물색하고 구글 문서까지 만들어놓았다. 이 부산 여행에서 남달랐던 건 나의 계획성 뿐만 아니었다. 해산물 좋아하는 내 동생과 고기를 좋아하는 동생의 남자친구까지 동행하게 된 것이다. 만족시켜야할 사람이 남편 뿐만 아니라, 2명이 더 늘었다. 

모든 ktx역 앞에는 종교인이 많은 것 같다

부산역에 도착해서 부산역 바로 앞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들렀다. 원래 신발원이라는 만두집을 가고 싶었으나, 어마무시한 웨이팅으로 인해 그 앞에 있는 상해탄이라는 집을 방문했다. 짬뽕을 좋아하는 동생에게는 더 걸맞는 곳이었다. 짬뽕과 짜장면 둘 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깊게 맛있는 맛이었다. 먹고싶었던 만두도 주문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만두피가 쫄깃쫄깃해서, 남편과 동생남친분 둘 다 너무 잘 먹더란다. 

클린했던 짬뽕

모두가 다 정말 잘 먹었던 곳이었고, 중국음식의 기름과 면발로 인해 배부른 배를 쥐고 첫 번째 식당 성공!을 외치며 일어났더란다. 하지만, 중국음식은 참 실패하기 힘들고, 입맛 까다로운 동생이 좋아하는 짬뽕을 먹었으니 성공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웠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맛이었기 때문에.

군만두

다른 부산여행과 다르게 이번 숙소는 서면으로 잡았다. 부산역에서도 그렇게 멀지 않고, 가고싶었던 황령산도 서면에 위치하기 때문. 게다가 숙소는 21층에 위치한 투룸 오피스텔이었는데, 야경이 그렇게 멋졌다. 도시가 큰 창으로 훤히 다 비치고, 아침에는 해돋이 광경이 절경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부산도 방역수칙으로 인해 영업시간이 오후 9시로 제한되어있었던 것. 도시여행의 맛은 늦게까지 술 한잔 걸치다가 들어와서 씻고 자는 건데, 1차로 저녁밥 먹으면 숙소를 들어와야 했던 것이다. 방역수칙 덕에 우리는 이 숙소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냈고, 우리 숙소 앞에 미니스톱 편의점은 매출이 늘었을 것이다.

숙소 풍경

숙소에서 짐을 풀고 나서, 우리는 광안리로 향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니 마음이 시원해졌고, 남편은 10년전에 왔던 부산여행을 회상하며 지금까지 영업하는 술집을 보고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멋진 광안대교를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부산 본고장인 고릴라 브루어리라는 맥주집으로 갔다. 맥주는 너무 맛났고, 외국인도 많았으며 귀여운 강아지도 있었다. 나와 남편은 여행다닐때마다 그 지역의 수제맥주 양조장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곳이 싫을 이유가 없었다. 두 잔 정도 마신 후, 우리는 남편은 조개를 잘 먹진 못하지만, 새로운 경험이니까 동생이 좋아하는 조개찜을 먹으러 가자고 결론을 내렸다.

넘 멋졌던 맥주라벨

동생의 추천으로 방문한 '지금, 조개'라는 곳은 가격이 저렴하진 않았지만, 내가 살아생전 본 조개 중에 가장 큰 조개들이 찜기에 나왔다. 문어 한마리도 그 위에 얹혀있었고, 전복도 몇 개가 들어있었으며, 조개들이 아주 실했다. 조개 아래에는 조개로 달여진 육수가 자리하고 있었고, 한 술 떠서 먹었을 때에는 바다가 내 입으로 들어오는 맛에 소주를 불렀다. 남편도 잘 먹는 듯 했다. 일단 비주얼이 남달랐으니 말이다. 하하호호 웃으며 저녁을 먹다보니 통금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부산꼼장어를 포장해서 숙소에서 한 잔 더했다. 

어마어마한 조개찜

이튿날 아침, 우리가 마신 맥주와 소주, 꼼장어가 여전히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걸 확인하고는 "등산가자"를 외쳤다. 동생과 남편은 밍기적 거렸지만, 전날 알코올 해독과 맛난 음식을 또 먹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끌고 나왔더란다. 하지만 30분 후에 과거의 내 입을 후려치고 싶었다. 숙소에서 보이는 황령산이라는 곳을 갔는데, 경사가 (체감상) 70도정도 되어보였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길밖에 없었고 중간중간 계속 평평해 보이는 바위에 눕고싶은 유혹이 엄청났다. 하지만 흐르는 땀(이라고 쓰고 육수라고 읽는다)을 닦으며 올라가다보니 욕심이 생겨 결국에는 봉수대라는 정상까지 올라갔다. 전망은 미세먼지때문에 조금 흐렸지만, 저 멀리 바다와 산이 어우러지는 멋진 풍경을 보니, 뿌듯함에 숙취가 가시고 점심 먹을 생각에 너무 기대가 되었다.

봉수대에서의 부산 풍경

점심으로 돼지국밥을 먹고, 숙소에 들어와서 낮잠을 한숨 잤다. 깨어보니, 남편은 헤드폰을 낀 채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카페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저녁먹으러 가자고 하니, 저녁으로 무엇을 먹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그때 말한것처럼 삼겹살집에 가냐고 물어보길래, 문화양곱창이라는 곳과 고기집 둘 중에 선택해야하는데 다같이 얘기해보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심 문화양곱창이라는 곳에 가고싶었다. 서면에 유명한 곱창센터인데, 바 좌석에 앉아 아주머니가 곱창을 구워주시고 술 한잔 기울이는 그런 곳이다. 서울에서는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고, 나는 지독한 곱창러버이기 때문에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 곳에서 즐기고 싶었다. 동생은 안주 먹지 않는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 논외대상이였기에 나와 동생 남자친구, 남편이 결정해야 했다. 남편은 곱창을 사랑하지 않지만, 동생 남자친구분은 곱창을 사랑하신다(많은 한국인이 그러하듯이). 그래서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문화양곱창이라는 집에 가게 되었다.

문화양곱창

간판에서 드러나듯이 노포업장이고, 높은 소주 소비량이 예상되는 그런 곳. 환기구란 가게 전체에 양쪽에 달려있는, 하지만 돌아가지 않고 있는 두 개가 끝. 문을 열기도 전에 가게 전체가 곱창 연기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광경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너무 맛난 냄새가 났기 때문에 나는 되게 기대에 찼는데, 남편은 여기 앞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동생도 깔끔하지 않은 노포 분위기를 좋아하진 않아서 들어가기 주저하고 있었고, 우리 모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 이모가 밖에서 우리를 불렀고, 주술처럼 우리는 들어가서 착석을 했다. 


이때부터 남편은 문화충격의 상태에 빠져있었다. 손님받느라 바쁘신 아주머니는 물을 챙겨주는 것도 힘들어하셨고, 한 두번은 말씀드려야 소주를 건네주셨으며, 다른 곱창 아주머니들과 말씀나누시느라 언성이 높았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기름에 쌓여있었다. 남편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고, 나도 남편 눈치보느라 혼자 소주잔을 기울였다. 4명이서 왔으니 5인분을 준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많이 못먹으니 4인분만 주셔도 된다고 했지만, 그렇게 적을 줄 몰랐다. 우리 4명은 그 누구보다 묵묵하게 먹었으며, 단 한번도 "짠"하며 마시지 못했다. 우리는 그 장소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깔끔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생,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동생 남자친구, 10년 산 한국이라는 곳이 지금 이 순간 가장 멀리 느껴지는 남편, 그리고 같이 있는 사람들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나, 모두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두 덩이밖에 못먹은 양곱창

30분동안 적은 곱창과 소주 2병을 처리한 우리는 나와서 통금 9시까지 남은 시간을 어디서 보내야하는지 배회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롯데백화점에 들어갔으나 명품관에 놀라 소 기름을 뒤집어쓴 생쥐처럼 꽁무니를 빼고 근처에 있는 동생 남자친구분이 좋아하는 껍데기집을 들어갔다. 먼저 사과부터 했다. 이렇게 모두가 불편할 곳일지는 몰랐다고, 업장의 셋업이 신기하고 흔치않은 풍경이라 재밌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해 데려간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모두가 다 부산에서의 마지막날 밤이니, 재밌게 술 마시며 즐기다 가자고 입을 모았고, 우리는 된장찌개까지 주문해서 아주 맛나게 마무리했다.


서울에 가야하는 그 다음날 나와 남편은 2일 연속 음주로 인한 숙취로 제정신이 아니였다.. 점심은 해결하고 서울로 올라가야하는 관계로,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던 중, 우리 둘만 있던 방에서 남편이 한 마디 했다."우리 제발, 점심은 보통 음식(normal food)을 먹으면 안될까." 순간 남편에게 엄청난 서운함이 물밀려왔다. 남편은 숙취로 인해 멀쩡하지 않은 정신의 힘을 빌려 털어놓기 시작했다. 고릴라 브루어리 이후로 자신은 좋아했던 음식이 없었다고 한다. 조개도 몇 개 먹고 바다비린내 때문에 육수도 많이 못먹었으며, 꼼장어도 식감이 너무 이상했고, 곱창집은 여러가지의 방면에서 트라우마였고, 삼겹살집에서는 껍데기를 더 많이 시켜서 자기는 거의 못먹었다고. 아니 그렇게 싫었으면 가기 싫다고 그때 얘기를 해야지, 다 들어가서 잘 놀고나서 이러면 어떡하냐고 반박을 하니, 자신이 좋아할지 좋아하지 않을지 모르는데 가기 싫다고 하기 그렇지 않냐, 대화도 자신의 손짓발짓 한국어로 제대로 안되는데 가기 싫다고 하면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아 싫었단다. 


말이 되면서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면서 숙취로 골골대는 남자에게 뭐라 할 힘도 없어, 그럼 지금 무엇을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계란 후라이, 베이컨, 빵 등 그냥 서양식 아침식사가 너무 먹고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남편이 브런치를 너무 먹고싶어해서 브런치가게에 가자고 했고, 밀면대신 브런치 집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늘은 이 모든 여행을 계획한 나의 편이였나보다. 그 날이 월요일이라 그런지, 모든 브런치 가게가 휴무인거다. 남편한테는 브런치가게가 월요일에 휴무가 많아서 밀면집 가야할 것 같다, 하지만 원래 냉면 좋아하니까 육수가 속을 잘 달래줄거다, 아니면 그냥 점심먹지말고 바로 서울로 일찍 가자, 얘기했다. 남편은 밀면 괜찮다고, 가자고 얘기했고, 남편을 거의 9년동안 보아온 나로서는 그의 뒤로 실망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남편은 따뜻한 냉면육수로 해장을 잘 했고, 조금 힘들었지만 우리는 무사히 귀경했다.

육수가 한약재같았던 밀면(좋은 뜻임)

집에 와서 남편이 무엇을 먹고싶냐고 물어보니, 남편은 조심스럽게 도미노피자와 사이드파스타가 그렇게 먹고싶다고 했다. 우리는 조용히 저녁을 해결한 후, 짐을 풀었다. 보통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사진을 보면서 이때가 좋았지, 생각을 하는데 이번 여행이 종료하고 난 이후에는 사진들을 보기도 싫었다. 남편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여행, 여기저기 알아보고 기꺼이 데려갔더만 질색팔색하며 검색하고 리드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움도 모르는 남의 편. 서울로 돌아온 날 속으로 남편에 대한 짜증을 베개에 묻어두며 한숨 잤고, 그 다음날 일어나서 생각이 좀 정리되었다 싶었을 때 남편한테 얘기좀 하자고 말을 꺼냈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이 생각의 정리는, 남편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생각의 정리'가 아닌, 나의 입장에 대해 한번 더 근거를 공고히 하고 나의 서운함을 고정시켜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생각의 정리'였다. 남편에게 내가 여지껏 생각했던 말을 다 했다. 많이 검색해서 여기저기 갔고, 재미있는 시간이였고 소중한 추억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날 그렇게 모든 곳이 다 싫었다고 얘기하면 감정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곳이 다 싫다고 하는 게, 너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어서 그런거 아닌지. 남편은 모든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 너무 힘들어서 브런치같이 정말 먹고싶은 것을 먹고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새로움이 있고 그 이후로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우리가 미국갔을 때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도저히 미국음식 더 못먹겠다고 힘들어했던 거랑 비슷하다고, 아주 적절한 예로 논점을 짚어주셨다. 


내 입장에서는 서운하긴 하지만, 남편 입장에서도 서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생과 동생 남자친구의 취향까지 모두 고려하며 내가 하고싶었던 것도 끼워넣느라 남편을 고려해주지 못했기도 했고, 남편이 우리 셋의 한국 미식을 당연히 즐길거라 생각한 나의 실수도 분명 있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쉽고도 어려운 것이, 먹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은 옆에 있는 사람도 함께 해야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우리 하나 하나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도 다른 거고, 어쩔 수 없이 호불호의 간극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 우리가 하나의 같은 활동을 했을 때 타인이 불호라고 생각해서 나의 호가 무너질 필요는 없는 건데. 또한 남편의 입장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쇠로 된 테이블에 둘러앉아 유창한 한국어로 농담하고 국밥을 누구보다 맛있게 먹으며 소주를 기울이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운 그 셋, 그리고 농담섞인 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밥만 먹고 있었던 남편. 함께 있지만 그들보다 대화도, 음식도, 느낌도 자연스럽지 못한 그 이는 소주만 계속 마시다가 숙취도 제일 세게 왔을 듯 하다.


대화를 끝내고 혼자 곰곰히 생각해봤다. 왜 우리는 해외여행에서 단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가장 한국스러운 부산여행에서 이런 감정싸움이 있었을까? 내 생각엔, 나의 익숙한 지점이 그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내가 먹고 자란 곳은 한국이고, 남편이 먹고 자란 곳은 미국이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우리 본국일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더 좋다라는 우월의 맛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몸과 마음에 더 맞는 맛은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맛도, 미국의 맛도 아닌 제3의 맛이기 때문에 우리 둘 다 새로운 것을 함께 체험하는 경험이다. 하지만 부산 미식에서는 새로운 것이라고 해봤자 그래도 한국의 맛이기 때문에 탐험심을 빙자한 익숙함에 나는 즐거울 수 밖에 없고, 남편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맛에 의아한 상황에 남들은 너무 맛있어하는 모습을 보며 나와 동등한 즐거움을 느끼기가 힘들 것이다. 우리가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감정 차이가 날 수 밖에. 


인간은 적절한 수준의 새로운 자극만을 견뎌낼 수 있고, 그 수준이 넘어가면 불편함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남편과 마지막으로 우리 서로에게 적절한 수준의 새로운 자극만을 요구하고, 불편할 때 강요하지 말자고 좋게 얘기를 마무리했다. 우리의 부산 미식 랩소디는 익숙함의 즐거움과 신기함의 불편함 모두를 안겨주며 음식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면서 멋진 하나의 노래로 남겨진 것 같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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