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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Mar 26. 2022

해피엔딩 with 미국비자

학생비자 받기까지의 수난기

오전 7시 30분의 광화문은 굉장히 조용하다. 하지만 이 시간대에도 바글바글한 곳은 존재한다. 바로 미국대사관. 미국 비자를 받기위한 사람들의 줄은 대사관 뒤에까지 이어져있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보여주는 것처럼 대기줄에는 아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서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청하는 미국비자는 까다롭고 엄격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나는 오늘같은 비자인터뷰 하는 날을 고(苦)대해왔다.


남편과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남편의 결혼비자를 나를 통해 받으면서, 우리는 미국에서의 비자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왔다. 하지만 미국에 언제 살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500달러나 드는 가족비자 청원을 굳이 해야하나 싶어 미뤄왔다. 유학을 결심하게 되면서 우리는 당연히, 나는 미국인 국적을 가진 사람의 와이프이니, 나의 가족비자를 청원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작년 6월에 미국이민국에 청원서를 제출했다(500달러를 내고).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가족비자는 green card라고 해서, 그곳에서 계속 살아도 되고 일해도 되는, 아주 신청율이 높은 이민비자이기 때문에, 절차가 다른 비자보다 굉장히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걸린다는 것을 말이다. 그 때 이민비자가 불러오는 진통에 대해  좀 더 조사를 했었어야 했고, 우리는 너무 순진했다. 미국대사관 웹사이트에 이민비자 예상대기시간이 1년이라고 나와있으니, 작년 6월에 신청했으니 이번 해 6월에 딱 나와서 8월에 대학원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민비자는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였다. 첫번째로, 코로나로 인해 원래도 늦었던 미국 행정절차가 더 늦어졌던 것. 두번째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으로 그 때 신청되었던 이민비자서류들이 쌓이고 쌓여 어마어마하게 밀려있던 것. 이로 인해 가족비자는 3년안에 나오면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어떤 경우는 7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주변 최악의 사례). 세번째로, 이민비자가 나오기 전에는 절대 미국에 입국할 수 없다. 이민비자가 나오기 전에 미국으로 여행비자를 받아 들어가면, 이민비자를 받는 확률은 아주 낮아지거나 거절된다(다른 목적으로 비자를 신청했으므로). 


이 세 가지 사실을 청원 서류를 제출하고 파악한 우리는 500달러 땅바닥에 버렸네~ 하며 취소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온라인으로 제출했으니, 온라인으로 취소가능하겠지 했지만, 취소하는 방법은 아주아주아주 아날로그적이였다. 나와 남편이 청원을 취소한다는 것을 영어로 써서 편지를 이민국으로 보내는 것이였다 ㅋㅋㅋㅋㅋ 대한민국에서 편지를 보내라는 행정절차가 있나? 가족관계증명서나 그런 서류를 국세청에 보내는 그런 경우는 있어도, 편지를 보내라는 행정절차는 듣도보도 처음보지만, 종이흔적(paper trail)이 매우 중요한 고(高)고소율 국가 미국이니 이해가 되더라. 그래서 나와 남편은 편지를 1분만에 휘리릭 쓰고 서류봉투에 담아 편지가 한국에서 네브레스카 이민국으로 3일만에 도착할 수 있도록 DHL 특송으로 보냈다. 


그런데 편지가 빨리 갔다고 해서 상대방이 편지를 빨리 읽는 건 아니더라. 하루하루, 한 주 한 주 기다렸지만 웹사이트에 우리의 청원은 계속 '검토중' 이였다. 이게 굉장히 문제였던 것이, 이민비자가 신청된 상황에서 학생비자를 신청하면 학생비자가 거절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학생비자는 비이민비자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학업이 끝나면 바로 돌아와야 하고 한국으로 다시 오는지가 비자 승인의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유학휴직을 하고 가는 것이라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학생비자가 승인되는 상황은 맞다. 하지만 내가 이민비자가 신청된 것을 보면, '어, 너는 한국에 돌아온다고 해놓고 이민비자를 신청했네? 너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학생비자를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똥줄타며 학생비자를 신청했고, 인터뷰날짜를 3월 말로 잡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민비자가 취소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였고, 인터뷰 날짜는 계속해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민비자가 취소되지 않을 상황에 대비해 거의 법원서류를 준비하듯이 취소를 신청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어마어마하게 준비했다. 인터뷰 하기 전 주 금요일에, 이민국에서 이메일이 왔다. 나의 이민비자 신청은 성공적으로 취소되었다고 말이다. 9달을 기다렸다. 맞다 ㅋㅋㅋㅋ 9달 ㅋㅋㅋ 내가 써놓고도 너무 어이가 없다. 이민국에서 편지를 읽고 취소허가를 해준 것이 9달이 걸렸다. 이상하리만치 좋은 타이밍이였고, 나는 취소허가 이메일을 인쇄해서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대사관은 처음에 언급하였듯이, 사람들이 바깥에서 많이 대기하고 있었고 안에 들어가니 대기하는 사람들은 더 많았다. 정말 각양각색의 비자가 존재하듯이 다양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 한국사람들이 많이 살고있는만큼, 가족과 함께 살기위해 이민비자를 신청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과 같이 오래있기 위해 장기여행비자를 신청하는 사람도 있었고, 미국회사에서 초청된 사람, 나처럼 미국에서 학업을 하기 위해 가는 사람, 미국 학업을 위해서 어린 딸 둘을 데려가는 아빠 등등 굉장히 많은 인간군상이 대기줄에 모여있었다. 나이대도 할아버지 연령대부터 5살 어린 여자아이까지 너무 다양했고, 국적도 이집트, 인도, 몽골 등 너무 다양했다. 하지만 대기줄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걱정과 함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가 서려있었던 것 같다.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는 것에 대한 떨림과 긴장, 그런 감정들을 공유하며 대기줄에 긴 시간동안 함께 있었다. 


나의 인터뷰는 굉장히 쉽게 진행되었고, 별다른 문제 없이 승인되었다. 대사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굉장히 친절했고, 긴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기 위해 노력해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계속 더운지 물어봐주고, 나는 지문이 매우 깨끗해서 잘 나온다고 농담까지 하셨다. 대기줄을 관리하는 경비할아버지는 어린 아이들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비자가 모두 승인되는 건 아니였다. 어떤 분은 가족이민비자를 신청했지만 3년동안 나오지 않아, 취업비자를 신청했는데 당연히 거절되었고, 아들과 남편을 안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제발 승인해주면 안되냐고 비는 모습도 보았다. 또 어떤 중년 아저씨는 전문직 비자를 신청했는데,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영어질문에 영어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물쭈물대다가 자신의 서류가방에서 직업관련 서류를 보여주고, 인터뷰하는 사람은 '공학자군요' 하고 바로 승인해주는 상황도 보았다. 영어를 할 수 있는지보다 해당 분야에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더 중요시하는 미국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단순한 미국 학생비자 인터뷰 후기이지만, 나의 특수한 상황 및 단순무지함으로 인해 마음고생도 했던 수난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해피엔딩이지만, 땅바닥에 버린 이민비자 신청비 500달러는 아직도 마음이 아리다. 하지만 변화와 성장은 고난과 고독을 수반한다고 했다. 우리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아픔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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