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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Sep 22. 2022

Ode to 신당동 전셋집

신당동 전셋집에 대한 송가(頌歌)

 지금 이 글을 쓰는 난 어마어마한 대형 캐리어 2개, 소형 캐리어 하나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빈 집에서 공항으로 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다. 2주 전만 해도 출근으로 인한 규칙적인 생활이 너무 지루하고 뻔했는데, 이렇게 일상과 너무 동떨어진 행동을 하다보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비현실적인지라 전의 규칙적인 생활이 그리워진다.


 그렇다. 드디어 미국을 가게 생겼다. 남편과 나는 이번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다른 전공으로) 밟게 되어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2주동안 집도 정리하고, 가까웠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너무나도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리가 직접 짐을 확인하고 무엇을 미국으로 가져가고 무엇을 친정에 두고 갈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했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포장이사만 해왔던 우리들은 이번에 처음으로 그릇 하나하나를 뽁뽁이로 감으며 테이프 비린내에 취하기도 했고, 남편은 용달기사님과 함께 짐을 옮기며 피티로도 받을 수 없는 팔다리 운동을 했다고 한다. 정말 많은 짐을 버리며 맥시멀리스트였던 우리를 호되게 혼내면서도, 결혼하기 전 같이 살았을 때 처음으로 함께 산 냉장고가 없어지자 갑작스럽게 눈물이 나왔다. 우리가 정말 20대 중반일 때부터 항상 같이해온, 양문형도 아니고 얼음도 만들어주지 않는 냉장고였는데, 정말 어설펐지만 순수했던 신혼 때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시원섭섭하지 않았나 싶다. 


그저그런 모델인 냉장고였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했던 냉장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집에는 다음주에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온다고 한다. 가구배치를 계획하기 위해 그저께 잠깐 왔다가셨는데, 아이 한 명이 있는 가족이였다. 남편 분은 새로운 집에 이사오는 것에 기대에 부풀어 가구를 어디에 놓을까 기분좋은 상상을 하시고 계셨고, 아내 분은 에어컨을 어디에 놓아야 아이가 시원할까 고민을 하시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싶어 우리집에서 얼마 사용안한 가전제품을 놓고갈지 여쭈었고 그 분들은 굉장히 고마워하셨다. 그 분들이 가시자 나와 남편은 조용히 우리집 안을 말없이 쳐다보고는, 또 즙을 짜기 시작했더란다. 나름 서울 중심에 위치해있어 과음한 친구들이 한 잔 더 하며 택시 기다렸던 우리 집.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다양한 와인과 안주를 배달시켜 소소한 즐거움이 항상 자리했던 우리집. 완벽한 집은 결코 아니었지만 퇴근하고 지친 우리에게 항상 넓은 팔로 마주해주는 친정엄마처럼 포근하고 아늑했던 우리집에서 새로운 가족에게 또 다른 보금자리로 역할할거라 생각하니 뭉클해서 눈물이 났나보다. 그 분들도 우리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

참 포근했던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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