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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Jan 03. 2023

미국 시댁과의 적응기

별거 없다

이 나라에 처음 도착한 날이 8월 3일이니, 정확하게 5개월이 지났다. 남편과 새해 아침에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한 대화에는 매년 내뱉던 '와, 시간 참 빨리간다'가 아닌, '우리 여기 와서 정말 많이 배우는 것 같아'라는 새로운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우리의 5개월은 다사다난했다. 


성장은 긍정적인 성취경험으로부터 이어질 수 있지만, 그 보다는 뼈저리게 아픈 경험이 사람 자체를 만드는 것 같다. 조각가가 돌에 고통을 수반한 힘을 주어야 오랫동안 지속하는 모양이 만들어지듯이, 아픔의 정도가 클 수록 사람의 모양이 그만큼 만든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고, 우리도 지난 5개월동안 그래왔던 것 같고. 


가장 크게 다가왔던 도전점은 시댁이였다. 결혼한지 3년이 되었지만, 나는 단 한번도 명절에 시댁을 간적이 없다. 코로나 때문에 미국을 못 간 것도 있지만, 친정한테도 그렇게 싹싹하지 못한 나는 시댁에 대해 한번도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시댁은 아주 리얼한 미국 midwest 백인이니, 전혀 나와 다른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선을 그었던 듯 하다.


8월에 도착하고 우리는 새롭게 계약한 집 입주가 늦게 미뤄지는 바람에 시댁에서 2주 정도를 지냈다. 미국의 어마어마한 문화영향력 덕에 내 한국친구들은 우리 시댁이 계단이 있는 3층 대저택이라고 추측하지만, 우리 시댁은 마당 딸린 아담한 1층 집에 사신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모두 참 성품이 부드러운 분들이라 우리가 시댁에서 지내는 동안 환영해주시려고 요리도 많이 하시고, 간식도 사오시고, 옷도 사주시고, 노력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이 못난 며느리는 마치 한 사이즈 작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2주를 보냈다. 결혼하고 나서 친정 부모님과도 이렇게 같이 오랫동안 붙어있었던 적이 없는데, 이 아담한 집에서 법적으로 가족인 사람들과 매일매일 같이 저녁 먹고 하는 게 참 낯설었던 것 같다. 

우리 시댁


나는 친구들과 술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 얘기 듣는 것도 좋아하고, 내 얘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하는 것도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 하지만 나만의 시간이 조건적으로 주어져야 타인한테 감정을 쏟을 수 있다. 서울에서도 가끔씩 난 방문 닫고 내가 좋아하는 넷플릭스 드라마보면서 혼술하곤 했다. 이렇게 혼자만의 심적 여유가 필요한 나는 진짜 죄송스런 말이지만 매일 시댁과 저녁을 같이 먹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10퍼센트의 배터리만 남은 핸드폰을 쓰다가 결국 1퍼센트밖에 안남아서 충전을 해야하는데, 또 10퍼까지밖에 충전되지 않은 채로 밖에 나가야하는 상황이랄까. 그리고 우리 시댁 가족은 저녁식사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신다. 내 친정도 말이 많기도 하고, 가족간에 대화가 많은 건 정말 좋은 거다. 하지만 나와 이 시댁은 정말 다른 세상에서 살던 사람들이다보니 공감하기 힘든 주제도 많고, 할 말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남편과 하는 영어와는 너무 달라서 나에게는 매일 저녁마다 영어듣기평가를 하고 말하기 평가를 하는 느낌이였다. 


2주동안 지낸 방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니, 제 3자 입장에서만 뚜렷하게 보이는, 여느 가족에게나 존재하는, 사랑을 기반한 불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파악이 되기 시작하자 그들이 하는 대화의 행간을 읽어내기 시작하고, 이 사람들을 '시댁'이라는 프레임이 아닌, '인간'으로 보게 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시댁 사람들은 정말 부드럽고 착한 사람들이고 누구에게도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부모자식간에 미묘한 긴장감은 아주 사소한 대화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국에 오랫동안 떠나와있던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가족식사에서 '이제서야 모두가 모여 식사를 하니 너무 행복하다'라는 감탄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언니의 아들 둘이 거동이 불편해진 언니를 서로 다투어 집으로 모시고 싶어한다고 하는 이야기의 목소리 톤에서는 시어머니의 부러움이 섞여 있다. 시어머니는 언니분과 굉장히 친하시고 매일 통화하시는 관계라 언니 얘기를 자주 하신다. 그래서 절대로 시어머니가 남편이나 남편 형에게 부담을 주려고 한 이야기가 아닌 걸 알지만, 이런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부모자식간의 관계에서는 한 단어 한 단어가 엄청난 감정을 지니곤 한다. 


시댁 파티오에서 남편, 호야(강아지), 모세스(고양이)


이런 혼자만의 불편함(여기에서의 불편함은 전혀 타인의 행동으로 인해 나오는 불편함이 아니라 나만의 성격에서 만들어지는 심리적인 불편감이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는 정확하게 10일만에 남편한테 차 안에서 용가리가 불을 내뿜듯이 쏟아냈다. 


"너네 가족은 왜 매일매일 저녁을 같이 먹어야 해? 그냥 따로 먹고싶은 시간에 먹고 그냥 따로 치우고 할 일 하면 되잖아."

"시어머니는 왜 통조림으로만 요리를 하셔? 저건 요리가 아니라 조리야."

"왜 너네집은 젓가락 한 개가 없어?"

"너네 가족은 왜 별로 맛도 없는 음식만 시켜? 맨날 시켰던 데라서?"

"밥 먹고 바로 치우면 안되? 너무 오래 얘기를 하니까 내가 과제할 시간이 없잖아."


내 기준에서 마음에 안드는 것들을 따박따박 따지고 나니, 그제서야 남편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남편이 우리 엄마 어쩌구 저쩌구 얘기를 했다면 죄책감이 덜 들었을 텐데, 남편은 오히려 나보다 더 죄책감이 드는 표정으로 핸들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나라에 나를 데리고 온 사람으로서 3층 대저택이 아닌 아담한 집, 아들 둘이 성인이 되서도 집에 같이 살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쿨하지 못한' 시부모, 그리고 미국 midwest 지역의 너무나도 특색없는 가정요리... 이런 아쉬운 미국에서의 현실이 바로 남편이 미국에 많은 정을 붙이지 못한 이유였고 나를 데려오기로 한 결정이 그렇게 오래걸린 이유였다. 남편도 시댁에 있는동안 한 사이즈 작은 셔츠를 입은 것처럼 불편해하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자란 집에서 키워준 부모와 산다는 걸 불편해한다는 사실에 죄책감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집에서는 이야기를 못하니) 차 안에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결혼하면서 같이 산 이후로 우리만의 생활방식이 있는데, 우리 부모의 생활방식과는 너무 다르니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얼른 나가자." 입주날까지 3일이 더 남았지만, 우리 둘다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우리는 3일동안 학교에 더 머물러서 공부를 하고, 시댁에서는 짐을 싸면서 바쁘게 보내려고 노력했고, 마침내 우리는 시댁에서 독립했다. 


미국에서 이사한 날, 휑한 우리 집


이사가는 날 너무 빠르게 "쌩"하고 가는 모습을 안보이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시부모가 눈치챘나 모르겠다. 시어머니는 너무 오랫동안 아들을 못본지라 함께 살았던 2주가 행복하셨다고 말씀하셔서 참 안타까웠다. 자식농사에 평생 노력을 기울이다가, 자식들이 나가게 되면서 두 분이서 오랫동안 고수하던 '가족'이라는 개념이 흩어져버리는 느낌일까? 요즘도 크리스마스나 명절이 되면 그 전날 와서 자고 아침에 다같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열자라고 아주 순수하게 제안하신다.... 나와 남편은 너무 죄송스럽게도 몸서리를 치고 아주 정중하게 강아지 돌볼 사람이 없다라고 핑계를 댄다. 


결혼하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는게 그저 상쾌한 시작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부부가 된다는 건 나의 원래 가족과 남편의 가족이라는 세상이 아마겟돈처럼 충돌되는 것 같다. 이런 좌충우돌 속에서 어디까지가 나의 선이고 어디까지가 그들의 선인지 누가 알려주면 참 좋은데, 인간관계가 그렇게 쉬울 수가 없지. 남편하고 함께 만드는 세상이니, 남편과 차근차근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시댁은 시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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