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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Jan 13. 2023

미국에서의 운전은 숨쉬는 것과 같다

1편: 죽음과 자동차, 빌어먹을 우연


미국에 와서 가장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느낀 점은, 걸어다닐 수 있는 보도가 참 허술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보도가 보도블럭으로 잘 정돈되어있고, 횡단보도도 요즘엔 바닥에 신호를 설치해서 걸어다니는 환경이 참 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미국에서는 큰 도시나 다운타운 지역이 아닌 이상 도보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차나 다른 사람들을 엄청 조심해서 걸어다녀야 한다. 처음에는 아 이렇게 도보환경이 나빠서 여기 사람들은 모든 곳을 차를 끌고 다니는구나 생각했는데, 운전하는 것이 숨쉬는 것과 같은 여기 사람들은 아주 가까운 곳을 가도 차를 타고 가기 때문에 보도를 정비할 필요가 없나? 생각도 들고,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라는 물음표가 계속 생기는 미국은 참 희한한 나라이다. 

평범한 교외지역은 보도블럭이 없을 때가 많다

이렇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차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 외삼촌이 중고차 거래를 하시던 분이었기에, 우리 가족은 항상 외삼촌이 거래하는 중고차를 구매해왔다. 우리가 차를 사야할 시기가 되면 외삼촌에게 3개월 전에 귀띔하면 외삼촌은 차고에 들어오는 차 중 가장 상태 좋은 차들을 골라 옵션을 선사해주시곤 했다. 감가상각이라는 개념(새 차를 사면 가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에 아주 매료되어있던 우리 가족은 새 차를 사는 것을 상상도 못했었고, 나도 여지껏 한국에서 몰았던 차가 아주 잘 견뎌주었기에 우리 부부는 미국에서도 중고차를 사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서의 중고차 구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믿음직스러운 딜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캠퍼스는 보도블럭이 아주 잘 되어있다.


미국에 와서 한 2주 정도는 차를 탐색하고 다녀보자 계획했지만, 대학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는 바람에 우리는 바로 차가 필요했고, 1시간 떨어져있는 중고차 시장까지 가려면 시어머니의 차를 빌려써야 하는 바람에 시어머니가 차를 쓰지 않는 날에만 갈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1주일동안 가격대에 맞는 차 3개를 인터넷에서 셀렉해서 토요일에 미팅을 잡아놓았다. 첫번째는 jeep 컴파스 suv, 두번째는 소나타, 세번째는 투싼. 첫번째 차는 소규모 차고에서 사업을 하는 곳이었는데, Kay라는 딜러, Rob이라는 수리공, 그리고 Kay 의 10살짜리 아들이 아버지를 쫄래쫄래 쫓아다니고 있었다. 입만 번지르르하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아니라, 묵묵하게 이거 고치고 저거 교체했다라고 말하는 이 사람들이 나름 믿음직스러웠다. 십만 이하를 달린 차고, 시험운전을 해보는데 차가 아주 잘 달렸다. 외삼촌이 평소에 말하던 체크리스트를 기준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별 이상 없어보였고, 차 수리기록을 살펴보니 메이저한 사고도 없었을 뿐더러 한 명의 주인만 거친 깨끗한 차였다. 더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체크하고 있는 중간에 소나타 딜러에게 전화가 와서 이미 팔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의 인연, Jeep Compass


사실 세상에 모든 일은 이유없이 생기지 않는다. 하나의 에피소드는 그 다음의 결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법. 소나타가 팔렸다는 전화를 받으니 우리는 쫄리기 시작했다. 이 지프차는 상태도 좋고, suv 치고 이 차 가격도 되게 괜찮은 것 같은데, 소나타처럼 빨리 나가지 않을까? 차는 무조건 많이 타봐야 엔진의 미세한 소리도 들리고 브레이크가 잘 드는지도 느껴지면서 눈이 길러지는 건데, 차를 한번도 스스로 사 본적이 없는 남편과 나는 미숙하게도 처음 탄 차를 사자고 결정했다. 딜러와 가격 협상도 잘 되어서 천달러 정도 더 깎았고, 추가로 우리는 중고차 Warranty(보험) 2년어치를 구매했다. 


차는 1달정도 별 문제없이 잘 달렸다. 트렁크가 큰 차 덕분에 우리는 시댁에서 대학원 근처 우리 집으로 이사도 수월하게 잘 했고, 여러 대형마트 쇼핑도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1달이 지났을 때, 엔진 경고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고등은 갑작스럽게 없어졌다가 또 들어왔고, 우리는 주변 지인의 추천을 받아 가까운 정비소로 차를 가져갔다. 정비소에서는 차 엔진의 실린더가 이상이 있다며 스파크 플러그를 교체했고, 우리는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숨을 돌렸다. 수리를 받은 다음날, 남편은 가까운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4시간동안 운전해야하는 상황에서 남편은 나름 최근에 정비를 받은 자신의 차가 가장 믿음직스럽다 생각하며 형과 부모님을 모시고 자신이 운전해서 가겠다고 자원했다. 그런데, 정말 하늘이 무심하게도, 1시간동안 운전 후 차는 경고등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대시보드의 온도계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장례식에 가지 않았기에 남은 3시간의 긴장감을 직접 보진 않았으나, 차가 속도를 내서 운전하면 온도가 떨어지다가 멈추면 온도가 F로 치솟는 이 현상은 남편 가족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 우리 차

남편네 가족은 무사히 장례식에 도착했지만(중간에 멈추지 않은게 신기), 절대로 돌아갈 때 이 차를 가져가면 안될 것 같다고 결론냈고, 남편은 장례식 주변 정비소로 차를 맡겼다. 정비소 말로는 이 문제는 차 문제중에 가장 최악인 문제인 엔진이 과열되는 현상이라고 했단다. 엔진 안에 온도 조절계나 라디에이터가 문제가 생긴거고, 엔진을 완전히 드러내서 모든 걸 교체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격도 시간도 각오하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차는 장례를 다 치룰 때 정비되지 못했고, 남편은 우리 차 대신 친척의 차고에 있던 오래된 차(jeep wrangler 2009년식)를 끌고 우리 집으로 왔다. 


(다행스럽게도 엔진문제는 우리가 구매한 중고차보험의 항목에 부합했고, 절반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 보험한테서 돈 받아내는게 정말 너무 힘들었다. 정비소와 보험사와 의사소통이 안되는 바람에 보험 청구만 1달이 걸렸고, 보험사한테서 수표를 받아내는 것도 5달이 걸렸다. 미친거지. )


그런데 우리 차만 문제였으면 다행인데, 남편이 데리고 온 친척 차도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5마일 이내 단거리는 별 문제 없었는데, 20마일 이상 정도를 달리다가 과속방지턱이나 평평하지 않은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면 갑자기 차가 좌우로 흔들거리면서 앞으로 가지를 못하는 거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소름돋는 상황인게, 시댁에서 돌아오다가 비오는 날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이 상황이 생겨서, 정말 빨리 달리는 차가 치기라도 했으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한다. 다행이 차는 바로 다시 잘 달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바로 jeep 전문 정비소에 예약을 했다.(차가 여기는 하도 많아서 당일에는 예약도 못잡는다) 그런데 진짜 더 소름돋는 게, 그 다음날 남편은 또 전화를 받았다. 10년전부터 기르던 남편 가족 개 빙크스가 숨을 못쉬어서, 보내주어야 할 것 같다고.. 

너무 똑똑하고 대견했던 빙크스(Binx)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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