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친척 차 너마저
(지난 화 요약)
삼촌 장례식 가는 길에 엔진이 과열된 차, 집에서 4시간 떨어진 거리에 차를 정비소에 맡겨두고 친척차를 끌고 우리 집으로 오게되는데...
친척 차가 멀쩡했으면 다행인데. 친척 차는 2009년식 지프 랭글러로, 연식은 오래되었지만 5만밖에 타지 않은 차였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가 1주일만 몰고다녔는데, 고속도로에서 차가 좌우로 무섭게 흔들리면서 멈추다가 다시 잘 가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미국은 하도 차가 많고, 그 말인 즉슨 정비소들이 아주 바쁘다는 것이다. 아주 소규모의 정비소도 있고 지정정비소처럼 큰 규모의 정비소도 있는데, 소규모 정비소한테서 수리받고 엔진과열된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지정정비소에 예약을 걸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거짓말처럼 예약 걸어두고 나서 바로 남편 부모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16세 나이의 강아지 빙크스가 지병으로 너무 많이 고통스러워해서, 보내줘야할 것 같다고 말이다. 남편이 보호소에서 데려온 강아지였고, 나름 남편 가족에게는 세번째 아들인 셈인 강아지였기 때문에 남편이 꼭 가보아야 하는 상황이였다. 남편과 나는 급작스러운 대응에 차의 안전성을 간과한 채 차를 몰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고속도로에 5분도 오르지 않은 채 차가 좌우로 무섭게 흔들렸다.
정말 무서웠던 것이, 차가 무섭게 좌우로 흔들리다가 완전히 멈추는 것이다. 시동을 다시 켜고 속도를 올리면 또 다시 차가 무섭게 흔들리다가 멈춰지고. 문제는 처음에 발견되었을 때 보다 너무 심각해졌고 우리는 더 이상 운전하면 안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옆 레인에 큰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고속도로에서 결국 우리는 시속 10마일로 갓길을 덜덜거리면서 겨우 근처 주유소에 도착했고, 견인차를 불렀다.
남편과 나는 쇼크에 빠졌다. 어떻게 한 달만에 우리가 모는 두 차가 고장나지? 그것도 엄청 심각하게? 우리차는 중고차 잘 못 사서 엔진문제 생긴거다 생각하지만, 이 친척 차는 뭐지? 그냥 타이어가 빵꾸난 것도 아니고, 차가 무슨 공포의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좌우로 덜덜덜덜 흔들리냐고? 그것도 둘 다 삼촌 장례식에 가족 강아지의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길에서. 정말 드라마를 써도 이것보다 드라마틱한 상황이 있을까 싶었다.
남편은 어머니한테 죄송하다고 전화하며 강아지에게 전화로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고, 나는 옆에서 이 차의 문제의 원인을 구글에 검색하기 시작했다. 진짜 웃긴게, 검색창에 jeep, shake 두 개의 단어만 쳤는데 이 현상 이름이 연관검색어에 떴다. "Death Wobble"
구체적으로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대략적으로 이해한 바로는 지프 차 모델 자체가 타이어가 크고, 승객 시트가 다른 차들에 비해 더 위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평형을 조정하는 Stabilizer가 많이 약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지프 차 특성상(특히나 랭글러) 많이들 Death Wobble을 경험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차가 평형을 잃어버리면 핸들의 컨트롤이 힘들어지게 되면서 차가 멈추게 되고, 정말 이러다가 죽는거 아닌가 생각이 들게되서 Death Wobble이라고 한다고.
진짜 어이가 없었다. 정말 다양한 이유로 어이가 털렸는데, 1번. 지프 차는 미국에서 정말정말 흔한 차다. 이런 엄청난 소송국에서 이런 구조적인 결함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2번. 정확하지 않은 정보일 수 있겠지만, 이 현상은 한번 일어나고 다시 stabilizer에 무슨 액을 넣으면 괜찮아진다고 한다. 그게 우리가 이 차를 빌린 1주일만에 우리한테 일어난다고? 왜냐면 데이브 친척이 자기네 차가 이렇게 불안정하면 우리에게 빌려줬겠나. 3번. 지금? 죽는 강아지 보러가겠다는 지금? 이미 차때문에 엄청 마음고생한 후 1주일만에 또?
남편은 너무 충격상태였기 때문에 말도 안나오는 상황이었고, 나도 너무 어이가 털려서 말도 안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였으면 진짜 다행인데, 다음상황도 진짜 어이가 없었다. 아니,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코미디로 바뀌는 그런 상황이였다.
우리 견인차가 드디어 도착했고, 견인해주시는 분이 엄청나게 큰 쇠고리를 차의 앞부분에 걸고 견인차의 고정장치에 고정하셨다. 이 상황을 곰곰히 관찰하던 내가 좀 의아했다. 이 분은 정말 체격이 크신 분이었는데, 이 일을 오래하신 것처럼 다음 단계를 다 알고계시는 것 같았지만 그의 동작이 매우 느렸다. 원래 그러신 분인가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이 분 두상의 뒷부분에 엄청나게 크고 넓은 사각 붕대가 감겨져있었다. 뒷목의 조금 위에.
읭? 어리둥절한 상태로 우리는 견인차에 올라탔고, 견인해주시는 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의 상황을 자초지종 말씀드렸고, 이 분은 우리가 다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다, 내 직업상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많이 본다, 그래도 너네가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따뜻하게 위로해주셨다. 그러면서 당신의 붕대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자신이 2시간 전에 뇌 종양 수술을 하고 퇴원한 상태이며, 붕대에서 조금 피가 보일 수 있으니 이해해달라고.
피가 보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지금 출근을 하셔도 되는 건지 정중하게, 진짜 최대한 정중하게,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자신의 아내가 지금 출근한 거에 엄청 화가 난 상태이니, 우리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새아들(아내의 아들)이 도와주러 정비소에 와있다, 걱정하지 마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 얘기를 해주시기 시작했다. 자신이 첫번째 와이프와 이혼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였는데, 이후에 자신이 견인한 차의 주인과 재미있게 얘기하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 다시 사람을 믿기 시작했다고. 그 차주와 결혼까지 하고, 집을 계약하고, 새 차를 샀다고. 그러면서 돈 좀 더 모아서 미국에서는 다음부터 새 차를 사라고 조언을 하셨다. 미국은 사람들이 차를 예방차원으로 잘 수리하는 편이 아니고, 문제가 생겨야 오는 사람들이 많으니, 중고차 상태가 많이 안좋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2년밖에 안있을거라서요 굳이 새 차 살 필요 없어요, 라고 방어적으로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온 몸으로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고, 한 켠으로는 사실 새 차를 사는 것이 선택이 아닌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삼촌과 같은 사람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면서 흥분된 우리의 마음은 가라앉았고, 우리의 감정은 억울함애서 감사함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전하게 정비소에 도착했고, 견인하시는 분의 새 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으며, 굉장히 합리적인 금액으로 차를 견인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남편은 친척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전화도 진짜 웃겼다.
"삼촌, 죄송한데, 차가 좀 심각하게 문제가 생겼어요. 자꾸 제가 운전만 하면 차가 왜 문제가 생기는지, 제가 운전하면 안되나봐요."
"어? 무슨 문젠데?"
"아, 차가 좌우로 엄청나게 흔들리면서 멈추더라고요. 운전하기에는 너무 위험해서 견인하고 정비소에 바로 맡겼어요."
"어?? 제이든(아들)이 거짓말(불쉿)한게 아니란말야????"
그렇다. 이 현상은 예전에 삼촌의 아들이 이미 발견했던 현상이였고, 점점 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우리가 차를 몰다가 완전 곪아 터져버린 것이었다. 삼촌분은 아들이 차를 바꿔달라고 조르면서 이런 얘기를 하자, 자기가 몰았을 때는 완전 멀쩡하다, 전혀 문제 없다고 하면서 아들의 치기로 치부해버렸던 것이다. 그럴만도 하다. 우리도 일주일동안 차를 몰았을 때는 멀쩡했으니까. 장례식에서 우리집으로 오는 4시간 거리도 멀쩡히 달렸으니.
삼촌분의 차는 정비소에서 잘 수리되었고, 우리는 그 다음주 주말에 바로 차를 끌고 4시간을 달려 우리 차를 가지러 갔다. 평평하지 않은 도로에서 조금만 진동이 느껴지면 식은땀이 나면서 이게 ptsd인가 하며 운전했고, 삼촌분을 보자마자 남편은 거의 차키를 삼촌한테 건네면서 노룩패스를 시전했다 ㅋㅋㅋㅋ 랭글러는 진짜 소름. 진짜 여전히 어이가 없는건, 다른 미국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화를 말하면 모두 다 '아 그거, 들어봤어'라는 반응이다. 저런 심각한 문제가 흔하다고? 미국. 문제의 염증이 곪아터져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들이 많다(대표적 예: 총).
우리 차는 엔진 수리가 아주 잘되어서, 그 때 이후로 단 한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4달이 지나고 나니, 뭔가 이번 수리로 돈이 많이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엔진을 얻어서 그런지 차도 잘 달리고, 이번 겨울에 로드트립도 아주 안전하게 다녀왔다. 운은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거라고 굳건히 믿는 우리는 차에서 내릴 때마다 "Thank you, Car"라고 기도아닌 기도를 드린다.
사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아, 그때 삼촌분이 아들의 말을 믿고 차를 고쳤더라면, 이라고 생각이 들 만 하지만, 사실 세상 살이가 그렇게 단순하게 원인을 콕 꼽아내기 힘든 것 같다. 사실 진짜 이 원흉의 시작은 우리 차의 고장이고, 우리차의 고장은 딜러가 이상한 차를 판 것일 수도 있고, 그 조그마한 정비소가 처음 엔진수리를 하면서 뭔가 잘못 건드렸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판타스틱하게도 얽혀있는 우리의 수난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어떤 연유로 인해 불편하고 좋지 않은 일은 일어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인생과 세상의 무시무시한 랜덤성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파도를 타고 나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