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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Mar 06. 2022

엄마의 어두운 속내

영화 'The Lost Daughter'(사라진 딸)

코로나에 확진되는 바람에 7일 자가격리를 하게되었다. 어떻게 7일을 생산적으로 후회없이 보내나 고민할 사치도 없었다. 목은 너무 아프고, 머리는 핑핑 돌아 책도 못 읽겠고, 일에는 더더욱 집중이 안된다. 그래, 누워서 보고싶었던 영화나 보자, 하고 넷플릭스의 영화 'The Lost Daughter'를 보게 되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아직 넷플릭스는 이 영화를 한국 라이브러리로 풀어놓지 않았다. 나라마다 컨텐츠 나라제한이 걸려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어서 우리는 한 달에 일정 이용료를 내고 vpn을 사용해서 다른 나라의 라이브러리도 시청한다. 이 영화도 그러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일찍 시청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내가 봤던 영화 중 가장 섬세하고 어두우며, 불편한 여운을 주는 여성영화이다. 마치 한 잔의 독하지만 맛이 강렬해 인상에 남는 칵테일처럼, 이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도 계속 한 장면 한 장면에 곱씹게 되는 그런 영화인 듯 하다.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른 영화인데, 충분히 납득이 간다.


영화 'The Lost Daughter'는 딸아이 둘을 키운 이탈리아 문학 교수 'Leda'가 그리스의 한 섬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바다의 파도가 철썩철썩 하는 소리를 듣고, 주인공이 선베드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내가 마치 그곳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처럼 간접적인 평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평화로운 배경을 두고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휴양지에서 만나는 젊은 엄마와 딸의 모습을 보며 Leda가 엄마로서 느끼는 죄책감과 참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과 같은 섬세한 감정을 불편한 이미지, 어색한 대화를 통해 표현한다.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장면 하나하나에 대해 수다를 떨고싶지만, 이 영화가 한국으로 공식적으로 나오지않았기 때문에 그냥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들만 조금 적으려고 한다.


Glad You Asked이라는 유튜브에서 만들어내는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있는데, 한개의 에피소드의 제목은 "Do I want kids?(내가 아기를 가지고 싶을까?)"으로, 육아활동의 다양한 모습들을 여러 통계 및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육아의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에피소드를 담당한 사람은 아기를 가지고 싶어해서 이러한 에피소드를 시작하게 되었다는데, 그 사람이 가장 실망스럽게 보았던 통계자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기를 가진 부모들의 아기 가지기 전과 아기를 가지고 난 후의 행복감의 비교였다. 여러 나라에서 그 이 두 수치를 비교한 결과, 덴마크가 가장 간극이 작았고, 미국이 가장 컸다. 아기 가지기 전보다 아기 가지고 난 후 행복의 정도는 12퍼센트나 떨어졌다. 보통 아이는 부모에게 행복의 이유가 되야하지 않는가?

미국은 요즘들어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긴 하지만,  내 남편을 통해 미국 사회를 보자면 모성신화가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는 나라다. 아이가 엄마 인생에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고, 엄마는 아이로 인해 모든 것들을 희생해도 괜찮은, 그러한 태도가 굉장히 내면화되어있는 사회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엄마가 틀리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다르듯이, 모성애의 모양도 각각이다. 모성신화의 문제점은,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는 행동방식을 모든 엄마에게 강요함으로써 엄마가 된 여성의 주체성을 깎아버리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한국사회에서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출산율이 현저하게 낮아진 것을 볼 수 있다. 60-70년대 생 어머니들은 이러한 모성신화의 희생양으로 직장을 가지거나 커리어를 세우면 아이에게 희생하는 엄마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적질 당하기 일쑤였고, 그 외의 많은 전업주부들은 자신의 인생의 에너지를 몽땅 이용해 아이들을 키웠다. 전업주부로서 돈을 벌지 못하고 남편으로부터 받는 생활비를 쓰기만 하는 엄마, 사고싶은 것 하나 못사고 아이들 학원비로 쓰며 참는 엄마를 보며 현재 20-30대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엄마라는 인생은 내 인생의 끝이며 아기를 낳지 않는 인생은 멋진 인생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장착하며 이들은 재생산을 거부한다.


대중 미디어에서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여성으로서의 성공스토리로 미화되곤 한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육아는 여지껏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왔던 자아가 자식을 보호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엄마로서의 자아와 충돌하는 과정으로, 역할 혼재와 갈등에 휩싸이는 힘든 시기일 수 밖에 없다. 요즘에서야 엄마의 솔직한 감정이 미디어에 조금씩 보이는 것 같긴 하다만, 육아로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아이 키우는 엄마가 가장 행복한 엄마다",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기적인거다" 등의 잔소리는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the lost daughter는 엄마가 신생아를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단순한 육아스토리가 아닌, 자식을 가진 엄마 그리고 인간으로서 느끼는 후회, 죄책감, 질투 그리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치명적으로 솔직하게 그려낸다. 물론 감독 메기 질렌할이 말했듯이 주인공 Leda는 우울한 엄마의 과장의 표현일 수 있겠으나, 이러한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 여성영화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에 그려진 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혼자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위로, 그게 바로 이 영화가 선사해주는 칵테일 한 잔이라 볼 수 있겠다.


(+ 이 영화는 특히, 딸과 엄마의 미묘한 감정의 대립도 너무 잘 표현한다. 마치 영화 Lady Bird처럼.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을 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질투의 감정과 자랑스러움의 감정이 함께 드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나를 끊임없이 찾고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딸에 대한 들끓는 분노도 표현된다. 너무 스포였나.)


(++이 영화를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이 보게되면 한 장면 한 장면에 대해 글 쓴 것도 풀고싶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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