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는 결핍에서 온다
"뭐? 인쇄를 안해주시는 분이라고?"
우리 학교에 새로운 시설주무관님이 우리 학교에 오게 되셨다.
작년까지 계셨던 주무관님은 묵묵히 학교를 둘러보시며 각종 일들을 찾아 하시는 분이셨다. 교장선생님과 같이 오시면서 낡은 학교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갖은 공사들을 실행으로 옮기셨고, 비가 천장에서 샐 때면 여러가지 도구를 들고 달려가 아이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임기응변을 하시기도 했다. 날이 따뜻한 봄에 벌들이 2층 처마 밑으로 벌집을 만들어 교실로 들어올 때면 (벌들에게 불쌍하지만) 토치로 벌들을 밖으로 쫓아내시며 아이들과 선생님이 안도의 한숨을 쉬게하실 수 있던, 그런 분이였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시설로 안전에 위험이 있다 생각이 된다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달려와 처리하시던, 따뜻하시고 근면하셨던 분이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정기고사 시험지를 인쇄해주셨다. 시험지 관리를 담당하던 나와 우리 부장님이 지난 2년동안 가서 인쇄를 부탁드리면 항상 '빨리 될거에요~' 하시며 그 많은 시험지를 옮겨주시곤 했다. 수업이 많고 담임 아이들까지 챙겨야하는 이 상황에서 일과시간에 시험지 인쇄를 보안과 함께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였다. 하지만 '감사'라는 것은 결핍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법. 우리는 인쇄가 되지 않을 상황을 생각해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전 주무관님이 해주신 인쇄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새로운 시설주무관님이 발령나시고 나서, 부장이 된 나는 학생들의 학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점검해보는 진단검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전교생 전체 대상으로 학기초에 최대한 빨리 검사해야 그에 맞는 학습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에, 얼른 진단검사지를 인쇄해야 했다. 검사지를 가지고 시설실로 내려가기 전 선생님들은 '자기가 첫 발자국을 잘 떼야되' '인쇄 안해주신다고 해도 너무 속상해하지마' '화이팅' 등등 당신의 염원을 담은 응원을 해주셨다. 어색하고 감정적인 대면상황을 최대한으로 피하는 성격인 나는 나에게 이 일을 하게 만든 장본인인 모든 선생님들, 교육청, 교육부, 대통령, 나라까지 원망을 하면서 투덜대며 내려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가 없다! 할렐루야! 하지만 좋은 게 아니다. 그럼 인쇄는 누가 할건데. 옆에 행정실에 여쭤보니 주무관님이 교장실에서 면담중이시란다. 학교에 새로 오신 분과 업무로 인해 힘겨루기를 하냐, 그냥 내가 하냐, 둘 중 하나라면 머리로는 전자지만 몸은 후자로 움직이곤 한다. 나는 저절로 이전 주무관님이 등사기 앞에 적어놓으신 인쇄방법을 터득하며 검사지를 인쇄하기 시작했다. 이 방향으로도 넣어보고, 저 방향으로도 넣어보면서 마치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듯이 천천히 인쇄를 해나갔다. 전교생을 위한 시험지가 쭉쭉 나오는 걸 보니 희열감도 느껴지면서, 어려운 공문해석에서부터 벗어난 단순반복작업의 힐링. 하지만 그것은 10분으로 끝이났다. 희열감은 무슨. 겨우 한 과목의 첫번째 장 인쇄가 끝났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엄청난 소음과 종이로부터 나오는 먼지 때문이였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났지만 여전히 반도 인쇄못한 상황에서, 다 하려면 저녁 8시까지는 있어야할 것 같았다. 절박함의 표현이였을까. 혼잣말을 하며 나만의 변론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람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공감이 먼저 되어야하고,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한다고 했다. '주무관님, 새로 오셨죠. 적응하시느라 힘드시겠어요. 혹시 제가 도울 수 있는게 있으면 꼭 말씀주세요. ' 그리고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자. 절대 이게 당신이 당연하게 해야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부탁을 하는거다. '다른게 아니라... 인쇄... 저희가 담임반 애들도 챙기고 수업도 많고 해서 시설실에 계속 못있느라고 부득이하게 부탁드렸어서 해주셨거든요. 이번에도 큰 부탁을 드리려 왔습니다.' 그래, 이렇게 말씀드리면 되겠지?
거짓말같이 나의 이야기를 정리했을 때 주무관님이 들어오셨다. 등사때문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괜찮다고 하시며 자리에 앉으시고 업무를 보셨다. 인쇄 하던 과목의 문제지가 다 나왔고, 요란했던 등사기가 숨을 멈추었다. 정적이 흘렀고, 나는 조심스럽게 주무관님께 다가가 5번 리허설했던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쇄'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나의 견고했던 변론은 무너지고 말았다.
주무관님께서는 수업자료나 정기고사 원안지의 인쇄를 하는 것이 자신의 업무라고 생각하시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첫번째, 학습자료 등사는 학교의 시설과 행정적인 측면에서 전혀 관련이 없다. 등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설의 결함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두번째, 이것은 아주 오래되었고 왜곡된 학교 시설 '아저씨'의 허드렛일 관행이다. 교육자인 교사와 그 외로 치부되는 교직원의 삐뚤어진 권력관계로 초래된 업무이다. 세번째, 학습자료와 원안지의 작성자 및 책임자는 교사이다. 자신의 등사로 인해 시험지 유출이나 고사 진행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것이고 그것은 잘못된 업무 분장으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도 일리가 있는 근거였으며, 그것으로 뒷받침된 주장이였다. 그리고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로서의 권리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던 나 자신이 매우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노동이라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될 때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다. 얄팍한 지식과 사회생활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내가 노동에 대해 이해한 바로는,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수요와 공급으로 작동하고, 내가 추가적으로 노동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추가적인 현물로 거래가 되어야한다. 추가적인 노동이 추가적인 현물을 필요로하지 않을 때 시장은 그것을 그저 '원래 크기의' 노동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고용자는 추가적인 노동에 대해 지불하는 값을 손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비추어보았을 때 주무관님은 노동시장과 가치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계신 것 같았고, 당당하게 자신의 견해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았을 때 자신의 노동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신 것 같아 보였다. 게다가 주무관님이 인쇄를 하지 않으신다고 선언하시며 나를 포함한 선생님들은 시험지 인쇄라는 노동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고, 이 상황에서 인쇄를 하겠다는 사람은 잔다르크처럼 숭배될만큼 인쇄 활동에 대한 가치는 그만큼 높아지게 되었다. 또한 이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으시고, 논리정연하고 침착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며, 아직 사회 초년생인 나로서 굉장히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야속하기도 했다. 차라리 밉게, 말도 안되게 말씀하셨으면 인쇄하면서 투덜거릴 대상이라도 있을텐데. 같이 시험지 업무를 맡고 있는 선생님과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선생님은 여러가지 방면에서 나와 아주 잘 통하는 선생님이다.
"선생님, 이번 해부터는 인쇄 우리가 해야할 것 같아요."
"아 그래요? 주무관님이 그러셔요?"
"처음엔 이해가 안갔는데, 주무관님하고 이야기해보니까 말은 되는 것 같아서요."
이렇게 대화를 해나가며 내가 주무관님과 대화한 내용을 말씀해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여지껏 당연하게 여겨왔던 관행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거라면, 이게 쓸모없는 충돌은 아닐 거라고 하셨다. 나는 야속해했는데, 이 선생님은 이렇게 빠르게 공감하시는 걸 보며 역시 내가 믿는 선생님이구나 싶었다.
결론은 이렇다. 중학교 같은 경우에 수업, 업무량이 많고 담임이라면 온종일 보육을 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교장선생님께서 교사들이 같이 정기고사 인쇄에 참여하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주무관님께 좋은 말로 설득중이시다. 주무관님 입장에서 교장선생님의 설득에 응하시게 된다면 권리를 놓치고 지는 것으로, 관행의 원점으로 돌아가신다고 생각하실까봐 걱정이다. 주무관님의 NO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던 단순 인쇄 노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선생님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리고 인쇄의 미학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아주 작은 확률로 정기고사 인쇄에만 만약에 YES를 해주신다면, 나는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못지않게 영웅 대접을 해드리며 최대한으로 업무가 줄여지도록 노력할 다짐을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