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Dec 06. 2023

사랑받고 싶은 날, 첫눈

[글루틴 13기 챌린지] 첫눈

오늘 오전부터 미국 오하이오에 눈이 많이 내렸다. 로맨틱하고 예쁜 함박눈은 아니었고 그냥 바닥에 떨어지면 물이 되어버리는 그런 눈이었다. 이제 눈이 오면 출근 걱정을 하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작년에 많이 쌓였던 눈... 이번 해에도 폭설을 예측해봅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눈에 대한 낭만은 어디서 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춘기, 이성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 눈에 대한 낭만도 쌓였던 것 같다. 첫눈이 오는 날 고백을 받으면 커플로서 오래 이어간다고 중학생 때 친구들과 정말 유치뽕짝한 수다를 떨기도 했었는데. 나는 유난히 첫눈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듯하다. 첫눈이 내릴 때면 어떤 남자애한테 고백을 받을 수 있을까에 온통 신경 쓰며 중학교 생활을 보냈던 것 같고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흑역사인 옆머리를 그렇게 가꿨던 것 같고), 고등학생 때에는 좋아하는 남자가수와 데이트하는 꿈을 꾸며 첫눈을 바라보는 궁상을 떨었더란다. 대학생 때 생긴 첫 남자친구와 첫눈 내리던 날, 나는 특별한 데이트를 해야 한다고 하며 좋은 레스토랑에 가자고 조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첫눈에 의미부여를 했는지 어릴 때의 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저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불안하고 초조한 내가 보인다.


첫눈에 대한 낭만은 남편과 10년간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점차 사라졌지만, 사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친구들이 날 꾸준히 좋아해 주었으면, 찾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친구들을 위해 연하장과 선물을 준비한다. 교수님이 나를 조금 더 좋게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보고서를 더 꼼꼼하게 작성한다. 남편이 나를 더 멋진 사람으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요리에 정성을 들인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교수님한테서 받은 칭찬에 msg를 친다. 이렇게 애정을 갈구하는 힘만큼 강한 게 있을까. 사랑을 받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그리 절박할 수가 없다.

사랑해주세요 예뻐해주세요 인정 갈구 대마왕

하지만 첫눈처럼, 남에게 기대하는 사랑과 인정만큼 일시적이고 부질 한 게 없다. 받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그 후에는 허무만이 남는다. 더 받고 싶고, 더 보고 싶지만, 첫눈을 또 보려면 다음 겨울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이젠 그냥 눈이 오면 오는 대로 즐기려 한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그냥 눈이 오는 대로. 둘째 눈, 셋째 눈, 백 번째 눈에게서 첫눈이 주었던 설렘을 찾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귤, 그리고 캘리포니아 만다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