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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Jul 15. 2024

성장회로에 갇힐 때

슈카월드 영상 '돈이 최고야' 및 영화 퍼펙트 데이즈

얼마 전에 Perfect Days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보았다.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중년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인데, 영화가 참 담백했다. 아침에 일어나 조그마한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하루사이에 자라난 콧수염 정돈을 한 후 대문 앞에서 시계를 차고 밖에 나가 하늘을 바라보며 생긋 웃는 아저씨. 그 어떤 특정한 사건이 없었는데도 이 영화는 몇 주간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현재 우리 부부는 석사 생활을 끝내고 미국의 새로운 도시, 피츠버그로 이사왔다. 미국 피츠버그는 조그마한 내륙 도시라, 집값이 뉴욕이나 샌프란같은 큰 도시에 비해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지금 월세를 낼 때마다 한국인 정서로서 길바닥에 돈을 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을 느낀다. 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이려면 얼른 돈을 모아서 집을 사야한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피츠버그의 다운타운에서 한 20분정도 떨어져있는 동네인데, 1910년 쯤 지어진 아주 오래된 집들이 몰려있는 곳이지만 브루클린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동네다. 10년전만 해도 저소득층이 많이 모여있던 동네였지만, 이제는 많은 집들이 렌트로 바뀌고 월세내는 젊은 학생들 및 중산층 가족들이 산다. 우리는 학생은 아니지만, 모아놓은 돈도 없고 새로운 도시라서 렌트로 살고 있지만 이 동네에서 집을 사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공원이랑도 가깝고, 얼마전에 10분거리에 트레이더조도 생겼다. 

최근에 매일 들여다보는 미국 부동산 앱 질로우

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이 동네에 나오는 매물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우리 집에서 건너편에 있는 집이 이번에 매물로 나와서 찾아보니 4억이다. 집 자체는 1905년 지어진 굉장히 오래된 집인데, 주인이 집을 잘 관리해놓은 것 같다. 집에 과거 거래가격을 보니 4년 전 1억 5천이였다. 4년만에 2억 5천이 오른, 거의 150% 성장을 한 어마어마한 투자매물이다. 게다가 이 동네에 조금있으면 스타벅스도 생긴다던데. 스타벅스가 생긴다는 건 주변 집값이 스타벅스가 낼 수 있는 월세만큼 오른다는 거다. 4억이 끝이 아니다. 더 오를거다.


빨리 사야한다. 지금 고민하는 행동 자체가 기회비용이다. 빨리 사지 않으면 나는 돈을 잃는거다. 얼른 사야 돈을 더 적게 쓸 수 있다. 성장의 기회가 있는 매물에 투자하지 않는건 바보가 하는 짓이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생각회로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다. 우리가 이 도시에 와서 월세계약서 쓴 지 두 달밖에 안되었다는 점, 남편이 새로운 직장을 시작한지 한 달밖에 안되었다는 점, 이 도시에서 다녀본 동네가 여기밖에 없다는 점. 이런 것들은 아주 현실적인 것들이고, 정말 중요한 것들이 있다. 


사람들이 비웃을 거라는 걸 알지만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삶의 요소들이 있다. 우리 부부는 밥먹는 공간에서 나무가 보여야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식사를 하면서 자연을 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에 감사할 수 있게 되더라. 그리고 우리 깻잎, 쑥갓, 미나리, 적상추 등 한식 식재료가 자랄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있어야 한다. 옥상이 되었든, 정원이 되었든. 이것도 인생의 감사함을 더해줄 수 있는 너무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원과 커피숍이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것... 아주 조그마한 공원이라도 괜찮다. 산책할 수 있는 공간, 걸어서 갈 수 있는, 우리집이 포함된 사회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만날 수 있는 제 3의 장소. 우리의 세상을 넓혀줄 수 있는 곳. 살면서 남편과 나는 이것들이 좋은 인생을 사는 데에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이를 가지게 되면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돈은 이 기준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만, 성장이라는 런닝머신 벨트에 갇혀서 우리의 진정한 목적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대체 이 모든 걸 왜 하는지. 궁극적인 목적은 잊어버린 채 그저 150% 라는 숫자의 현란함에 갇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조금 더 하면 더 많은 걸 가질 수 있는데, 왜 하지 않아?'라고 스스로 채찍질을 하면서.

슈카월드 

이번 슈카월드 유튜브 채널에서 업로드된 영상은 아주 정곡을 찌른다. 금전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가족, 우정, 사랑, 감사 등 도덕적인 가치까지 돈으로 환산해서 계산하고 있다. 사랑?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한 달 학원값으로 계산될 수 있다. 학원값을 낼 수 없다면,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니, 당연히 자식을 낳으면 안된다. 오히려 저소득층의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손가락질 받는 시대까지 왔다. 결혼? 최근에 읽은 책 '맹인들의 거울'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청년들이 서로의 경제적 위치를 계산하고 관계에 참여하는 지 다.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감정은 우리의 성장을 늦춘다. 철저한 이성으로, 엑셀시트의 한 칸 한 칸 논리적 단계를 밟아 '인생'의 결정을 만들어나가야 성장할 수 있다. 우정? 친구관계가 경제적인 이익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굳이 필요한가? 내가 사는 치킨 값, 내가 연락하는 카톡 메시지 하나 하나가 다 내 시간과 노력의 투자이다. 수익을 만들어낼 수 없는 투자를 하는 것만큼 바보같은 짓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지속가능한 것인지? 고성장을 이루기 위해 너무 많은 기업들은 자연을 착취해왔고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의 존속을 걱정할 정도로 위기가 찾아왔다. 부동산의 가치가 무한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그 결과는 아이들과 사회 초년생들이 숨막히는 경쟁 없이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시대를 불러왔다. 


슈카월드 영상이 더 인상깊었던 이유는, 청중을 연기하는 사람 두 명의 반응이었다. 아이 낳으면 학원비 계산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집값 어디가 오르나 네이버 부동산 찾아보며 청약 넣고 하는 게 당연한 건데. 아이 낳아 수익이 줄어드는 것과 자가에 살지 않는 것이 걱정되지 않는 일본인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작가의 연설문 내용이 기억이 났다. 물고기 한 마리가 다른 물고기들을 만나 이렇게 묻는다. "오늘 물 좋지?" 다른 물고기들은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물이 뭐야?" 


마치 연봉 1억이 평균이라고 믿는 것과 같이, 마치 서울에 집 한 채는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마치 아이를 낳으면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는 것과 같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당연한' 것들은 사실 그렇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스스로의 알고리즘에 갇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다른 모양들의 삶이 있을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쓰며 나의 내면의 목소리는 꾸준히 "이런 이상적인 바보 같으니라고. 사랑이 밥 먹여줄 것 같아?"라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어른들의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확실한 건,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계속해서 알아가야 할 것이지만 돈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소득이 있어야 인생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지만, 기본적인 욕구만 추구하려고 사는 건 아니지 않나. 나는 내 임종 침대에서 인생을 돌아보면서 돈을 더 벌었어야 했다고 말할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표현했어야 했고 더 많이 주었어야했다고 말할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이것에 대해 후회가 많다. 정말 아마도, 인생의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가장 확실한건 이는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거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면 행복의 비밀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비평가가 있던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도쿄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할아버지는 지루한 일상에 아주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절대로 '소확행'이라는 단어로만 결정지을 수 있는 등장인물이 아니었다. 후회, 한, 서러움 등 인생의 슬픈 면모도 품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뭐 별 수 있나. 인생이 그런 걸. 할아버지는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 점심에 매일 사먹는 편의점 샌드위치, 즐겨듣는 80년대 음악, 그리고 쉬는 날의 단골 술집 방문으로 인생의 도미노를 세우고 있었다. 


성장은 과연 당연한 것인지 대담하게 묻고 싶다. 성장을 해야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인지? 인간의 가치는 무조건 우상향을 해야하는 것인지? 성장을 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인지? 타인들과 함께 이 질문에 대해 계속 이야기 나누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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