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백수 일기
매년 분기별로 아내가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낸다.
나는 그 스케줄에 맞혀 여행 갈 곳을 정하고 숙박할 곳을 예약하고 여행 코스를 짠다.
벌써 4년째 일 년에 두세 번씩 여행을 하다 보니 국내 어지간한 곳은 다 갔다 온 것 같다.
속초 양양 쪽도 몇 번 갔었지만 이번엔 궁금했던 고성 쪽으로 올라가 봤다.
첫날은 속초 해수욕장, 청초호, 앤스토리카페에 갔다가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때 걸어서 대포항
팔팔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둘 다 정말 많이 먹었지만 밤에 속도 편하고 금방 소화가 돼 신기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아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암막 커튼 덕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바다 위에 둥실 떠 있는 태양을 보면서 상쾌한 오전을 보내고 짐을 챙겨 호텔을 나왔다.
고성으로 올라가 화진포 김일성, 이승만대통령 별장을 구경하고 왕곡마을과 아야진해수욕장 카페들을 둘러봤다. 맘에 드는 카페를 찾아 헤매다 천진해수욕장 소울브리지 카페를 발견했다. 편한 의자, 멋진 전망과
아래층 순댓국집까지 완벽했다. 깔끔해 들렸는데 먹어 본 순댓국 중 최고여서 놀랐고 서울 양재점도 있다고 해서 조만간 아이들과 함께 가려고 한다.
둘째 날 아침 검색으로 찾은 곰치국집은 실망스러웠다. 여행지에서 네이버 파워링크나 블로그 상위 노출 가게들은 이런 경우가 많았다. 광고비용을 많이 쓰는 만큼 단골보다는 관광객 상대여서 그런 것도 같다.
오히려 현지에서 직접 분위기를 보고 찾아 들어갔을 때 확률이 높았다. 이번 여행도 계획 한 곳 보단 우연히 간 곳들이 기억에 남는다. 청초호 산책, 천진해수욕장, 소울브리지 카페, 부강옥순댓국, 칠성조선소 카페..
우리 부부는 여행할 때 숙소와 카페만 좋으면 만족하는 편이다. 일단 숙소가 마음에 들어야 저녁 시간이
즐겁고 잠을 잘 자야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수 있다. 어딜 가든 그 도시의 멋진 카페를 방문해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아내는 이곳저곳 다니는 것 보단 한 곳에서 한가하게 쉬면서 얘기하는 걸 더 좋아한다.
지역 맛집도 좋긴 하지만 둘 다 입이 짧아 먹는 것과 볼거리에는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가까운 춘천부터, 남해, 여수, 통영, 목포, 담양, 전주, 속초, 제주까지 대충 몇 번씩 가본 것 같다.
갈수록 선택지가 좁아지지만 여행은 장소보단 호텔 예약 날자를 기다리고, 집 떠난 낯선 경험들에 의미를
두면 될 것도 같다. 백수 남편에게 아내의 휴가는 유일하게 아내를 위한 일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다음 휴가도 날짜가 나오면 아내를 만족시킨다는 핑계로 더 즐겁게 놀 계획을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