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백수 일기
오늘은 큰 딸 생일이다.
2000년 아내를 만나 2001년 결혼을 하고 2002년 큰 아이가 태어났다.
2002년 월드컵 4강 때 갓난아기 머리에 빨간 두건을 씌어 안고 압구정 로데오로 나가 붉은 악마가 되어
거리 응원하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다음 해 9월 둘째가 태어나고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큰 아이는 유독 빵을 좋아해 대전 성심당까지 가서 빵을 사 올 정도라, 생일날 아침에 쟝블랑제리에서 빵만
사오면 된다고 했다. 미역국 끓이고, 생일케이크 초를 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꼰대 아빠의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오전에 딸들과 낙성대 빵집으로 30분 차를 몰아 빵을 사들고 12시에 돌아와 아점으로 먹었다.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먹는 아이들과 함께 먹어서인지 모처럼 정말 빵이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라는 서은국 교수님의 글이 떠올랐다.
어떤 외식보다도 즐겁고 맛있는 생일 파티였다. 큰 딸이 처음 초등학교 등교 하던 날, 학교 정문에서 헤어져 운동장 걸어가는 옆모습을 울타리 밖에서 계속 쫓아가며 보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리 대견했는지..
방금은 동생을 데리고 3시간 동안 걷고 등산도 했다며 씩씩하게 지나간다.
내가 부모 사랑을 모르고 자라서인지 아이들 어렸을 때는 이쁜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아내가 독박 육아했다고 투덜대도 할 말이 없을 만큼 하루하루 생존과 욕망에 지배당했을 것이다.
아내가 때마다 아이들과 자주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나마 그런 아이들과의 추억들이 남아 있기에 조금은 위안이 된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리만큼 특별하게 해 준 것이 없는데 과분하게 잘 커줬다.
아마도 엄마의 온전한 사랑이 아빠의 부족함을 메우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평생 그랬듯이 남편 역할에만 치중해도 별 아쉬움이 없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냥 중년 백수의 역할만 잘 소화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