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백수 일기
며칠 전 건강검진 결과가 카톡으로 전송되었다.
오랜만의 건강검진이었지만 위내시경에 문제가 없었기에 이상은 없을 것 같았다.
다만 3년 전 기립성저혈압실신 이후 자신감이 떨어졌고, 자다가 손이 저리기도 해 뇌경색 같은 뇌질환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심뇌혈관 나이가 내 나이보다 11살이나 젊게 나왔다.
사람이 간사해 뇌심혈관 나이가 젊다고 하니 컨디션이 왠지 좋은 것 같다. 4년 전 검진에서도 장상피화생이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소화가 잘돼기 시작한 것처럼..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실신 이후에는 심장이나 뇌혈관에 문제가 있을 거라 내심 걱정했다. 한번 잘못 생각하면 누가 뭐래도 평생 바뀌지 않는 내 확증편향이 어리석고 어리석다.
내가 확신하며 살았던 많은 것들은 대부분 틀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틀린 정도가 아니고 정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삼십 대까지도 대머리가 된다고 콤플렉스를 갖고 살았는데 아직까지도 풍성하다. 위가 안 좋다고 평생 믿었는데 나이에 비해 위 상태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중년 이후 뇌졸중을 걱정하며 살았더니 뇌심혈관 나이는 오히려 젊다니 말이다.
오늘 오전 아내와 카페에 갔다가 오후에 운전면허증 갱신을 위해 강남운전면허시험장을 갔다.
10년 전 운전면허 갱신하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갱신을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시험장 옆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2종 보통에서 1종으로 갱신했다. 다음 갱신 년인 2035년을 보며 2015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과연 2025년은 올까 하는 두려움과 아이들이 모두 대학생일 거라는 꿈같은 상상이었다.
10년 전이면 큰 아이 중1, 막내는 초등 6학년이었다. 그렇게 막연했던 2025년에 이렇게 와있는 내 모습을, 그때로 돌아가 보여주고 싶다. 반납한 10년 전 면허증 사진과 오늘 찍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똑같이 급하게 간이 사진관에서 찍었는데 오늘 나온 사진이 더 젊고 안정감 있게 잘 나왔다. 거기다 내 육체 나이도 아직 10년 전이라고 나라에서 공식 인정해 준 것 아닌가.
올 것 같지 않은 2035년을 상상해 본다. 두 딸들은 직장인이 되어 결혼을 했던지, 왜 결혼을 안 하냐고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내 모습은 어때야 하는지,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생각한다. 지난 10년만큼의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지만 사람 일을 누가 알랴? 놀라운 일이 있을지, 심뇌혈관 나이처럼.. 내가 꾸준히 글 쓰고 그림 그린다면..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매일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