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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Aug 24. 2024

축구 결승과 부부싸움

결혼 19년 차 일기

축구 결승과 부부싸움     2019년 6월 16일


 오늘 20세 이하 월드컵 축구 결승이 새벽 1시부터 조금 전 3시에 끝났다.

또 오늘은 6월 16일 결혼기념일이다. 기적 같은 명승부를 펼치며 결승까지 오른 우리 팀은 우크라이나에게 3:1로 역전패 당해 준우승에 그쳤고, 나도 그런 것  같다.


 오늘은 아내와 교보문고에 가서 아이들 교재를 사고 카페에 갔다가, 큰 애가 저녁 먹으러 오자 떡볶이를 만들어 온 가족이 즐거운 저녁 시간을 가졌다. 친구 부부도 찾아와 동네 카페 정원에서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돌아와 새벽에 있을 축구 결승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행복한 하루가 지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아내가 애들이 마루에서 컴퓨터로 숙제를 하니 조용히 보라고 한다. 오늘도 여러 번 나에게 애들 들뜨게 축구 얘기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한 번 상기시킨다. 결승전이라 아이들과 보고 싶었지만, 아내 말을 따라 참고 있었다. 아이들도 보고 싶어 함께 응원하면 좋겠는데 나보고 조용히 하라며 빼는 소리를 해댄다. 자꾸 잔소리를 들으니 위축되고 무슨 죄짓는 사람처럼 축구를 보려니 흥이 나질 않는다.

 거기다 골이 들어가도 소리치지 말라고 하니 월드컵 때 부부싸움 하던 기억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그때도 나만 기분 상하게 하고 아이들과 신나게 보던 기억이 떠오르며, 어차피 볼걸 나한테만 잔소리하는 아내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제발 적당히 하라고 하니 한마디도 지지 않고 끝까지 자신이 옳다며 싸워 이기려 한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싸우면 손해라는 생각에 참고 참아 본다. 이러다 분명 큰 싸움이 될 것 같아 그만하자며 실랑이는 중단되었지만, 서로 감정이 상해 아내는 베개를 가지고 거실로 나갔다.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 축구도 재미 없어지자, 아내의 못된 버릇을 고쳐주어야 할 것 같았다. 저렇게 남편한테 불필요한 잔소리를 하고,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덤비는 사람과는 단 하루도 같이 살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완벽한 하루 속에서, 이렇게 완벽한 아내와도, 이렇게 행복한 기다림 속에서도, 나는 갑자기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아내는 눈곱만큼도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안다. 오직 아이들만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내 경솔함을 알기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 말을 했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서로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아내의 의도가 나를 기분 나쁘라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엄마의 사랑인 걸 뻔히 알면서도, 그것이 듣기 싫다며 시비를 거는 너도 참 못났다. 엊그제 내가 여은이에게 한 말처럼, 선생님의 의도가 너희를 위한 것이면 절대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 불편한 감정으로 혼자 축구를 보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강인 선수가 페널티킥을 얻는 바람에 미친척하고 마루로 뛰쳐나가 환호성을 지르며 규은이와 아내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시큰둥하던 아내도 못 이기는 들어와 페널티킥 골을 보면서 축구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기분이 조금씩 풀어졌다.

 

 지나간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면 안 된다.

그냥 넘어가면 없던 일이 되고, 내가 옳았다고 증명하려 들면 끝까지 싸우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부부라도 서로의 영역이 있고, 그건 어느 누구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모른 척 눈감고 좋은 부분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결혼 18주년이다. 

우린 이미 결승전에 맞붙은 팀이니 그 누군가는 준우승을 해야 한다.

결혼이란 결승전을 하루하루 즐기며 사는데, 우승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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