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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Aug 24. 2024

깨당 잠버릇

결혼 18년 차 일기

깨당 잠버릇      2018년 6월 28일


 오늘 아침도 아내와 싸울 뻔했다.

기분 좋게 잠을 잘 자고 일어났는데 아내가 또 잔소리를 한다.

또 팬티 벗고 잤냐며 아이들이 시험공부하느라 밤새고 새벽에 들어왔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뭐냐며 핀잔을 준다. 당신 때문에 악몽에 시달렸다며 제발 옷 좀 입고 자라고 한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이런 잔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는데 오늘은 강도가 더 세진 것 같다. 

내 방에서 내가 잠도 편하게 자지 못하냐며 대꾸를 하니, 딸 가진 아빠가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며 맞받아 친다.

 

 그렇지 않아도 오십이 넘어가니 아침에 일어날 때도 예전 같지 않고, 자신감도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 아내마저 아침부터 구박을 하나 싶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침대서, 나는 바닥에서 자는데 자다 보면 나도 모르게 팬티를 벗고 이불도 걷어차 버린 채 방바닥에 누워있으니 민망한 모습은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중고생 딸들이 혹시라도 볼까 봐 아내는 항상 노심초사하며 아침마다 잔소리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나도 조심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자다가 나도 모르게 그러니 억울할 노릇이다. 어쩌면 조금씩 스러져 가는 내 남성성을 확인하려는 마지막 안간힘 일수도 있고, 공격하지 못하는 자의 엄포일 수도 있다.  젊어서는 수줍게 감추려 했던 그것이,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려는 안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아침 기분은 망쳤고, 아내와도 불편했지만 이 정도에서 더 이상 확전은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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