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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r 18. 2024

죽음이 없는 일상

영화 <부활>

- 당신도 그 일을 봤다면 이런 거 다 하찮아질 거예요.

- 네가 본 게 뭔데?

-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 예수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

- 그분은 여기 계세요.

- 유령인가? 도깨비야? 죽어도 죽지 않는?

- 마음을 열고 봐요.

- 동료들 이름을 대면 자유를 주지.

- 난 이미 자유로워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래서 로마군의 수장 클라비우스에게 심문을 받는다. 이 모든 과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마리아는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난 이미 자유로워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당사자인 클라비우스는 제자들이 모두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는 돈을 원하지도, 명예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모든 일을 속히 끝내고 '죽음이 없는 일상'을 살고 싶을 뿐이다.


철저한 이방인인 가상의 주인공, 클라비우스는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순간을 직접 목격했다. 예수의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과 돌무덤을 봉인하는 데까지 앞장선 인물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예견된 것이었다.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 예수의 무덤 앞을 지키기로 한다. 혹시라도 부활이랍시고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갈까 걱정한 것이다.


결국 시신은 사라졌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떠드는 거리의 사람들만이 남았다. 제자들을 쫓던 클라비우스는 마침내 보고 만다, 며칠 전 십자가에서 죽었던 예수의 모습을. 그가 살아 숨을 쉬며 앉아 있었다. 자신을 환영한다는 예수님 앞에 주저 앉아버린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라가보기로 한다. '두 가지 모순된 일'을 경험했다는 편지를 남긴 채.


모두가 잠든 새벽, 예수님께 묻는다.


-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네요.

- 마음 가는 대로 말하라.

- 이 모든 게 제가 알아온 세계와 일치하지 않아요.

- 눈으로 보고도 아직 의심하느냐, 그러니 보지 못한 자들은 어떻겠느냐? 무엇이 두려운가.

- 이것이 정말 진실인지, 제 모든 걸 걸어도 되는지...

- 그렇다면 그분을 알기 위해 힘쓰라.


막달라 마리아에게 물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예수님께 묻는다. 진정한 진리 앞에서 고민한다. 내 모든 삶을 걸어도 될까요. 내 세계가 깨어질까 봐 두려워요. 나는 아직 부서질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신다. 확신? 평화? 죽음이 없는 일상?


그는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병든 자를 고치실 때 모두 함께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을 겪고도 그가 단숨에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 자신의 모든 걸 걸어도 될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야를 걷는다. 천천히 내려놓고자 함이다. 지위, 관념, 편견, 의심을 조금씩 버리기 시작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진정 받아들인 사람은 삶의 모습도 다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목을 매는 것에 목을 맬 필요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고, 세상의 것은 언젠가 썩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안에 부활이 있는가, 물어보면 자신이 없다. 내게 부활 신앙은 클라비우스만큼이나 먼 이야기 같다.


이 모든 일을 겪고도 변하지 않는다고? 질문이 내게 돌아온다. 제 모든 걸 걸어도 되나요... 나 역시 묻는다. 난 이미 자유로워요. 마리아의 표정을 기억한다. 네가 날 죽이든 살리든, 난 이미 자유로워. 내 목숨은 네게 달려 있지 않으니까. 부활은 예수님의 것이니까.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분의 사랑이 나를 감싼다.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는 항상 승리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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