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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Apr 01. 2024

수축과 이완

들숨은 짧고 날숨은 길다. 짧게 들이쉬면서 길게 내쉬려는 욕심을 부린다. 반복되면 숨 쉬는 법을 잠시 잊는다. 일을 할 때나 긴장할 때, 할일이 태산 같을 때 들쭉날쭉한 숨을 쉰다. 잔뜩 수축되었다가 준비된 에너지를 모두 쓰고 나면 저항 없이 이완된다. 소파에 추욱 늘어져있을 때 비로소 나는 해방된다.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곧 3개월이 되어간다. 슬슬 위기가 온다.


나를 쉬게 하는 것... 혼자 해쭈를 보는 순간. 퇴근하려고 노트북을 덮는 순간. 오빠와 티비를 보는 순간. 편한 친구와 수다 떨 수 있는 모든 장소.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순간. 요즘은 기도할 때나 찬양할 때도. 육체적으로 딱히 쉬는 행위는 아니지만 영혼이 말랑해지는 느낌이다. 요즘 특히 너무 하나님이 좋다. 믿음이 있다는 게, 매일 넘어지면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다시 일어선다는 자체가 기쁘다.


내가 쪼그라드는 때... 어쩐지 일을 하고는 있는데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 나의 밑천이 드러나는 순간.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믿고 멋대로 잡아놓은 약속들을 비로소 해내야 하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의심될 때. 사무치게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당장은 그럴 기미도 없다는 걸 느끼는 것.


어느 날은 한없이 평안하다. 큰 문제도 없고, 있다고 한들 일상에 어떠한 흠도 내지 못한다.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자각이 있을 때는 어떤 말을 들어도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어긋난 조각들이 쌓여 조금씩 비껴간다고 느낄 때면 무엇을 해도 쉬이 회복되지 않는다. 갑작스런 불안이 밀려와 나를 덮친다. 기대만큼 못 해낼지도 모른다거나 걔는 날 싫어해... 라는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가만히 있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다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해도 결국은 기도에서 해답을 찾는다. 기도하는 순간의 내가 가장 반짝이는 것 같다. 딱히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의지하는 분이 잘났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붙잡는 성경 구절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 5:14]. 불이 꺼지지 않는 동네의 모습이 보인다.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믿음을 갖고 싶은 것 같다.


오늘도 조깅을 했다. 교회 사람들과 뛰기로 하고 4번째다. 지난번까지는 호수를 한 바퀴 뛰면 죽을 것 같아서 쉬었다가 다시 뛰곤 했다. 그렇게 세 바퀴 정도를 달리고 갓생을 살았다고 자축하며 돌아왔다. 어쩐지 오늘은 다들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별로 쉬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었다. 잠깐 쉴게요...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냥 최면을 걸었다. 하면 할 수 있다고, 안 쉰다고 죽는 거 아니라고. 덕분에 세 바퀴를 내내 달렸다.


거의 내 페이스 메이커처럼 달리던 친구가 말했다. 지구력이란 건 힘들다고 멈추면 절대 길러질 수 없다고. 정말 힘든 순간에 조금 더 달리면 그 초과분이 체력으로 쌓인다고 했다. 매번 한 바퀴만 뛰는 사람은 영영 한 바퀴만 뛸 수 있다며. 아직도 다리가 저리다.


고종석 작가의 <문장>이라는 책을 읽는다. 솔직히 타의로 읽는데 무척 유용하다. 글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일할 때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배우고 왔어도 힘들었겠지만). 이 책도 대표님께서 추천해주셨다. 한 달 전쯤 <편집가가 하는 일>이라는 두꺼운 책을 읽으며 지쳐갈 때쯤, 이 책이 더 좋다며 일러주셨다. 확실히 더 실용적이고, 읽는 동안 채워지는 느낌이다. 이미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밑천을 조용히 가린다. 조금만 더 늦게 발견돼라... 아예 발견되지 않으면 좋고...


어느 날엔 일하는 게 정말 괜찮았다가 어느 날엔 몸과 마음이 모두 뻐근하다. 미팅과 버스, 책상과 소파, 카페와 식당, 아침과 저녁, 노션과 카톡, 책과 글, 구속과 해방, 사무실과 오빠집... 모든 삶의 영역을 대입해도 이상하지 않다. 아무래도 사는 내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다 끝날 것만 같다. 둘 중 어느 한 쪽이라도 없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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