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환각 1

by Ruiz

집에 도착하자 입고 있던 정장을 소파에 내팽개 친다.

분명 피곤한 하루를 보냈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불면증이 있는 나는 오늘 하루도 잠에 들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수면제의 힘을 빌려야지 생각하며 수면제 약통을 집어 든 순간 눈앞이 어두워졌다.-


어지럽다...

점점 풍겨오는 향긋한 향기에 서서히 눈을 떠보니

나의 잠옷은 우아한 드레스로 바뀌어 있었고,

눈앞에 보이는 고급스러운 식탁에는

매우 비싸 보이는 찻잔과 로즈힙 차를 담은 우아한 은색 주전자가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본 적 없는 아주 낯선 남자가 있었다.


그 밖에 뭐가 있는지 탐색하려던 찰나, 나는 내 앞에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하여 그 남자의 눈을 피하는 의미 없는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그 남자는 이 하염없이 흐르는 어색한 시간을 깨고 싶었는지

조용히 웃으며 나에게 앞에 있는 차를 마실 것을 권했다.


담백한 향기에 침샘이 흐른다.

하지만 최근에 본 글에서는 다른 세계의 음식을 먹으면 원래 세계로 못 돌아간다는 미신이 있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이 향긋한 차는 뒤로한 채 상황을 분석해 보았다.

커피를 내리고 있어야 할 바리스타는 존재하지 않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어야 할 손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엔 나랑 이 사람 둘뿐.

그럼 내가 할 것은 정해져 있다.

내 앞에 있는 남자를 조사해 보는 것.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은색 바바리안 코트에 검은색 구두, 검은색 정장 바지, 그리고 검정 니트.

지금 있는 고급스러운 찻집에 딱 맞는 옷이었다.

이 사람이 궁금하여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어떤 것을 하다 여기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등등.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남자는 조용히 차만 들이킬 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때 그 남자는 나에게 차를 마실 것을 권했다.

그러곤 깨달았다. 내가 먼저 제안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은은하게 퍼져있는 로즈 향,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우아하게 어울려 날 어지럽힌다.

돌아가지 못한다는 미신을 무시할 정도로 이 차를 마시고 싶다.

분명 이 차를 마시면 불면증이 있는 나도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은색 주전자의 손잡이를 조심히 잡고 비싸 보이는 찻잔에 나의 품위를 담아서 차를 따라본다.

향기로운 향이 주전자를 빠져나오면서 내 뇌를 강타하는 느낌이다.


마시려고 하자 그 남자는 나에게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조금만 먹으라고 한다.

왜 그런 의미 없는 말을 하는 것일까?

이런 향이 좋은 차를 찻잔에 들이부었으면 마셔야지.

마시려는 순간에 그 남자는 나에게 이 로즈힙 차의 꽃말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조금씩 먹으면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져 먹기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는 순간 신맛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후회해 봤자 늦은 시간일 것입니다."


내 앞에 있는 남자는 나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난 생각했다


'저주하기는 네가 권한 거면서'.


로즈힙 차를 기품 없이 입안에 들이부었다.

입안에 향기롭게 느껴지는 장미의 향과 단맛이 나의 기품 없는 행동을 후회하지 않게 도와준다.

이내 삼켜 본다.


내 목에서 느껴지는 이것은 차가 아니었다.

단맛이 사라진 뒤 느껴지는 신맛과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 나도 모르게

"살려줘"

라고 비명을 질렀다.

점점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고통만 들이킬 뿐이었다.

의식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오늘 하루 분명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을 내 배가 비명을 지르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빼내려 토를 했다.

첫 번째로 토했을 땐 나의 체액이 나왔고,

두 번째로 토했을 때는 후회가 나왔다.

세 번째 토를 인지하지도 못한 남은 시간,

그 시간에는 마지막 숨이 나왔다.


나의 불면증은 치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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