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병

환각2

by Ruiz

분명 깨어있을 나는 자고 있지 않다.

자고 있는 나는 깨었을 수도 있다.

잠을 자면서도 이상행동을 보이는 장애.

나는 몽유병을 앓고 있다.

-

자고 있음에도 움직이고 깨어있음에도 잘 수 있는 몽유병은 흔하디 흔한 질병은 아닐 것이다.

그래 난 분명 무슨 짓을 했다.


일어나 보니 보이는 흰색의 익숙한 천장 하지만 친근하지 않은 미지근한 공기,

내가 앉아 있는 나무 바닥은 차갑기만 하다.

잠을 자다 몽유병으로 인하여 부엌까지 온 것 같았다.

찌뿌둥한 몸을 풀어보려 기지개를 켜본다.

이내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에 좋은 그립감, 희고 반짝이는 은색 빛깔의 칼 하나.

내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었다.


'요리를 했었나?' 하고 생각하는 사이 보이는 은색을 더럽히고 있는 검은색에 가까운 적색의 액체,

이제야 느껴지는 피비린내 "오 이런" 집안을 떠돌던 따스한 공기는 어느새 나의 칼에 묻어있었다.

불안감에 젖은 나의 심장은 점점 빨리 뛰기만을 반복한다.

이내 둘러보는 익숙했던 공간.

나의 방에는 뭔가가 있었다.


흰색의 도화지 같았던 이불은 빨간색이 되어있었고 익숙지 않은 철분 냄새가 나의 방을 떠돈다.

빨간색으로 물든 이불에 희미하게 보이는 굴곡.

나의 방에는 누군가 죽어있었다.

이제야 느껴지는 현실감각, 숨은 잘 쉬어지지 않는다.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려 하다 이내 몰려오는 두려움.

들키지 않기 위해선 숨겨야 한다.

'서랍장? 냉장고? 화분?'

생각하는 사이 들리는 청량하고 익숙한 소리.


"띵-동"


생각이 멈춘다.

아니 생각이 너무 많아진다.

늦은 시간에 누구지? 경찰인가? 혹은 강도인가?

눈은 깜빡이지 못하고 나의 신체는 얼어붙어 있었다.

오직 심장만이 움직이며 나를 살리려 애쓴다.

눈조차 깜박일 수 없는 멈춘 시간.

하지만 종소리는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다시 들린다. "띵-동"

숨겨야 한다.


아니 숨어야 한다.

옷장? 침대 밑? 창고? 창문?

아파트의 조명이 다 꺼진 어두운 시간.

이제 뛰어내리는 것 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생각할 시간조차 아깝다 살기 위해선 도망가야 한다.

신에게 빌어보는 사죄

'죄송합니다. 정말 죽여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죽인 게 아니라 제가 몽유병이 있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살고 싶습니다.'

사죄 속에서도 변명을 하려는 나의 머리는 나를 혐오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 빨리 집안에 울리는 종소리.

너무 시끄러워서라도 이제 뛰어야겠다.


창문을 열었다.

급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의 머리를 식혀주는 시원한 공기.

천천히 난간으로 다가가 사뿐히 넘어본다.

조용해지는 종소리와 함께 차분해지는 마음.

'근데 여기 몇 층이었더라?'

정신을 차리는 사이 손에는 힘이 풀리고 떨어진다.

떨어지며 귀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 소리,

그때 섞여 들리는 익숙한 절규의 목소리.

게슴츠레 눈을 뜨고 보이는 진실 "오 이런" 이건 꿈이다.

꿈일 것이다.

나는 자고 있다.

분명 움직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의 몽유병은 치료되었다.

작가의 이전글불면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