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부부의 동남아 한 달 여행기
과학자들은 우주복과 비슷한 열방호복을 입고 활화산을 관찰하는 데 이때 조심해야 한다. 생명의 근원을 연상시키는 절대적이고 순수한 아름다움에 매료돼 순간 거기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에 빠지곤 하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맹목적으로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때론 앞뒤 없이 뛰어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인간성의 약점 때문에 우린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모른다.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녹색의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사진. 맑은 바다에 둥둥 떠서 물고기와 다정한 손장난을 치는 영상은 찰나의 순간. 온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엔 동남아로 가자!”
체감온도가 40도가 넘는 기온,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아파트 입주,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5년 차 신혼부부의 부담... 등 여행을 가지 말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그 강렬한 끌림 앞에서 모두 힘을 잃었다. “그냥 가자”
언제나 갈망은 합리적인 생각보다 매력적이다. 우리는 지금은 갈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금이 아니면 그 ‘때’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일상의 권태로움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갈망으로 바뀌어 여행이라는 탈출구를 찾게 된 것 같다. 매일 같은 거리를 출퇴근하고, 같은 사람과 비슷한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 사소하고 막막한 고민들을 하다가 드라마를 보며 잠시 잊어버리는 그런 하루하루에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삶이 건조했다. 우리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새로운 곳을 향해 여행을 가야 하는 결정적이고 단순한 이유였다.
한 달 여행을 간다니 부모님의 반응도 탐탁지 않았다. 더우니 조심하고, 짐도 잘 챙기라는 어머니의 말투에서 철없는 것들이라는 눈초리가 뜨겁게 느껴졌다. 이왕 철없는 애들 취급받는 김에 이번 여행으로 무언가를 얻어야만 한다는 압박 따윈 내려놓기로 했다. 여행을 결정한 날부터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작은 소파에 남편과 몸을 끼여 누워 과자를 나눠먹으며 여행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저기 꼭 가보자. 우와 진짜 맛있겠다, 저거 꼭 먹어야 해!” 상상력은 사람을 어디로든 데려다준다고 했던가. 우리는 이미 그곳에서 먹고 즐기며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낯선 세상에 대한 일렁이는 호기심, 순수한 기대만으로도 퍽퍽한 일상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의 여행후보지는 동남아국가 였다. 이곳저곳을 알아보며 선택의 폭을 좁혀가던 끝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맛있는 열대 과일이 가득한 곳, 뜨겁고 신나는 여름을 보낼 수 있는 3가지 국가를 골랐다. 바로 베트남(나트랑, 달랏) , 말레이시아 (쿠알라 룸푸르), 싱가포르였다!
잔잔하고, 어쩌면 권태로운 일상에 매몰되어 가던 5년 차 신혼부부에게 거창한 여행의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떠나기로 했다. 새로운 곳을 향해서. 덥고 또 더운 동남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