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랑 여행의 시작
체감온도 40도의 나트랑을 걷는 일은 뜨거운 햇빛 속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숙소를 향해 가는 버스에서 내리자 장기여행자의 거대한 크기의 캐리어 두 개와 배낭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우리가 이상기후라는 동남아에 왔다는 것을.
이것저것 잔뜩 담아 온 짐은 무거웠다. 그런데 남편은 무거운 캐리어 두 개를 혼자 끌려고 했다. 땀을 뻘뻘 흘려면서도, 구석구석 골목을 헤매며 숙소를 찾으면서도 그는 묵묵히 자신이 짐을 들 것을 고집했다. 물론 헬스와 수영으로 단련된 남편의 팔뚝은 내 팔뚝보다 세배는 두꺼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짐을 혼자 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갑자기 왜 이렇게 오버를 하지’
유난스럽게 내짐까지 들고,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하게 하는 걸보며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다.
" 이리 줘. 내가 들게"
이러다 말겠지 했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고 무덥고 힘든 순간에도 남편은 묵묵히 무거운 짐을 들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무거운 것을 들까 봐 걱정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의 배려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한자 爲 [위할 위]는 코끼리가 사람의 짐을 대신 드는 모습에서 따왔다고 한다. 누군가의 짐을 들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깊이 알게 되었다. 그가 나를 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 모습을 바라보다. 3년 전 유럽여행 갔을 때의 남편이 떠올랐다. 짐이 무겁다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짐을 싸는 방식이 너무 꼼꼼한 남편과 그때그때 다르게 싸는 나의 차이 때문에 얼마나 말싸움도 많이 했는지.. 서로 더 무거운 짐을 들면 약 올라하며 삐죽거리곤 했던 우리였다. 그때와는 달리 남편은 묵묵하게 가방 들고, 나의 웬만한 칭얼거림은 웃어넘기는 수준이 되었다. 우리가 함께한 그간의 시간, 처음으로 마주하는 문제들을 가장으로서 떠맡아오며 남편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사뭇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는 저질체력에 칭얼 되기를 좋아하는 나의 연약함을 이해했다. 그런 남편이 짠하게 느껴졌다. 될 수 있으면 나도 짜증 내지 않고, 남편이 귀찮아하는 숙소 정리나,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들을 잘 맡아서 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예전에는 짜증만 나던 서로의 모자람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사랑의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 나가는 중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많은 것들 중에서 사랑은 단연 으뜸이다.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인 서로를 말없이 토닥이는 모습은 “사랑해”라는 말을 대신한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의 모습에는 사랑이 담겨있었다. 함께 있을 때 난로가에 앉아있는 듯 항상 따뜻했던 이유도. 싸우다가 먼저 배시시 웃으며 사과하자고 하는 이유도, 맛있는 것을 항상 양보하는 이유도 단 한 가지였을 것이다. ‘사랑.. ’한 손에는 무거운 짐을 들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길까지 찾으며 내 앞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아주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