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태백산맥 문학관
- https://www.boseong.go.kr/tbsm
관람시간: 09시~17시(동절기), 09시~18시(하절기)
관람료: 2,000원
휴관일: 매주 월요일, 설날. 추석당일, 1월 1일
문의전화: 061) 850-8653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열한 번째, 태백산맥 문학관이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한 문학관이다.
대학 시절, 긴 호흡의 대하소설이란 걸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고 싶은 건 많고 돈은 없던 학창 시절. 나는 돈도 없으면서, 책을 빌려 읽는 것이 좀 싫었다. 그냥저냥 읽어볼까 하는 책은 빌려 읽기도 했지만, 빌린 책이 너무 재미있으면 다시 돌려줄 때 뺏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빌려 읽었다가 결국에는 새 책을 사서 책꽂에 꽂아둔 책도 두어 권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치기 가득했던 그 시절에 나는 그렇게 고집스러웠다. 그래서 대하소설도 빌려 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돈을 벌면 꼭 사서 읽으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돈을 벌게 되어도 또 여전히 삶은 녹록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사회 초년생에게 10만 원이 넘는 대하소설 한 세트를 덜컥 사는 게 쉽지 않았다. 돈을 벌기 시작하니 돈 나가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돈 쓰는 게 더 아까워지고 그랬던 것 같다. 결국 몇 년 후 결혼하고 나서서야 '태백산맥'을 구매했고, 그 해 겨울을 태백산맥 속 보성과 벌교, 지리산에서 보냈다. 그렇게 읽은 첫 대하소설이 '태백산맥'이다.
그리고 나는 그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는 문학관을 방문한 것이다. 한 편의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는 문학관을 말이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입장료는 무인발매기를 통해 결재할 수 있다.
참고로 내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어색한 외래어의 사용이다. 고객의 '니즈'라든가 '키오스크'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무인 발매기, 자동 발매기, 고객의 '요구' 같은 우리말을 잘 쓰고 있었는데, 어떤 놈(?)들이 갑자기 키오스크, 니즈를 자꾸 사용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더니, 결국 일상화되어 버렸다. 살짝 화가 나기도 한다.
'키오스크'가 아닌 '무인자동발매기'를 보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나도 결국 꼰대의 길로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결국 꼰대인 건가? ㅎㅎㅎ)
어쨌든, 관람료를 결제하고 문학관에 들어서면 1층 첫 전시관부터 웅장해진다.
분단의 비극에 대한 비판적 반성은 우리 민족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며, 그 성찰이 바로 '태백산맥'이라는 권영민 평론가의 비평처럼, 그러한 비판적 반성이 소설 '태백산맥'의 서사의 중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4년간의 준비와 6년간의 집필. 이 소설은 10년이란 긴 세월 속에서 완성되었다. 4년간의 준비 기간, 어떤 사전작업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전시부터 이미 감동이었다.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10년간의 노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소설적 공간의 지도, 빨치산 은신굴에 대한 그림, 그리고 여러 상황 설정 등 조정래의 친필 노트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당시 지리산을 다니며 취재하던 작가의 옷과 지팡이 등산화도 전시되어 있어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도록 잘 구성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소설을 볼펜으로 썼던 작가는 볼펜은 찌꺼기(일명 볼펜똥)가 많이 나오고 얇아서 오래 쓰기가 힘들어 손에 쉬기 편한 만년필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공감했던 부분. 어쩌면 '태백산맥'을 잘 설명하는 대사일지도 모르는 이 한 문장!
와따, 니 참말로 용허다 이, 우리 해방정국의 문제 핵심이 농민 문제란 것을 우쩌크롬 알았드라냐!
일자무식의 농민, 상인, 천민들이 당시의 사회와 그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내적인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는 문장인데, 이 발화의 주체도 역시 일명 '무식자'이다. 나처럼, 이제 너도 깨쳤느냐는 표현에서 억압과 부조리에 맞서는 거대한 힘이 내적으로 성장하며 더 큰 연대로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총 4개 층으로 되어 있다. 3층은 옥외광장, 4층은 전망대인데 점심시간도 늦었고, 미륵사를 들렀다 천관문학관에 가려면 서둘러야 해서 3층과 4층은 관람에서 제외했다.
1층과 2층은 총 여섯 개의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 첫째 마당에는 4년의 준비와 6년의 집필에 대한 전시, 둘째 마당에는 태백산맥의 무대와 육필원고 탑, 셋째 마당에는 현대 문학의 지평을 연 '태백산맥'으로 이적성 시비, 무혐의 결정, 영화 태백산맥 등에 대한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2층 넷째 마당은 작가 조정래와 그의 문학세계, 다섯째 마당은 문학 사랑방, 여섯째 마당은 독자들이 기증한 소설 '태백산맥'을 필사 전시 공간(유래가 없다고 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이렇게 집필 준비, 집필 과정 그리고 반공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작가가 겪은 각종 고난과 국가보안법 위반 시비, 그리고 최종적으로 무혐의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지리산을 형상화한 삼각 도형의 전시물까지, 태백산맥이라는 하나의 소설을 주제로 한 문학관답게 세부적인 부분 하나하나 꼼꼼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2층은 조정래 작가의 삶과 문학세계, 세미나실이 있었고,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이 바로 독자들의 필사 전시 공간이었다. 나도 태백산맥을 감명 깊게 읽었고,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하고는 있지만 여기 필사본 전시실을 보며 첫 느낌은 '뭐지? 이 소설을 독자들이 이렇게 전부 필사를 했다고?'였다. 부정적인 평가가 아니다. 놀라움이었다. 도대체 이 긴 대하소설의 어떤 점에 끌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자 한 자 손으로 써서, 게다가 자신이 소장하지 않고 문학관에 기증을 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태백산맥은 1945년 해방 직후를 시작으로 1953년 한국전쟁 직후까지의 이야기다. 여순반란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제목은 '태백산맥'이지만, 빨치산의 주 활동무대였던 '지리산'이 소설의 주 공간이다. 차라리 제목이 '지리산'이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작가의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후에 '태백산맥은 민족의 등뼈로, 끊겨진 등뼈를 다시 잇는다는 심정'으로 제목을 지었다고 밝혔다.
- 나무위키, [태백산맥(조정래}]
김범우와 염상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둘 중 누구를 주인공으로 해야 할지는 의견도 분분하고 나 역시도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김범우가 주인공이라 여겼다가, 염상진을 주인공으로 보아야 할 것 같아 혼란스럽기도 했다. 등장인물만 25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런 방대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두 명 이상이 되어도 이상할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둘 모두를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김범우의 친구인 손승호, 소작인이었으나 빨치산으로 활동한 하대치, 양조장집 아들 정하섭 등도 주인공 급이라 보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주인공들'이 좌익 사상을 가졌고 이들의 빨치산의 활동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어 '이적물'이라 매도를 당하기도 하였고 군대에서 '금서'로 분류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소설이다.
현대 문학에서 상당한 업적을 남겼는데, '태백산맥'은 1997년 대하소설 최초로 1백 쇄를 달성했고, 뒤 이어 출판된 '아리랑', '한강'과 함께 한국 현대사 전체를 아우르는 '현대사 3부작'은 1천만 부 돌파라는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을 수립했다고 한다.
좌익 사상을 가진 인물들이 나오고 이들에 대해 우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여, 우익 단체들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하여 검찰에서 수사를 하였고, 오랜 시간 수사에 난항을 겪었고, 1994년 수사를 시작하여 2005년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다음 달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사건은 종결되었다.
전라남도 벌교를 중심으로 하여 빨치산 활동의 주무대인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걸쭉하고 찰진 전라도 사투리, 민중들의 입담까지 문장 하나하나가 토속적이면서도 해학적이다. 작가의 필력이, 그 긴 소설 어느 한 구석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힘차게 이어져 나가면서도 멋들어진 완급 조절까지 더 해져 독자들로 하여금 지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힘을 준다. 경상도 토박이인 나에게 전라도 사투리는 더없이 매력적이기도 했다.
'태백산맥'에 대한 여러 평가들이 있지만, '태백산맥 문학관' 홈페이지에 소개된 '김훈(문학평론가)'의 글이 가장 와닿았다. 김훈의 평론으로 탐방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태백산맥」의 거대함을 사랑하기보다는, 그 구체성을 사랑한다. 구체성이라는 것은, 삶과 역사에 대한 직접성, 이데올로기는 삶에 대한 직접성을 확보함으로써만 역사 앞에서 순결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관념이 아니라 생명의 분비물이다. 생명의 분비물일 때만,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가동시킨다, 우리는 태백산맥에서 그렇게 역사를 가동시키는 이데올로기의 힘을 읽는다.
한 줄 느낌
- 작가가 아닌 한 편의 소설을 주제로 꾸며진 문학관이라 구성이 집약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한 줄 평
- 두 번째 방문이지만 기회가 되면 또 한 번 더 가게 되고야 말 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