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순천문학관
- https://scbay.suncheon.go.kr/wetland/experience/0023/
관람시간: 겨울(11월~2월)-08:00~17:00, 여름(5월~8월) 08:00~19:00, 봄, 가을 08:00~18: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연휴
문의전화: 061) 749-4510(순천시청 문화예술과)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열 번째, 순천문학관이다.
거리가 먼 지역은 당일로 다녀오기 쉽지 않아 한 지역을 묶어서 한 번에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가능한 모토캠핑으로 숙박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으나 아직은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어쨌든, 먼저 전남 지역 문학관을 돌아볼 계획으로 2박 3일의 일정을 잡고 순천문학관부터 투어를 시작하였다. 문학관 투어로서는 첫 박투어(1박 이상의 투어)라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은 듯하다. 힘든 일정이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4월 말, 아직은 바닷가 캠핑은 바람 때문에 많이 추웠다.
투어 첫날은 가장 가까운 순천문학관부터 시작해서 천관문학관까지 총 3개의 문학관과 '남미륵사'까지 둘러볼 계획이었다.
특히 남미륵사는 철쭉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4월 말 철쭉이 만개하면 꼭 가 보고 싶은 곳이었고, 투어일정이 딱 좋아서 남미륵사까지 가려했으나 계획과 달리 시간이 촉박했다. 남미륵사를 들르면, 천관문학관 폐관 시간이 임박해 서둘러야 했다. 장거리 여행이고 서두르다 보면, 사고의 위험도 있고 해서 결국 남미륵사는 포기하고 문학관을 더 충실히 둘러보기로 했다.
투어 첫날 첫번째는 순천문학관이다. 순천문학관은 순천만습지 근처에 있는데, 순천만 습지나 국가정원과 엮어서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스카이 큐브'를 타면 순천문학관 바로 앞(순천만역)에서 내려서 관람을 할 수 있다. 문학관만 방문한다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애매하다. 주변을 아무리 봐도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나는 이륜차 모드의 내비가 안내하는 좁은 시골길을 따라 스카이 큐브 순천만역 아래쪽 어딘가에 주차했는데 자동차로 진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순천문학관은 김승옥관과 정채봉관이 ㄱ자 구조의 한옥으로 각각 세워져 있다.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두 채의 문학관과 사무실 건물이 있는데 모두 초가지붕의 한옥으로 되어 있다. 정감 있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김승옥관 정채봉관 모두 전시의 구성이 동일하다.
김승옥관
김승옥관 입구에는 김승옥이 남긴 '작가 정신' 내지는 작가로서의 철학을 담은 문장이 우리를 맞이한다.
"소설가란 스스로 '이것이 문제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봉사해야지 어느 무엇에도 구속당해서는 안 된다. 권력자나 부자의 눈치를 살펴서도 안 되고 동시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비위만 맞춰서도 안 된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다만 스스로의 가치에 비추어 문제가 되는 것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그리고 안에 들어서면 맨 처음, 그의 삶과 문학을 연대기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연대기에 소개된 작품들이 많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이 두 작품만으로도 김승옥의 문학적 위상은 충분히 설명될 것 같다.
김승옥은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해방 이후 귀국하여 전남 순천에 정착했다고 한다. '생명연습'으로 등단하였고 걸작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을 발표했다.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학관에 전시된 내용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부분인데, '이차돈'이라는 영화로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하였고 영화 시나리오 각본가로도 활동을 했다고 한다. 김승옥은 '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가이다. 광주민중학생 이후 신군부의 검열에 반발해 연재 중이던 소설 '먼지의 방'을 중단하며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던 작가이다.
대학 시절, 발표 수업 시간에 이제는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한 여학생이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발표했고,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도서관으로 가서 무진기행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여학생이 소개한 소설의 첫 문장.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그 여학생은 무진기행에서의 첫 문장에서부터 '무진'이라는 공간의 성격이 드러난다고 했다. 무진을 알리는 이정비는 잡초 속에 숨어 있는 도시이고 '산모퉁이를 돌아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 첫 문장을 통해, 마치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고 했다. (물론 당시에는 개봉하지 않아서 그 여학생은 예를 들지는 않았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그런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들어가는 '신비한 터널' 같은 기능을 첫문장이 하고 있다는 그런 설명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진은 소설 속에서 조차 비현실적인 공간이라고 발표했던 것 같다.
전시관은 정말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가득한 공간이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문학상 수상, 문인들과 주고받은 친필 서신, 김승옥 문학상에 대한 소개와 그의 대표작과 작품세계, 그와 관련된 스크랩 등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그의 작가로서의 삶을 잘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화감독, 시나리도 작가로서의 그의 삶도 소개되어 있다. 그가 각색한 영화들이 정말 많았다는 점, 너무 오래된 영화라 보지는 못했지만, 그 유명한 '영자의 전성시대'도 김승옥 각색의 영화였다.
문학관을 통해 작가에 대해 몰랐던 부분, 새로운 업적들을 알 수 있게 되는 점은 큰 수확이기도 하다.
정채봉관
입구에 그의 사진과 함께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문장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는 선배에게 '그대 뒷모습'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정확한 내용도 기억나지 않고, 무엇에 그렇게 감동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소중하게 읽었다. 그가 '어른이 읽는 동화'를 쓰는 작가라는 소개 글을 보고 '숨쉬는 돌', '물에서 나온 새', '멀리 가는 향기' 등을 읽으며 그에게 빠져들었다. 해외 이사를 하며 책들을 절반 가까이 정리하면서도 '정채봉'의 책은 아직도 책장에 꽂아두고 있다.
정채봉관 역시 같은 구성이다. 그의 삶과 문학을 연대기로 잘 정리해 두었고, 그의 작품들을 동화, 소설, 에세이, 시 등으로 장르별로 정리해 두었다.
정채봉은 해방 이후 순천에서 태어나 유아기에 광양으로 옮겨 여기서 성장하였다고 한다. 어릴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마저 일본으로 떠난 후 소식이 끊겨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정채봉 역시 광주민주항쟁의 충격으로 정신적 방황을 하였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가톨릭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신앙생활과 종교적 체험이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불교 세계도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호승 시인의 정채봉을 추모하는 글과 그의 친필 일기들, 그리고 그의 책과 작업실과 신문 스크랩 등등 다양한 자료가 많았고, 특히 다양한 분들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 같다. 법정 스님과의 인연, '정채봉'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오세암'을 비중 있게 전시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고, '국산' 애니메이션의 성공으로 당시 상당히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제패니메이션과 디즈니 같은 외국 만화 영화가 주를 이루던 한국 만화 영화 시장에서 국산 애니메이션을 성공은 이례적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외모, 그리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추구하는 그의 작품 때문이었을까? 그가 흡연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었고(나도 그 당시에는 담배를 피웠었다.) 대학 4학년이었던 2001년 그의 별세 소식에 한동안 마음 아파했었다. 왜 그렇게 일찍 가셨을까? 안타까워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검색해 보니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참 따뜻해지는 글을 쓰는 작가 정채봉, 한동안 잊고 지내다 이렇게 또 만나고 나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출구에 정채봉의 글귀가 우리에게 순천을 둘러보라고 권하고 있다.
부디 가시는 걸음걸음마다 아름다운 풍광 두르소서.
갑자기 그의 글이 읽고 싶어진다.
한 줄 느낌
- 아담한 한옥의 따뜻함 속에서 좋아하는 두 작가의 비슷한 듯 다른 문학관은 고요한 감동을 남겼다.
한 줄 평
- 순천에 온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 중 하나, 후회하지 않을 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