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끔 우리집 거실에 앉아서 빨래를 개고 있으면 집 안에서 돌아다니는 가족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가족들의 잘잘못이 눈에 띄곤 한다.
"남편, 그 옷을 꼭 입어야 해? 다 마신 물컵은 싱크대에 갖다 놓아야지."
"큰 아들, 세수는 한 거야? 벗어 놓은 옷은 제발 좀 빨래통에 갖다 놔."
"작은 아들, 너는 왜 서랍장 문을 열어놓고 안 닫고 다니는 거야?, 그리고 새벽에 라면 좀 그만 먹어!"
이렇게 보이는 사람에게마다 한마디씩 하고 있으면
우리집 큰 아들이 뭐라고 한다.
"아니, 거기 한 가운데 앉아서 다니는 사람들한테 그만 좀 뭐라고 해. 기세로 우리 모두를 누르려고 하잖아!"
음.. 내 모습을 객관화 하여 상상하니 내 모습이 너무 웃겼다.
손은 바쁘게 빨래를 개면서 가족들 모두에게 한마디씩 시비를 걸고 있었으니
너무 웃겨서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 때의 객관화 되었던 내 모습은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난 어디서나 그러고 있었다.
오늘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한 시간 책을 읽고 왔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길래
한 가운데 의자를 딱 갖다 놓고 모두를 나의 시야에 포함시켜 놓고 책을 읽었다.
이런 상태로 책을 읽으면 책을 읽으면서도 모두가 보인다.
친구들과 책을 세워 잔뜩 고개를 숙여 그 속에서 소곤 거리다가 나하고 눈이 딱 마주치면 자세를 바르게 하고
책 읽기 싫어서 고개를 막 이리저리 돌리다가 나랑 딱 눈 마주치면 얼른 시선을 책 속으로 돌린다.
괜히 옆에 친구들에게 붙어서 친구들 책에 시선을 주다가도 나하고 눈이 마주치면 재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책을 잘 읽고 있던 아이들도 모두 눈동자를 굴리면서 선생님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곁눈질로 확인하다가 나하고 눈이 마주치고는 어색한 눈길을 하곤 한다.
기세로 눌러버린 독서 시간.
교사로 25년 넘게 일하다 보니
한 눈에 모든 사람이 들어오는 장소를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것 같다.
그 장소를 찾아 모두를 관찰하며
모두의 행동을 한 눈에 파악한다.
그리고 그 행동에 바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 행동이 바로 고쳐질 때까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 장면들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생각하고 장면 밖에서 쳐다보면 너무 웃기기는 하다.
선생님의 온 몸에서 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고
아이들은 그 선생님의 기세에 긴장하며 눈치를 보고
살짝 일탈 행위를 하다가도 그 기세에 바로 원래대로.
하.. 어쩌다 내가 이런 인물이 되었는지.
나이가 먹을수록 기세로 사람을 휘어잡는 쓸데없는 카리스마만 커지고.
약간은 시끄러워도 애들이랑 같은 자리에 앉아서 농담을 주고 받으며 같이 웃었던 시간들이 그립다.
교직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그때
모르는 것 투성이에 온갖 실수를 저지르고 너무 힘들어서 눈물도 났던 그 시절
이리저리 치여서 마음이 힘들다가도
내 말에 예쁘게 대답해 주고 나에게 웃음을 보여주고 나에게 밝은 말들만 전하는 아이들을 보며 위로를 받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걸 위로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남은 기간 건강히 교직생활을 하려면
그 때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아이들이 나에게 보여주는 행동이 위로라고 생각했던 그 마음을 자꾸 되새겨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