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만 말을 잘 할 수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까

by 달려라토끼

학부모와 교사가 아이를 바라보는 생각이 다를 때가 있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나의 아이의 사회성에 대해 깨닫게 되며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런 학부모와는 대화가 쉬워진다. 교사는 아이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이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대화하고 있다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부모도 있다. 몇몇 학부모는 나의 아이가 집에서는 그렇지 않고 학교가 아닌 다른 교육 기관에서는 잘 지낸다고 얘기한다. 그럼 대화가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해마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유형 중의 하나가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는 아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아이에게 발표의 기회를 마련해 주면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다. 독서에 몰입 하며 스스로 관심 분야를 꾸준하게 탐구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일단 겉으로는 힘들어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감정과 대화에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그 아이의 이야기에 다른 친구들이 반박 하거나 질문을 할 때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반박이 되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며 공격적으로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분해서 눈물을 보일 때도 있다.


이런 아이의 학부모와 상담할 때 학부모는 보통 '우리 아이는 집에서는 잘 지내요'라던가 '어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선생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도 하고 활동도 잘 하더라고요'라고 이야기 한다. 이런 식의 학부모 반응이 나오면 나는 입을 다문다. 더 말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또래보다 성장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또래 아이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공통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서로 반응하며 대화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부모는 아이를 키울 때 집에 가만히 데리고 있으면서 차분하게 생활하는 습관을 강조했을 것이고 아이들과 뛰어노는 일보다는 독서를 중요하게 여겼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과 뛰어노는 일을 부모가 선택하여 허용했을 것이고 부모는 최선을 다해 아이와 대화하며 아이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또한 아이가 때때로 드러내는 영특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아이가 부모에게서 학습되는 것만큼 또래 사회에서 학습된다고 생각된다. 어떨 때는 부모의 영향보다 사회에서의 관계로 인해 더 많이 학습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아이들의 첫 사회생활 장소인 놀이터에서부터 생각해 볼까?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스스로 선택하여 놀이기구를 타고 넘어지고 다치면서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함께 놀이기구에 모여 있는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내가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먼저 다른 아이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면서 같이 원만히 대화가 될 때도 있고 무시가 되기도 하고 거부 당하는 경험도 할 것이다. 아이가 가정에서 보이는 영특함은 놀이터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있을 것이고 또래와 함께 어울리기 위해 내가 잘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부모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아이들을 내버려 둔다면 아이는 어느새 사회성이 발달되어 있는 아이로 쑥쑥 성장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옆에서 자세히 관찰하면서 개입 한다면? 안전한 놀이기구를 부모가 선택하고 아이가 스스로 놀이기구 방법을 관찰하여 이해하기 전에 부모가 다리 올려봐, 손을 잡아봐 하며 하나하나 가르쳐 주고,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의 말이 무시가 될 때는 부모가 나서서 대신 다른 아이에게 말을 전해준다면? 아이는 부모가 허락한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갇혀 버리고 말 것이다.


대가족의 자녀가 많은 시기를 지나 한 가정에 아이가 한둘인 시대인 지금,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기를 지나 많은 것들을 아이에게 투자할 수 있는 지금, 부모는 과거의 존중받지 못했던 나 자신을 떠올리며 나의 자녀는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비난하고 싶은 그 시대에도 부모는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며 자기 삶의 방식 속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방법으로 아이를 키워냈다. 시대가 변하여 그 방법이 변화가 있을 뿐이지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며 나는 나의 부모처럼 아이를 키우지 않겠어 하는 다짐은 올바른 생각이 아닐 수 있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필 뿐이지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아이들을 통해서 심리적 상처를 보상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아이가 어떤 분야에서만 두드러지고 영특해 보인다면 우선은 아이의 사회성을 걱정해 봤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세상의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지 못한 존재들이다. 당연히 주변의 많은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해보려고 해야 한다. 일대일로만 원만히 소통 하는 것이나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만 말을 원만히 할 수 있다면 부모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조금 위험해 보여도 아이들을 자유롭게 내버려 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교사는 한해 한해 아이들을 성장시키려고 노력한다. 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부족한 점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함께 적응하며 사는 것이 아이의 행복이고 또 우리 사회가 바람직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절대로 아이들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망신 주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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