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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Dec 27. 2021

큰길, 작은 길


일단 큰길은 잘 닦여진 도로를 말한다. 차 두대가 교차할 수 있는 길은 아니었고 한쪽으로 비켜서면 경운기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보폭의 길이었다. 그 길로 걸어 학교를 가면 20분가량 걸린다. 그에 반해 작은 길은 농로를 말한다. 그 길로 가면 15분이 채 걸리지 않게 학교에 도착했다. 미친 듯이 달리면 10분도 가능했다.

늦잠을 자면 선택의 여지없이 작은 길로 가야 했다. 작은 길은 추운 겨울에는 괜찮지만 여름이나 농번기, 특히 비 오는 날에는 신발이며 바지가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늦잠을 잤다면 무조건 작은 길로 가야 했다. 작은 길은 그 외에도 내가 무서워하는 큰 개들의 출몰이 잦았다. 목줄이 풀린 개를 나는 먼 거리에서도 잘 찾아냈다. 분명 개는 냄새를 맡거나 길을 활보하는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였다. 특히 개의 젖이 늘어져 있다면 그것은 암컷이고 지금 수유 중이므로 사납다는 결론이 아주 빠르게 계산되었다.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작은 길보다는 큰길로만 다녔다. 좀 여유 있게 일어나서 잘 닦여진 길로 가는 것이 안전하고 편했다. 위험요인이 적기에 큰길로 다니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작은 길은 변수가 많아 점점 꺼리게 되었다.


가끔 꿈에서 작은 길을 본다. 여전히 꿈에서 나는 작은 길을 통해 학교에 간다. 생각해보면 작은 길은 추억이 많았고 변수가 많은 만큼 기억할 일도 많았다. 달콤한 산딸기를 따먹을 수 있었고 누군가 가는 길에 풀을 묶어놓아 넘어지기도 했다. 풀을 꺾어 풀피리도 불 수 있었고 운 좋게 다람쥐를 보기도 했다.


나는 점점 편한 길, 안전한 길로 가려한다. 고학년이었던 나처럼 안전한 큰길을 선호하게 된다. 작은 길로 가서 예상하지 못한 일을 감내하기 싫어진 나를 보게 된다. 어릴 때는 겁이 나서 두려웠지만 지금은 내가 비겁해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지금 내 길은 어디일까?


큰길일까? 작은 길일까?

작은 길이라고 믿고 싶은, 큰길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비겁하기 싫어 겁이 난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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