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신춘문예 동화 이렇게 쓰면 떨어진다.
마녀의 지팡이
지팡이를 하날에게 건넸다. 그 늙은 마녀는 나뭇가지 같은 긴 손가락으로 지팡이를 받아 서류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지팡이는 저 스스로 과거의 행적을 기록했다.
하날의 눈동자가 지팡이의 기록을 따라 움직였다. 하날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기록이 끝나자 하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양양 마녀, 실패!”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제가 왜 실패인가요?”
“그럼, 반대로 묻지. 왜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인어공주는 분명 미소를 지었어요! 물거품이 되는 그 순간에도 말이죠. 성공 맞아요!”
이른 아침 지저귀는 아름다운 새소리 같은 내 목소리에 하날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반응에 익숙한 나지만 불쾌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너는 실패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날은 내 지팡이를 탁자 옆에 세워놓았다. 감히 내 지팡이를 함부로 대하다니! 나는 화를 억누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화를 참느라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 실패인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난 알아야겠어요!”
하날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날카롭게 서류를 넘겼다.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었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비극으로 끝이 났다, 이 말씀인가요? 왕자와 이루어지지 않으면 비극이라고 누가 그래요? 인간의 다리를 달라고 조른 건 인어공주라고요!”
“그냥 주었나? 대가 없이 주었느냐고 지금 묻고 있어!”
“그건…… 하지만, 흑마술은 반드시 대가가 따라요.”
“흑마술이 아니면 인간에게 행복을 줄 수 없었나! 방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억울했다.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갖게 되니 좋았나?”
“빈정대지 마세요! 나와 목소리가 바뀐 인어공주는 지옥의 숨소리 같은 목소리를 감추고 말을 못하는 척했어요. 말 못하는 인어공주를 다들 가엾게 여기더군요. 하지만 나는 어땠는데요?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수군거렸어요. 그 고통 알기나 해요?”
이제는 내가 하날을 노려보았다. 하날은 여전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너는 또 인어공주의 언니들로부터 머리카락을 받고 왕자를 죽일 칼을 내밀었지.”
“아니 그럼, 동생 살려달라고 그 난리를 치는데 어떻게 해요!”
더는 참지 못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이대로 마법의 능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뀐 그날 아침, 수정 구슬이 깨졌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손끝이 떨렸다. 이것은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녀 협회로부터 짧은 편지를 받았다.
마녀 협회에서 알린다!
친애하는 마녀 여러분!
우리는 그동안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마녀 탓에 끊임없이 인간들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50년 전만 해도 5,000명이던 마녀의 수는 현재 5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협회에서는 지금 이 시간부터 마녀들이 죽음의 강을 건너기 전, 한 번의 생명의 기회를 주기로 죽음의 신과 합의를 보았다. 우리는 죽음의 신에게 그에 대한 대가로 마법의 비밀 열 가지를 앞으로 5년간 제공하기로 하였다.
협회는「착한 마녀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마녀의 죽음을 막고 바닥으로 떨어진 마녀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
앞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마녀를 일제히 단속할 것이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다 발각될 시에는 자숙의 시간을 줄 것이며, 이와 동시에 만회할 기회가 단 한 번 주어진다.
인간에게 행복을 준 마녀는 마녀 협회의 꾸준한 지원을 받을 것이며, 이와 반대로 실패한 마녀에게는 마법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마녀 자격을 박탈할 것임을 알린다.
* 단, 생명의 기회는 협회에 등록된 마녀에게만 주어짐을 명시한다.
- 마녀 협회 대표 하날 -
마녀 협회에서 나를 감독하겠다고? 거기다 마녀 자격 박탈? 이제껏 인간들로부터 갖은 멸시와 고통을 당할 때, 협회는 나를 위해 무엇을 했지? 분노로 몸이 떨렸다. 나는 협회의 편지를 그 자리에서 태워 버렸다. 하지만 몰랐다. 동생이 내 몫을 포함하여 상당한 돈을 지급하고 협회 가입을 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죽었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날아온 도로시의 통나무집에 깔려 죽음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도로시를 옆에 잡아 두고 죽을 때까지 괴롭혀주려고 했는데 나 역시 죽고 말았다. 협회에서는 나를 찾아왔고 사라진 몸을 대신할 새로운 몸을 주었다. 하지만 인간을 해친 나에게 자숙의 시간을 갖으라며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고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는 일을 맡았다. 내 덕분에 산타는 따뜻한 방안에서 꿀차를 마시고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모든 것이 도로시 때문이었다. 도로시 고것이 동생의 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동생을 죽인 것도 모자라 동생의 유품까지 손을 대다니! 물론 정확히 따지면 도로시의 통나무집이 동생에게 떨어지는 바람에 죽은 것이지만 도로시가 살던 집이니 마땅히 책임이 있다. 신발만 순순히 주었어도 참았을 텐데 도로시 고것이 고집을 부렸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흑마술을 동원해서라도 그 아이를 괴롭게 하고 싶었지만 나는 참아냈다! 마녀 협회에서는 내가 도로시에게 집안 살림을 좀 시킨 것을 가지고 ‘나쁜 짓’을 했단다. 나는 늙을 대로 늙었으니 도로시에게 그깟 일 좀 시키면 어떻다고!
도로시는 아주 앙큼한 아이다. 나는 몸에 물이 조금만 닿아도 피부가 녹아 버린다. 그런 내게 모르는 척 물을 끼얹다니! 그 끔찍한 고통을 알기나 해? 결국, 그 구두는 도로시가 차지했고 내 몸은 사라져 버렸다. 앙큼한 도로시, 내가 녹아 버리자 바닥 물청소까지 하더라!
협회에서는 나에게 생명의 기회를 주며 아량을 베푸는 척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인어공주에게 내가 마치 불행의 씨앗을 준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날이 나를 노려보았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면 잠시 저쪽에 앉아 있어. 지금 마녀가 대기 중인데 너와 뭐가 다른지 직접 확인해봐. 자, 다음 마녀!”
하날이 서둘러 마법의 지팡이를 휘두르자 어둠이 나를 가렸다.
문은 아주 조심스레 열렸고 남루한 망토를 두른 마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지팡이를 하날에게 건네고 내가 방금 앉아 있던 그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따듯해요. 누가 왔다 갔는가 봐요. 덕분에 엉덩이가 시리지 않고 좋아요.”
마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졌다. 저 웃음……, 어디서 봤더라?
하날은 내게 했던 것처럼 그녀의 지팡이를 서류 위에 올렸다. 지팡이는 어느새 깃펜으로 변해 빠르게 움직였다.
“그래, 신데렐라를 만나고 왔군?”
“네, 그렇습니다.”
마녀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대답했다. 저런 착한 척은 딱 질색인데.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호박으로 마차를 만들고, 아이에게 드레스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리구두를 선물로 주었지요.”
“마법으로?”
“아니요, 그것은 마법이 아닌 실재하는 유리구두였습니다.”
“오, 그렇군.”
마녀는 보기에도 거칠어 보이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죽은 동생의 버릇도 그랬다. 이야기할 때면 저렇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는 했다. 주의를 시켜도 동생은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저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갈 수 있게만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그랬는데…….”
하날은 마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꾸만 신데렐라의 발에 시선이 갔습니다. 신데렐라는 신발이 없었거든요. 가엾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새엄마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죠.”
“그럼, 새엄마와 언니들을 더러운 쥐로 만들어주지 그랬나?”
마녀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하날님은 그런 것을 원치 않으시면서 농담도 잘하시네요. 그 아이를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지요. 제가 그들과 다른 마녀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이고요. 저 역시 계모로부터 갖은 구박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하날은 마녀를 가엾게 바라보고 있었다.
“신데렐라는 신발이 없어 맨발로 거리를 걸어 다니더군요. 발이 찢기고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하날은 서류를 넘겼다. 다음 장을 살피던 하날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자네는!”
“맞아요, 저는 과거, 오즈에 사는 동쪽 마녀였지요. 제 언니는 서쪽 마녀였고요. 인간들은 가난한 우리를 멸시했습니다. 언니는 그래서 더 악착같이 재산을 늘리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모든 인간에게 벌을 주었고 저 역시 언니의 그런 행동이 싫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돈을 빼앗았지요. 그때는 어리석게도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 허기진 사랑을 물질로 채우려 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내 동생, 저 마녀가 내 동생이라니.
“신데렐라에게 줄 구두를 찾고 있을 때, 그 은색 구두가 저를 찾아오더군요. 신고 싶었습니다. 다시 한 번 동쪽 나라를 지배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내가 죽자 잔치를 벌였다는 뭉크킨들에게 제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과 건강한 육체가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동생의 눈빛이 흐려졌다.
“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언니,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에는 서로 못 알아보겠지요. 새로운 몸을 가졌으니 길에서 마주쳐도 알 수가 없을 겁니다. 어릴 적 언니는 정말 착했습니다. 그 은색 구두는 원래 언니의 구두였지요.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마법의 구두를 언니가 발견한 것이었죠! 자신은 눈길에 발이 얼어 터졌는데도 저에게 신발을 건넸습니다. 저에게 변변한 신발이 없다면서 말이지요.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대한 마법의 구두 앞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 위대할 것 같은 마법이 위대한 사랑을 이길 수는 없더군요.
그제야 하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데렐라의 발을 보자 언니 생각이 났습니다. 바닥에 물이 똑 하고 떨어지더군요. 저는 천장에서 비가 새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제 눈물이었습니다. 눈물이 구두에 떨어졌고 눈물을 머금은 은색 구두는 유리구두가 되더군요. 유리구두의 주인은 신데렐라였습니다. 신데렐라에게 그 구두를 주었을 때 비로소 언니의 마음을 알겠더군요.”
동생은 자신의 낡은 구두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제게 신발을 줄 때 언니는 괜찮다고 했어요.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말이죠. 그땐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를 건넸을 때 알았습니다. 뜨거운 가슴 때문에 발이 시릴 틈이 없다는 것을요.”
하날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하날은 주저 없이 마법의 지팡이를 건넸다.
“홍이 마녀, 합격!”
“합격인가요?”
지팡이를 받아든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하날님.”
잠시 머뭇거리던 동생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혹시……, 언니 소식 알 수 없을까요?”
하날이 힐끗 나를 보았다. 하날의 눈빛을 의식한 동생이 내 쪽으로 시선을 던졌지만, 그곳은 차가운 벽일 뿐이었다. 나는 눈빛으로 간절히 애원했다. 절대로 그 애에게 나를 알리지 마세요, 제발.
“어렵겠죠? 제가 먼저 사라지는 바람에 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잘 지내고 있겠죠……. 언니가 보고 싶네요.”
동생은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하날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동생이 나를 볼 수 없음에도 나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곧이어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하날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어둠이 물러났다. 하날은 울고 있는 나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마법을 쓸 수 없는 평범한 노파가 되겠지.”
“……나쁘지 않네요.”
하날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부드러웠다.
“지금 나가야 동생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이런 저를 보고 실망하지는 않을까요?”
하날은 탁자 옆으로 가 내 지팡이를 들고 왔다. 마법의 지팡이는 어느새 노인의 지팡이로 변해 있었다. 나에게서 마법이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날이 나에게 지팡이를 건넸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발끝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동생에게 가는 첫걸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