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용서하세요

외할아버지는 할머니 외에도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엄마 말에 의하면 감사하게도 그 두 명의 여자는 아이를 낳지 못했고 우리 외할머니를 통해서 낳은 자식, 딱 세 자녀만 호적에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엄마 위로도 자식이 있었지만 어릴 때 모두 죽고 엄마가 맏이가 되었다.

엄마는 할아버지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명의 내연녀가 있는데 본처 집에 언제 오겠냐고.

할아버지는 가게를 했는데 내연녀가 그곳에서 카운터를 보았다 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엄마도 자주 가서 카운터를 보았는데 엄마는 셈도 잘했고 소위 삥땅도 잘 치셨다(잘한다, 우리 엄마!).

할아버지가 집에 가지 않으시니 본처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았고 장한 우리 맏이, 고로 우리 어머니는 카운터를 보며 스스로의 일당을 금고에서 가져갔다.

그 일당은 그날 엄마의 기분에 따라 달랐다.

우리 아빠 가게이므로 딸이 가져가는 것이 당연하다 하셨다(그럼 당당하게 가져가지 왜 삥땅을 치셨을까).

하루는 내연녀가 술에 취해서 외할아버지를 향해 엄마 흉을 보았다고 한다.

쟤는 저렇게 돈을 몰래 가져간다고, 누가 모를 줄 아냐고.

그럼에도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단 한 번도 혼내지 않으셨다 한다.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작은 어머니에게 돈을 타서 쓰라는 그런 말도 전혀 하지 않으셨다고.

엄마의 아버지라 차마 말은 못 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래도 우리 외할아버지 양심은 있구나, 했다.

이쯤 되면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보증으로 인한 풍비박산!

우리 외할아버지는 작은마누라 오빠 보증을 섰고 논이며 밭이며 싹 넘어갔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그 후로 술만 드셨고

술주정은 전혀 없었는데 눈 뜨면 술 드시고 술에 취해 다시 자고 그게 반복이었다.

그러고는 나이 마흔에 쓰러지셨는데 그 당시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살아 계셨고

어머니, 용서하세요. 불효자가 먼저 갑니다.

그 말을 남기고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 한다.

얼굴도 잘 생겼고 노래도 잘하셨다는 외할아버지를 초상화로 접한 적이 있다(외할아버지의 흰 피부, 외모, 노래 실력은 엄마에게 배당되지 못했음을 알린다).

기분이 이상했다.

작은 삼촌을 쏙 빼닮았더라, 우리 외할아버지.

마음이 이상해.

뵌 적은 없지만 외할아버지를 통해 엄마가, 엄마를 통해 내가 이렇게 연결된 것이 참 신기해.

뵌 적이 없음에도 나는 강소주만 내리 따라 마셨다는 할아버지를 상상해본다.

안주도 없이 홀로 따라 마신 그 술잔을.

그리고 할아버지를.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우리 엄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