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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Aug 08. 2022

트라우마

어릴 때 개에 물린 두 번의 기억이 있다.


그로 인해 나는 저 멀리 개가 보이면 순간 얼음이 되었다.


혼자서는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못했다.


개가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오는 길 저 멀리 큰 개가 보였다.


시골인지라 자유롭게 개를 풀어 기르던 때였다.


나는 순간 얼음이 되어 그렇게 서 있었다.


다행인 것은 여름 볕을 피할 수 있는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었기에


나는 거기에 앉아 오래도록 개가 이동하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 넘게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개의 동태만 살피고 있었다.


근처에서 벼농사 일을 하시던 한 아저씨가 나를 보시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어디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셔서


개에게서 멀리 나를 옮겨 주시고 다시 서둘러 논으로 가신 기억이 있다.


나는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고 서둘러 집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공포로부터 나를 건져낸 밀짚모자를 쓴 그 아저씨가 나에게는 영웅이었고 은인이었다.


까맣게 탄 얼굴과 대조되는 그 하얗고 까만 눈동자, 선한 아저씨의 눈, 그 옆에 잡힌 잔주름까지도 다 기억이 난다.


나의 인사에 그냥 말없이 웃어주셨다.



지금도 사실 혼자 골목길을 걷는 게 두렵다.


갑자기 어디서 개가 훅 튀어나올 것만 같고 어디서 개 짖는 소리라도 들리면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한다.


길에서 개에게 쫓기다 종아리를 물리고, 엉덩이도 물리고 그랬거든.


그래서 아직도 그 공포감이 남아 있다.


이렇게도 개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워하고 있다는 게 내가 생각해서 우습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더라.


지금은 참으로 보기 힘든 대문 앞에 적혀 있던 그 ‘개조심’이란 글귀가


새삼 그리워진다.


(무섭지만 나는 개가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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