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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Feb 21. 2023

#98 사료 사는 날

사실 집사를 시작하기 전에 망설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체질적으로 얕은 인간관계가 힘든 사람이다.


그런 내가 냥이들과 얕은 집사 따위가 될 수 있겠냐고.


그래서 시작은 정말 안 하고 싶었다.


회사 식당에서 여사님들이 냥이 밥을 주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뜨거운 여름 냥이 밥그릇에 구더기를 목격하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끝까지 외면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그릇을 가져다가 결국 싹 씻어내고 사료를 사서 부어놓았다.


썩은 밥그릇에 잔반을 올리고 또 올리는 것을 더는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집사가 시작되었다.



고양이 사료는 내 지출 목록에 고정항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내가 밥 주는 것을 알고 동료분이 사료값을 쥐어주기도 하고 20kg  사료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게 너무 감사하더라고.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때 아주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있다는 것은


힘든 것도 견디게 해 준다.


고로 나는 오늘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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