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입니다만
처음 밥을 주기 시작한 것은 2019년 7월 말 즈음이었다. 회사에 고양이가 다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식당 여사님들이 종종 밥을 주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보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여름, 어딘가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의 근원지는 금세 찾았다. 고양이 밥그릇에 음식이 썩어 구더기가 끓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미 고양이가 낳은 새끼 고양이가 이상했다. 볕에 나온 네다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이 모두 병약해 보였다. 어떤 아이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새끼 고양이들을 볼 수 없었다.
음식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미 고양이가 먹는 그 잔반은 밥그릇에 쌓이고 쌓여 썩고 있었다. 그릇이 청결할리가 없었다. 오가며 남은 음식을 줄 뿐 그릇을 관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나는 나서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다. 전에도 길냥이에게 밥을 주다가 차에 치인 고양이를 보고 긴 밤을 울고 또 울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주는 것이 두려웠다. 시작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밥을 이제는 내가 주겠다고 선언을 하고 절대 잔반 남은 것을 주지 마시라고 당부했다. 고양이 사료를 사고 스테인리스 밥그릇과 물그릇을 준비했다.
어미 고양이가 나를 경계했다. 괜찮았다. 솔직히 오히려 편했다. 곁을 안 주면 나도 마음이 가지 않으니 어쩌면 이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밥을 줄 때마다 나는 말했다.
“나비야, 많이 먹어.”
밥을 부어주고 물을 붓고는 뒤를 돌아서 왔다. 내가 가야 밥을 먹으러 왔다.
그렇게 밥을 주기 시작하자,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료의 양을 늘렸다.
그리고 또 몇 달 후, 또 새로운 고양이 새끼가 나타났다. 사료의 양을 늘렸다.
나비가 낳은 아가들이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 신기했고 뿌듯했다.
그리고 살짝 무서워졌다. 이 아가들을 먹여 살리려면 나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너 얼마나 낳을 거니?)
그래도 밥을 준지 3년 차가 되었으면 이제는 경력직 아닌가. 이제는 가족계획에 대해 나에게 넌지시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래도 밥을 먹을 때 살짝 머리를 쓰다듬게는 해준다. 그리고 바로 멀찍이 떨어지지만.
괜찮아, 사료는 내가!
양육은 나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