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안녕 흙수저들아?

by 벨에포크

사람이 질투를 느끼게 되는 건 멀리 있는 사람들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래서 사촌이 집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여질 없이 팩트였다. 옛날에는 신분과 지위가 제각기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지위 안에서 나름대로 자부심과 자존심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외치는 시기가 되었다. 그래서 모두 다 같은 조건이라 여겨지는데 거기서 나보다 내 친구가 더 잘 나가게 되면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의미도 곤두박질치고는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경험을 수도 없이 할 수 있었다. 특히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모두가 평등하다고 배운다.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평등하고 너와 내가 돈이 많다고 돈이 적다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았다. 물론 어릴 적에 외모로 인해 서로 놀림받고 놀리는 행동들이 적지 않게 있었기는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다 같은 과정으로 같은 교실에서 배웠다. 물론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다른 친구가 갖고 있기도 했고 더 예쁜 친구, 더 인기 많은 친구가 있기는 하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그것들을 다 갈아엎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져버린 적은 없다. 서로 각기 다른 점은 어쩔 수 없이 인정했으나 내가 그들보다 잘 살 수 있거나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여러 방면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다름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이라면 잘못을 했으면 똑같이 벌을 받았고 선생님과 학교 규율이라는 기준에서 우리는 동등했고 그것에 따라 잘잘못이 따져졌다. 그러나 그 타고난 것들이 사회에 나가서 그렇게나 큰 격차를 벌어지게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학교라는 울타리 밖을 나와보니 동등한 것과 평등한 것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헌번1조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개소리였다. 수업마저도 동등하게 받을 수 없었다. 등록비를 마련하기 위해 누구는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야만 했고,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좀 더 편하고 좋은 집에 살면서 방학에는 해외여행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내가 바퀴벌레 나오는 집에서 밤잠을 설칠 때 누군가는 자신의 신발패션을 자랑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 대학교 안의 울타리도 오히려 안전했다. 정말 밖이라는 사회에 나와보니 우리는 영락없는 불안한 성냥개비와도 같았다. 라이터로 불을 밝힐 수 없어서 내가 가진 심지로 그것도 큰 마찰을 일으켜야만 겨우 불을 비출수 있었고 불이 비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수명도 짧아졌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믿음만 가지고 그렇게 심지가 닳도록 수도 없이 긁어냈었는데 이제는 노력하는 방법이 문제라고 또 한 번 반성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토록 노력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나와 같은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고 공감하고 또 서로를 응원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이제 그들과 더 이상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우린 그들을 ‘금수저’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 신분제처럼 애초부터 나와 동등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결론 말이다. 우린 흙수저 이고 너는 금수저. “쟤는 금수저잖아”라는 말 하나로 저 아이에 대한 질투심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애초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불만과 불안을 좀 더 감소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매스컴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우리를 N포세대로 불렀다. 포기하는 것의 숫자가 많아서 N포세 대이다. 취업 도포기, 결혼도 포기, 연애도 포기.. 점점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진 세대가 우리라고 한다. 실제로 이 말이 맞다. 포기라는 것이 내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포기하지는 않고 붙잡고 있기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예전과 다르게 어려워진 것은 확실하다. 취업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워졌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공무원이 되는 것조차도 경쟁률이 어마 무시하다. 대기업이나 공무원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곳에 들어가기 위한 시간 동안 우리는 연애를 포기하거나 또는 어렵게 연애를 이어가야만 하고 취직을 한다 해도 정확한 퇴근시간이 없는 하루하루는 그 날의 약속을 잡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점점 어려워졌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만이 하루의 일을 끝내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점점 이야깃거리는 일하는 직장이 소재가 되었고 인간관계는 더 협소해졌으며 우리는 점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취업이 되어 월급을 받아도 많은 것은 세금으로 보내졌으며 월세와 생활비, 관리비를 제하고 나서 그 나머지를 적금으로 때려 부어도 내가 적금에 붓는 시간만큼이나 집값도 비례하게 상승해서 언제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는 기본적인 의식주 가 어려워진 세대이다. 고등학교 수업 때 한 역사 선생님께서 자신이 너무 놀고 있어서 아버지가 서류하나 만 내보라고 해서 그냥 교사 지원서를 냈더니 교사가 되었고 그렇게 자기는 아직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교사가 되기 위한 어마 무시한 시간과 노력 대비 그 서류는 너무나도 간단한 절차였다. 하지만 우리의 아빠 세대가 우리보다 취업이 잘되었던 시대임이 확실하다고 아빠 세대를 미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취업전쟁이 아빠 세대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된 연유에는 여러 가지 세계의 사회적 흐름, 경제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을 테다. 하지만 아빠 세대가 우리의 취업난을 노력의 탓으로 여긴다면 그때부터 세대전쟁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미래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계속해서 책상에 앉아 영어공부를 한다. 밥 먹는 시간을 쪼개가며 영어단어를 외우고 버스 타는 시간 동안 이어폰을 꽂아 어느 이름 모를 외국인의 찰진 발음을 듣는다. 학점을 완벽히 하면 학점만 완벽하다고 문제, 학점 대신 어학연수, 공모전 등 다른 교외활동을 열심히 하면 기본인 학점도 열심히 안 했다고 문제. 학점과 교외활동, 봉사활동을 모두 완벽히 이루어내면 자신의 스토리가 없다고 문제. 학점, 교외활동, 봉사활동을 스토리에 맞춰서 짜 놓으면 외모가 안돼서 문제. 도대체 어쩌란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알파고를 만들어서 고용하는 게 그 기업과 나의 정신을 위해서도 좋은 것 같다.


계속 이런 식으로 되풀이되다 보면 내 존재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내 존재가 사회에서 거부당한 다는 느낌을 받는다. 짝사랑의 실패와 같은 느낌이다. 나는 이 사람이 좋아서 연애편지도 쓰고, 선물도 주고, 집에도 바래다주고, 남몰래 초콜릿도 넣어주고 모든 걸 다 해줬는데 내가 싫다는 거절을 수 없이 받는 것이다. 처음에는 성격이 맞지 않아, 그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이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외모가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말 뽐새가 아니야, 계속해서 거절을 위한 어떤 것을 콕 집어내서 내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의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진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어디에도 끼워 맞춰서 살 수 없는 존재처럼 되어버린다. 내가 나를 그렇게 까지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취준생은 우울하고 힘들다. 수도 없이 거절을 맞봐야 하기 때문이다. 거절을 거절하는 힘조차 남아있지 않게 될 때 그때 포기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금수저, 흙수저 이렇게 나누는 것이 우리의 게으름, 부족한 노력을 감추고서 하는 말 아니냐고? 부모님 마음만 아프게 하는 거 아니냐고? 놉. 가끔은 ‘힘내’라는 영혼 없는 응원이나 ‘언젠간 되겠지’라는 어설픈 희망보다 그냥 흙수저 임을 인정하고 흙수저끼리 맛있는 밥 먹으면서 하루를 이야기하는 게 가장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금수저는 그냥 제외해버리고서 우리끼리 시시콜콜한 시답잖은 이야기로 마음껏 웃으면서 잠시 쉬어가는 것 말이다. 다행이도 여기 대한민국은 금수저보다 흙수저가 훨씬 많으니 친구가 더 많아지겠다. 하하하하 마냥 기쁘지만은 아닌건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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