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리셋하고 싶어!

후회되는 삶, 아는 와이프, 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by 벨에포크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가끔씩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래?라고 친구들끼리 수다를 떨 때면 나는 항상 대학교 원서 쓰기 전으로 돌아갈 거야.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항상 나는 간호학과에 온 것을 후회했기 때문이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 삶이 나아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그렇게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분명 또 다른 성격의 후회가 남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난 어렸을 때 새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마치 신상이 나오면 백화점에 가서 신상백을 사는 사람들처럼 어렸을 때 나는 신상 필통이 나오면 항상 문구점에 가서 필통을 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용돈을 받으면 80퍼센트는 필통을 사는데 썼다. 문구점에서 필통 쇼핑이 가장 즐거웠다. 맘에 들어서 필통을 사고 한 2주 뒤면 식상해진다. 그렇게 또 새로운 필통을 찾아 나선다. 새것이 주는 기쁨은 무언가 다시 시작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새로운 필통에 샤프펜슬, 색연필, 볼펜, 잉크펜들을 나열해놓고 오늘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그 프레시한 느낌. 난 그 느낌이 좋았다. 그렇다 보니 항상 필통이 차고 넘쳤고 엄마가 용돈을 끊기 전까지는 필통이 항상 많았다. 이제 학년이 올라가면서 필통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지만 항상 새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었기에 매번 새로운 것을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노트를 찢기 시작했다. 노트를 첫 장부터 깔끔하게 쓰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첫 장을 찢었다. 그리곤 두 번째 장이 첫 장 인양 다시 노트를 작성했다. 하지만 두 번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또 노트를 찢었다. 계속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노트를 세로로 보니 쥐가 갉아먹은 듯 앞부분은 비어있었다. 더 이상 회복이 불가할 때 새로운 노트를 샀다. 그래서 제대로 노트 한 권을 끝까지 써본 적이 없다. 매번 노트는 앞부분이 비어있었다.


하지만 이런 내 성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왜냐면 누구든 새 것을 좋아하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새것만을 찾는 것은 사라졌다. 이제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게 되었다. 필통이 한 개가 있으면 더 이상 사지 않았고 노트도 끝까지 다 쓰게 되었다. 필요 없는 것은 되도록 사지 않았고 신상에 목메지도 않았다. 하지만 항상 잠재의식 속에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이런 갈망은 새 필통에서 새 노트, 새 옷,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이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정이 있어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될 때도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에 대한 설렘이 가득했고, 학과 커리큘럼상 매년마다 이사를 해야 했을 때도 이사한다는 귀찮음 보다는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설렘에 더 두근두근거렸다. 그렇게 내 집과 내 동네를 개척해나간다는 것에 재미가 붙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동네를 투어하고 마음에 드는 카페를 고르기 위해 여러 카페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내 반경에 나를 매혹할만한 새로운 잇템, 잇 플레이스를 만들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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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n 의 <아는 와이프>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여기서 지성이 한지민과의 결혼생활에 지치고 힘들어서 2006년 500원을 톨비로 던지고 한마디로 자신의 삶을 리셋한다. 와이프가 한지민에서 강하나로 바뀐다. 지성이 자신의 삶을 바꾸기로, 즉 리셋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예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귀엽던 서우진은 온데간데없고 억척스러운 주부 서우진,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듯한 서우진만 남아서일까? 아마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불만족스러워서 와이프를 바꾸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처음에 지성은 강하나가 와이프로 바뀌고, 돈걱정할 필요가 없는 재벌사위로 사는 삶에 환호를 질렀다. 하지만 곧 자신이 곁에 없는 서우진을 보며, 활발하고 자신감 있는 서우진을 보면서 계속 마음이 쓰이고 결국 다시 리셋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후회한다.(여기까지가 현재 방영된 드라마 내용)


리셋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방증이려나. 그렇다면 내가 만약 현재의 삶이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했을 때, 또 다른 선택지가 나에게 온다면 나는 새로운 삶을 위해 리셋 버튼을 누르게 될까?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리셋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시 시작한다는 프레시 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프레시 함이 행복으로 간다는 보장성은 없다. 즉 내가 새로운 것을 택했을 때 말 그대로 새로울 것이다. 리프레시 된다는 느낌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겪고 그 과정에서 또 무언가를 발견하고 고충을 겪고 또 그 고충에서 해냈다는 뿌듯함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뿌듯함 뒤에 무엇이 있는가. 계속 뿌듯 뿌듯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되었을 때 더 이상 변화하려 하지 않고 적응된 바운더리 안에서 안정성을 찾게 된다. 다시 안정적인 삶이 찾아오고 또다시 새로운 것을 찾을 것이다. 물론 불만족한 삶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새로운 삶에서 만족된 삶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완벽히 좋은 시나리오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완벽한 시나리오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 그것이 문제다. 만족도 불만족도 아닌 애매한 상황일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뭔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기도 하고 지금의 삶이 잘 생각하면 만족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갈팡질팡한 마음일 때 내게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곳으로 가라는 선택이 주어진다면 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하나의 노래가 어쩌면 답이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토이의 <reset>이라는 노래다. 멜로디도 활기차고 템포도 빨라서 뭔가 활력이 넘치는 사운드인데 가사는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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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나를 잃어 가고 있어

여기가 난 어딘지 모르겠어

자 떠나야 해 길을 나서야 해

어딜 향해 가는지 몰라도


어디서부터 난 잘못됐을까

모든 건 내 맘 같을 수 없잖아

다 지워야 해 살아내야만 해

모두 다 제 갈 길로


기다려줘 이 노랠 다 만들 때까지

마지막 코드가 다 끝날 때까지

내 힘껏 기타 다운 스트로크

세상이 다 변한다 해도

내 목소리 몇 번씩 갈라져도

널 위해 노래할게

조금만 더 날 기다려줘


모두 다 날 비웃어도 괜찮아

오늘은 내일 얘긴 그만하자

네가 있어서 기억할 수 있어

모두 다 제자리로


기다려줘 이 노랠 다 만들 때까지

마지막 코드가 다 끝날 때까지

내 힘껏 기타 다운 스트로크

세상이 다 변한다 해도

내 목소리 몇 번씩 갈라져도

널 위해 노래할게

조금만 더 날 기다려줘


무너져도 나 쓰러져도 빛을 잃어도

네가 있다면 네가 있다면


노래할게 모든 것이 다 지워진대도

내 목소리 이젠 들리지 않아도

마지막 기타 다운 스트로크

이 노래가 끝난다 해도

오른손을 높이 쳐드는 거야

널 위해 노래할게 처음 그날처럼

나 여기 서서 널 기다릴게


가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다 다르겠지만 난 두 사람이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삶에 지친 사람이 모든 걸 리셋하고 싶을 때,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다더라도 다른 사람이 항상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또 리셋한 삶이 마음에 안 들고 후회돼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해도 그곳에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언제나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느꼈다. 리셋을 하게 되는 동기는 각기 다르겠지만 그리고 누군가는 리셋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선택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어떻게 되었든 나를 응원해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내 결정이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네 삶에 정답이 없고 모두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 내려간다. 그 스토리에 몇 번 리셋 버튼을 누른다고 내 삶이 망가지는 것도 아니고, 리셋이 두려워서 현재에 안주한다고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 버튼에는 책임감이 따르고 그리고 그 책임감으로 나는 더 성숙해질 것이다.


아직도 나는 리셋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또 다른 선택지를 만들고 싶은 욕망도 있다. 내가 그런 선택을 할 때, 그리고 그 선택으로 후회되어 다시 돌아왔을 때

날 위해 노래해주는
처음 그 날처럼 나를 기다려주는 그런 사람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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