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너와 나의 연결고리, yeah !

by 벨에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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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본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하다. 우리는 매 순간순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누군가와 접촉한다. 매년 매 순간이 지날수록 나와 접촉한 사람들의 숫자는 더욱더 늘어갈 것이다. 그 사람들 중에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의 숫자는 그와 비례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왜 각자 혼자 살아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걸까. 아마 인간의 성질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실제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서술함)”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 명제에 대해 반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성질 자체가 사회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 사람이 얼마나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가치를 판단하기도 한다. 인간관계를 넓고 유연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명망과 부러움을 받는다. 초등학교 반장선거만 해도 잘 알 수 있다. 조용하고 말없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와 열심히 친구들과 축구하고 같이 학원을 다니면서 활발한 아이가 반장선거에 나갔다고 하자. 우리는 많은 정보가 없지만 후자의 아이가 반장에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 걸 예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곁에 항상 누군가를 두며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나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타입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정해놓는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 시간 동안 난 나의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사람과 활동하는 에너지가 난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함께 같이 해야만 하는 친구는 나에게 부담스럽다. 그 친구가 싫은 건 아니지만 난 혼자 있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성질은 점점 매해가 거듭될수록 더 커지는 듯하다. 더욱더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일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또 열심히 나서서 하겠지만 굳이 내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친구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친구보다 그 수가 적더라도 내겐 진정한 친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 성질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생성하고, 이어가고 , 또 끊어갈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점점 인식하게 될 것이다. 대학생의 인간관계와 직장인의 인간관계가 다르고 학창 시절 친구와 직장에서의 친구는 다르다는 것을.


나는 직장에 들어오면서 내가 알고 있던 많은 단어들을 다시 재정의 해야만 했다. 대학교 때는 즐겁고 웃기고 배꼽 빠져서 웃었다면 직장에서는 어떤 미묘하고 애매한 상황에, 대답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을 때 웃는다. 눈과 입이 같이 조화를 이루며 웃었던 적이 언젠가. 눈만 웃음 짓던지 입꼬리만 올리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하며 조화란 없는 웃음이 내게 자리 잡았다. 대학교 때는 관심 있는 것에 말하고 관심 없는 것에 등 돌렸지만 직장에서는 관심 있어도 말 못 하고 관심 없어도 말해야 한다. 그렇게 점점 거짓으로 둔갑하고 관계를 맺어나간다. 누군가 나를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던지 대놓고 소리치며 욕하던 그저 ‘오늘도 욕을 듣는구나’라는 마음일 뿐 어떤 슬픔도 어떤 분노도 점점 줄어들고 그저 내게는 무표정, 무감정, 무동요, 무 그저 무로 돌아갈 뿐이다. 도깨비는 도깨비 신부에게 검을 뽑히면 무로 돌아가 평안을 누린다는데 나는 무를 얻어지만 평안하지 않다. 그러나 직장에서 나처럼 무로 돌아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유를 찾기도 한다. 웃음, 정, 공감과 같은 것들을 말이다.


직장에 들어서면서 내가 가지는 관계는 거의 거짓 관계일 뿐일까? 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거짓 관계만이 존재했다면 이 명제는 참이 아닐 것이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거짓 관계를 꾸려나갈 것이고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진실된 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내가 어떤 것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관계의 성질을 달리하게 된다. 직장이 내게 가져다줄 수 있는 장점들, 예를 들면 적당한 월급, 안정된 일자리,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을 때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말들과 같은 것을 얻기 위해 난 거짓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내게 진정한 친구, 진실된 웃음, 즐거움, 행복과 같은 것들을 얻기 위해 난 사람들과 보다 직접적으로 순수하게 관계를 맺을 것이다.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든 그 관계가 내게 주는 것들이 본능적인 것들이다. 사회성, 그 자체가 우리의 본능이라기보다 사회성이 주는 것들, 그것들이 더욱더 동물적인 본능이기에 우린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간다. 물론 관계가 이렇게 쉽게 정의되거나 해석되거나 해결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듯이 매번 예측할 수 없고 매 순간 긴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희망을 품기도 하고 그만큼 실망을 되받기도 한다. 관계란 본능적이기에 문제인 것이다. 내가 인간관계 때문에 걱정하는 것들은 당연하고 인간관계가 주는 것에 울고, 웃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다. 다들 본능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 본능은 서로의 관계에 의해 충돌하기도 하고 잘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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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야 할 것은 관계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일 뿐이다. 상사가 내게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한다는 것은 이 상사가 나와의 관계에서 어떤 것을 얻고자 하는 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얻고 이해할 수 있으면 난 이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보다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이 세상천지이긴 하다만 말이다.

그 사람의 행동이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든, 불합리하지만 내가 여차저차 이해를 했든 그럼 이해를 하고 나서는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서점에만 가도 인간관계에 대한 책들은 넘쳐나고 유튜브에 인간관계에 대한 강의도 무수히 많다. 고민상담소, 고민 우체통, 라디오에서 고민 사연을 들어주는 코너 등 여러 형태로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또 방법을 제시해준다. 나도 여러 가지 책이나 강의를 들었지만 그중 애덤 그랜트의 <GIVE & TAKE>라는 책은 신선했다. 이 책은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의 유형을 나누어 giver, taker, matcher로 나누어 설명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이 성공하려면 giver 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읽고 나서의 느낀 점이라면 “그래, 사람들에게 베풀고 항상 먼저 주고 그러면 정말 좋겠지만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문제지! “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어라, 운동해라, 뭐 이러한 것들이 주는 부담감보다 이 책에서의 giver가 되어라 라는 것은 부담감을 넘어 내게는 불가능한 것이겠구나 라는 생각만 들었다. 꽤나 좋은 책이었지만 난 읽는 내내 ‘난 죽어도 giver가 되기는 글렀군”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자신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그저 그런 좋은 명언일 뿐이었다. 인간관계를 해결하는 방법들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것들이 단 한 가지 불변의 정법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겪는 상황, 환경, 내 가치관, 나의 성질과 같은 것들을 고려해서 우리는 여러 방법 중 하나를 택할 뿐이다. 내가 사람과 맺는 방식이 뭔가 문제가 있다 생각되면 고치려 노력할 것이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내 방식이 내게 만족감, 편안함을 준다면 그것이 내게 맞는 인간관계 방식일 것이다.

내가 가깝게 지내던 친구는 항상 인간관계를 넓게 엮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을 잘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잘 어울렸고 친구의 친구는 물론 세다리 건너의 사람도 다 자신의 친구였다. 개방적이었고 말을 잘했다. 나의 인간관계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항상 여러 사람에게 전화를 하거나 SNS로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난 그것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지만 항상 그런 것들에 의해서 자기가 가진 능력을 개발하지 못했다. 또 여러 사람들을 구별 없이 사귀었다. 물론 사람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사람들은 그에게 부정적인 영향, 불법적인 것, 잘못된 것을 하도록 이끌고는 했는데 그는 그 관계를 끊지 않고 더욱더 유지하려 했다. 결국 그 친구와 나는 멀어지게 되었다.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집순이는 집에서 있는 것이 행복하고 집시는 여러 곳을 방황하는 게 행복하듯 인간관계를 잘 해나가는 방법을 각자 선택하고 취할 뿐이다.

스크린샷 2017-04-15 오후 7.56.25.png mbc <나혼자산다> 김동완 이 혼밥하는 장면

요즘 외롭긴 한데 누군가를 만나기 싫다는 사람을 많이 본다. 이런 현상은 20대나 30대 초반에 더 많이 발생하는 듯하다. 사람을 만나서 즐거워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면 더 피곤할 때가 있다. 누군가 있었으면 하는데 정작 누군가를 만나서 가식적인 만남을 가지기는 싫다. 그래서 혼밥, 혼술이란 용어가 생긴 건가 싶기도 하다. 나도 직장 동기가 10명 정도 있다. 직장의 특성상 누구보다 편하고 좋은 건 동기이다. 그런데 이 동기들 중에서도 밥 먹기 불편한 친구가 있고 누군가는 너무 좋지만 밥까지 먹고 싶지는 않기도 하다. 또 마음 맞는 친구는 나와 밥 먹기에는 약속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냥 집에 가서 좋이 하는 TV 프로그램을 켜놓고 밥을 먹는다. 그게 차라리 속 편하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 작은 카페가 장사가 안돼서 문을 닫고 새로운 식당이 오픈 준비 중이다. 혼밥 하는 식당이다. 오픈 준비하는 것을 보니 독서실책상처럼 칸막이가 쳐져있고 거기서 혼자서 편하게 밥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듯하다. 왠지 오픈하면 내가 굉장히 애용할 것 같다. 집에서 뭐 해 먹고 치우는 게 영 귀찮은 일인지라. 서울에는 이런 혼밥 식당이 꽤나 생겼다길래 부러웠는데 내가 사는 곳까지 벌써 당도했다. 좋은 동네라 여겨야 하나.


혼자 있는 게 왜 이렇게 편해진 걸까? 가끔은 내가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걸까?라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적응을 못하는 건가. 점점 아웃사이더가 돼가는 건가. 그러다가 판사 문유석이 쓴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나랑 너무나도 똑같아서 동감 공감 좋아요 like it! 을 무진장 속으로 외쳐댔다. 어쩜 이렇게 나랑 똑같지? 그는 자신이 인간 혐오 성격을 조금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개인주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글이 딱딱하지 않고 재밌다. 개인주의이신 분들에게 무진장 추천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왜 개인주의를 선택했는가에 대해 이야기 한 구절이 있다.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개인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주체로 서지 않고 맺는 관계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소극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되기 쉬운데 자기주장을 제대로 못하고 남의 주장만 들어주다 보면 너무 많은 부탁을 받거나 다른 것에 에너지를 다 소모해버리고 정작 자신을 위한 에너지는 소멸된 상태로 남기 쉽다.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자기 인생, 한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면 더 재밌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기도 바쁜데 내가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가는 인생은 너무 아깝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My life이다.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이 극 심화될수록 좀 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다 보면 이 사람도 그저 이 사람일 뿐, 저 사람도 그저 저 사람일 뿐, 나도 나일뿐 이라며 서로를 인정하게 된다. "나는 혼자 밥 먹는 게 좋아"라고 말하지 못하고 먹기 싫은데도 억지로 먹다 보면 먹은 게 체하기 십상이다. 거절이 어렵지만 이것도 하다 보면 요령이 늘어서 장난식으로든 진지하게든 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감정은 서로 툭 까놓고 볼 수도 없는지라 그 관계가 항상 어렵지만 밀당도 하나의 놀이로 생각하면 그것도 게임같이 즐거워진다. (물론 게임에 지면 재미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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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에 아는 형님에 김희선이 나와서 자기는 항상 모두와 밀당을 한다고 하면서 웃음을 줬다. 약간 이런 식이였는데 할리우드 스타가 한국에 내한한 것은 김희선과 당기기 위함이다. 또 다른 유명 배우가 내한하지 않았다면 김희선을 밀어낸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모두와 밀당을 한다고 한다. 이게 뭐야 하면서 웃어넘겼는데 너무 인간관계가 내뜻대로 안된다고 생각하면 다시 내 위주로 돌아와서 이건 내가 밀어낸 거야, 이건 내가 당긴 거야,라고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덜할 듯하다. 뭔가 내뜻대로 되지 않고 이 사람이 날 자꾸 거리끼는 거 같을 때는 '아 지금 나를 밀어내는구나'라고 여기고 그냥 적절히 반응해주자. 그리고 누가 날 너무 만나고 싶어 하고 자꾸 밥 먹자, 커피 먹자 할 때는 '날 당기는구나' 그러면서 또 밀당한다고 생각하자. 그럼 인간관계가 그리 복잡하지 않을 수 있다. Simple is best!라고 간단하게 생각하자. 김희선이 여전히 늙지 않고 아름다운 건 이런 마인드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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