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하나의 도전. 앞으로의 미래. 나의 직업.

by 벨에포크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한 달간 프라하와 크로아티아 여행을 다녀온 후, 난 치열한 공시생의 삶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공무원을 할 생각으로 수술실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이 수술실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고 6개월 정도는 더 다닐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나에게 이벤트가 생겼고 타인에 의해 '여기는 이제 끝났다.' '내가 더 이상 버틸곳이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 날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잘한 일은 아니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형식적인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퇴사했기 때문이다. 자의적이지만. 그렇게 어찌어찌 퇴사를 하고 집을 내놓고 모조리 짐을 본가로 보냈다.


그리고 나는 프라하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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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프라하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기 계획으로 에어비앤비에서 집을 구하고 하루 세끼를 프라하에서 해결하고 카페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가끔씩 여행 온 한국인들을 만나 맛있는 밥과 맥주를 마시고 야경 스폿을 알려주면서 평화롭고 여유 있게 한 달을 보냈다. 프라하가 지루해질 때쯤 가보고 싶었던 크로아티아로 떠났고 그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아드리아해가 아름다웠고 한인 민박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느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은 꽁꽁 내 안에 숨겨두고 그저 죄책감이 들 때만 들여다보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내 진로 고민의 마감시간이 다가왔고 무언가 해결책을 한국으로 가져가야 했기에 공무원이라는 적절한 핑곗거리를 하나 가지고 귀국했다.


9월의 끄트머리에 한국에 도착하고 시차 적응 하루, 이틀, 그리고 바로 공부를 시작했다. 명강사를 모아둔 공무원 강의 사이트에 프리패스를 결제하고 교재를 샀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추석에 난 집을 택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30분간 밥을 먹고 7시부터 시작. 그리고 11시까지. 중간에 1시간은 요가 타임. 그리고 어디에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은 교회를 갔다 온 후 쉬었다. 월요일이 되면 다시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7시에 책상 앞에 앉았고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고 복습하고 암기하고 시간은 빠르게 밤 11시가 되었다. 겨울이 되자 6시 반에 일어나는데 힘겨웠고 그래서 시간을 30분씩 늦춰서 7시 반에서 11시 반까지 공부했다. 학원은 다니지 않았고 오로지 집에서 나 혼자 내 의지와의 싸움이었다. 얼마큼 공부를 해야 할까 고민할 때 답은 이거였다. 다시 병원에 들어가서 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래서 난 병원에서 하루 순수하게 최대 근무시간이었던 14시간. 그것을 생각하고 내 순공 부시 간도 14시간을 찍어야겠다 생각했고 스톱워치로 14시간을 넘기면 그제야 잠에 들었다. 예정보다 한 달 앞서 시험일정이 확정되었고 요가 시간 1시간은 공부시간으로 채워졌다. 그래서 보통 내 공부시간은 15시간이 되었다. 15시간 내내 집중할 수 있느냐고? 불가다. 하지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집중이 안되면 암기했고 암기가 힘들면 입으로 소리를 냈고 졸리면 서서했고 허리가 아프면 누워서 강의를 들었다. 잘 때도 옆에는 강의를 틀었고 화장실에도 포스트잇으로 암기할 것을 써놨다. 하루에 목표한 공부 일정은 내 기억에 밀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정보다 빨리 끝내서 여분으로 해야 할 것들을 더 적어놨었다. 그렇게 반복된 일상을 보냈고 시험을 봤다. 그리고 시험을 본 이틀 후 나는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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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일어날 때까지 잤고 먹고 싶은 것은 먹고 싶을 때 먹었고 아껴놨던 드라마를 몰아서 보고 이 시간이 아까워서 밤을 새워서 티브이를 보고 그렇게 새벽이 왔고 새벽기도 가는 엄마 아빠를 따라서 새벽기도를 갔다 와서 잠에 들었다. 오후 늦게 일어났고 또 드라마를 보고.. 그렇게 원 없이 보고 싶었던 티브이를 보았다. 그리고 필기 발표가 있던 날. 예정보다 일찍 발표가 되었고 합격자 명단에 내 수험번호를 발견하고 아빠와 박수를 쳤다. 기뻤다. 합격해서 기뻤다. 같이 합격한 친구와 면접 준비를 했고 공부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면접을 보고 집에 내려와 또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최종합격자 발표에 내 수험번호를 발견했다. 엄마와 나는 끌어안고 이제 끝났다고 웃었다. 이제 정말 끝났다. 난 되었다. 그래. 난 공무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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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공부했다.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공부였고 그래서 했다. 한 번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항상 합격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4시간씩 공부하면서 '내가 합격 안 하면 누가 합격하나'라고 생각하면서 나중에 합격하면 합격수기를 쓰는 상상을 하면서 버텼다. 막판에는 흔들렸다. 우연히 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고 그 티브이 프로그램에 빠졌고 심지어 본방을 챙겨봤다. 시험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어떻게 보면 1시간 그거 쉬는 시간으로 쓸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 잔상이 남았고 공부가 아닌 다른 생각이 들어왔고 그래서 그런 내가 싫었고 독서실을 갔다. 하지만 난 그 티브이 프로그램에 약했고 독서실은 효과가 없었다. 나를 옥죄어서 보지 말아라 보지 말아라 해도 결국 지고 말았고 그 후로는 그냥 "봐라 봐라 실컷보고 그다음 날은 공부해라." 그냥 이렇게 바꿔 버렸다. 그래서 막판엔 조금 무너졌었고 꽤 괴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14시간은 채웠으니 다행인 건가. 무튼 지금은 어떻게 공부했나 어떻게 그렇게 일어나고 암기하고 강의를 듣고 했나 싶을 정도로 자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직 내가 공무원이 좋은 선택이었을까?라는 질문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왜냐면 내 꿈이 공무원은 아니었기에. 하지만 내가 공무원을 택한 이유는 나의 삶을 찾고 싶어서이다. 프라하에서 나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었다. 나란 인간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고 어디에 분노하고 어느 부분에서 행복해하는가.

난 규칙적인 삶을 좋아하고 아침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고 퇴근 후에 1시간은 요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퇴근 후 직장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으면, 직장에서 내 역할이 한정되어 있지 않았으면 했다. 난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기 원했고 직장상사를 욕하면서 그것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기를 원했다. 일 하면서 물을 원 없이 먹었으면 했고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가고 점심은 꼭꼭 잘 씹어서 먹을 수 있었으면, 양치하고 10분은 쉴 수 있었으면. 맞다. 기본적인 것이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물을 마시고 점심을 씹어 넘기고 쉬는 시간은 10분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런 기본적인 것. 난 이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마스크를 쓰고 일해서 물을 마시지 못하고 화장실은 양해를 구하고 뛰어갔다 오던지 빠른 걸음으로 걷던지. 점심은 꾸역꾸역. 내 총 점심시간은 20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밥 먹고 양치하고 화장실 가고. 것보다 늦으면 왜 이렇게 늦게 오느냐는 꾸지람. 그래, 직업의 특성상 여기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곳의 시스템. 몇몇 의사는 나이가 많든 적든 간호사를 자기 아랫사람 대하듯 하고 대부분의 의사는 티는 안내도 그런 인식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 인식 속에서 어떻게든 모욕감을 주려는 몰상식한 교수들이 있었고 그 모욕감 안에서 나는 굴욕감을 맛봤고 분노가 차오를 때는 삭혀야 했다. 수간호사는 간호사 편이 아니었고 의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썼으며 윗년차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에게 똑같이 굴욕감을 주려 애썼다. 물론 좋은 간호사 선생님들도 있었고 극히 드물게 아주 좋은 교수님도 있었다. 그 덕분에 내가 버텼지만 하지만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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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인 삶을 살기 위해 공무원을 택했다. 면접 때와는 다른 답변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내 생활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을 선택했다. 인간관계는 분명 어디든 힘들 것이다. 미친놈 보존의 법칙으로 어느 집단에서든 미친놈은 있기 마련이고 어느 집단에서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공무원의 삶은 그런 스트레스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 물론 칼퇴를 바라는 건 아니다. 아마 칼퇴하지 못하고 일을 할 때가 더 많은 것이다. 하지만 내 일이 주어지고 그 일을 열심히 할 때 다음 단계가 있고 또 그것에 대한 성과가 따르는. 그리고 그런 나를 존중해주는 그런 시스템이 있는 직장을 원했다. 그리고 공무원이 가지는 일의 정체성.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정의롭고 의로운 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내 생각보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렇기 믿고 살아갈 때 또 생각보다 이타적일 때 놀란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내 만족감을 채워주면서 그 일 자체가 선한 일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크게 반감이 서지 않았다. 단지 지금 걱정되는 것은 혹시라도 공무원 일이 재미없으면 어쩌지?라는 걱정. 하지만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기에 이런 걱정은 접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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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원 없이 논다

아침에 과일과 요구르트를 여유롭게 먹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요가도 하고 근력운동도 하고 저녁에 아빠가 먹을 요리를 하고 나는 건강한 주스를 만들어 먹고, 여유롭다. 교육 전 백수 타임이 일주일 정도 남았다.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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