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때 처음으로 학원이 아닌 곳에서 독서토론을 시작했다. 대학교 동아리가 아닌 그 동네에서 열리는 독서토론이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독서토론이라는 재미를 알았다. 그리고 학과 생활과 취업 문제로 독서토론을 할 여유가 없어졌고, 비로소 두 번째 직장을 가지게 되자마자 나는 다시 독서토론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던 터라, 내가 원하는 모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일산에서 한 시간 넘게 전철을 타고 압구정으로 갔다. 나이를 밝히지는 않으나 누가 보아도 그 모임에서 내가 가장 어린 듯 보였다. 뇌과학에 대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다들 뇌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 새로운 생각을 얻어가는 것이 많았다. 그렇게 독서토론 모임을 지속하다가 코로나19가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해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나 또한 코로나19로 내 일상이 타격 그 자체였기에 독서토론모임을 지속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팀이 바뀌고 줌으로 하는 독서토론에 참여했지만 잦은 야근으로 인해 한 달 정도 참여하고는 더 이상 하지 못하였다. 방역수칙은 시시 때 때로 바뀌었고, 거리두기는 업종에 따라 인원수 제한이 달라졌다. 예전에 참여했던 독서토론모임이 학원으로 업종을 바꿔 새로 개시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다시 독서토론 모임을 시작했다.
새로 다시 문을 연 독서토론모임 장소는 리모델링으로 새 페인트 냄새가 먼저 반겼다. 전보다 크기는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 큰 것도 같은데 뭔가 공간을 활용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곳이었다. 내가 참여할 모임으로 들어갔더니 예전에 같이 모임을 했던 리더님이 있었고, 처음 보는 여성분이 앉아있었다. 리더님도 워낙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지라 반갑게 인사를 했다. 너무 친한 티를 내면 새로 온 사람이 멋쩍을 것 같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점차 모임에 도착했다. 첫 모임이다 보니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자기소개를 간단히 시작했다. 나는 "안녕하세요. 000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인사했다. 사실을 "한 달 동안 잘 부탁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었는데, 매번 일을 할 때마다 '감사합니다'가 입에 붙어버려서, 또 마무리를 '감사합니다'라고 해버렸다. 대체 뭐가 감사하다고 내 이름 하나 밝히고선 감사하다는 말을 했는지. 습관이란 어쩔 수 없나 보다.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인사를 했고, 다른 독서토론모임에서 서로가 구면인 사람들도 있는 듯했다. 독서토론모임은 워낙 여자가 많이 참여를 하는데 이번에는 남성분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계속 온라인 독서토론모임을 이끌고 있던 리더님은 다시 오프라인 세계로 나오면서 긴장된 듯 보였다. 목소리도 마스크를 고려하지 않아 데시벨이 작았다. 그래서인지 같이 했던 사람이 나뿐인지라, 커리큘럼을 시작할 때 첫 번째 발표자로 계속 나를 지목했다. 다른 사람들의 긴장도 풀어줄 겸 나에게 먼저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이번 주에 토론하는 책은 <패배의 신호 - 프랑수아즈 사강>였고, 이 책에 대해서 간단히 1분 정도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해 브리핑과 인상 깊었던 부분에 대해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작가와 전체적인 줄거리에 대해 요약해서 말했다. 사강에 대한 이야기와 각자 애인이 있는 사람들이 바람피우는 이야기이지만 감정선이 세세해서 장면을 상상하며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나의 브리핑이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나의 옆, 옆자리에 있던 남자분께서 나를 향해 "질문이 있는데요?"라고 기습공격을 해왔다. "루실과 앙투안의 이야기가 사랑이 아니라 바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이었다. 보통 우리는 간단히 브리핑 후, 우리가 토론할 발제문은 2부에서 다룰 예정이었기에 여기서 나에게 질문이 올진 생각 못했다. 나는 당황해하며 그분의 질문에 나름 열심히 "사랑과 바람이 불가분의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라며 생각나는 대로 답변을 했다. 다들 조금 긴장이 풀어진 듯했고, 리더님은 앞으로 이렇게 질문을 하면서 토론을 하게 될 거라며 웃으며 토론을 진행했다.
내 예상보다 훨씬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자신의 '만남'을 가두게 된 상황에 대해, 그 억눌림을 실타래를 풀 듯 입을 통해 말이라는 형태로 쏟아냈다. 누군가가 의견을 제시하면, 다른 사람들은 또 그것에 대해 다른 의견을 냈다. 토론은 점점 고조되었지만 누구 하나 기분 상하는 이는 없어 보였다. 싸우려 온 사람이 없었다. 다들 말이 하고 싶어 온 것 같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고, 더불어 자신의 의견을 다른 이에게 관철시킬 준비도 되어있었다. 아직 어색해서 서로 이름도 잘 모르지만 묘하게 모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독서토론을 좋아한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토론도 그만큼 좋아한다. 그리고 '독서토론'만을 하기 위해 참석한 사람들이 이루는 모임을 가장 좋아한다. 메인 주제가 독서토론이지만 이성을 만나기 위해 오는 참석자들도 많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참석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나는 싱글 남녀가 이 건전한 '독서토론'이라는 장르에서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토론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예민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는 친분을 가질 수 있고, 친해지게 되면 토론을 벗어나 밖에서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목적이 '이성과의 교제에만' 있는 사람은 끝이 별로 좋지 않았다. 예컨대 '독서토론' 모임임에도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온다던지, 다른 사람이 발언하는 와중에 옆사람과 사담을 나눈다던지 등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했다. 또 실제로 관심 있는 이성이 생겨 적극적으로 다가가다가 실패한 경우, 남 녀 모두 불편해서 참석을 안 해버리는 일이 발생하고는 한다. 그래도 꾸준히 독서토론모임을 해 보았더니 얼마나 사람에 따라 방향이 정해지는 모임인지 깨닫게 된다. 여기도 하나의 사람이 이루는 사회라는 것을. 그리고 거기서 리더의 역할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서토론을 너무 좋아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좋다. 생각지 못한 부분을 툭툭 건드려주는 것이 좋다. 또한 물론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좋다. 대부분 사회에서는 내 생각을 말할 기회가 많지 않다. 누군가가 나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또는 회의를 하고 있는 경우 내가 먼저 나의 의견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거의 답을 정해놓고 나에게 무언의 동의 압박을 '의견청취'라는 질문으로 그 형태를 바꾸어 물어보는 경우가 가장 많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의견을 말하는 경우 '그래, 네가 한번 해봐'라며 나의 일이 더 추가되기 때문이다. '남'의 일이 '나'의 일이 되어버리는 일 말이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대부분 내 의견을 말하는 일이 적다. 그러나 일명 '독서토론모임'이라는 곳은, 책을 읽고 내 의견을 말하는 데에 그 누구도 '내 의견에 힘을 실어주세요'라고 압박을 한다던지, 나의 발언이 '일에 대한 책임'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모임을 좋아한다. 머리가 회전하는 것을 느끼는 게 좋다. 누군가의 의견에 반박하기 위해 내 생각이 굴러가다 타이밍을 잡고, "그런데 저는 이 부분에서..." 라며 서두를 시작한 뒤에 하나의 문장 또는 여러 개의 문장을 사용해서 머릿속에 굴러가던 것들을 내 입을 통해 다른 사람 귀에 흘려보내는 것이 좋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 시간에 완전히 '몰입'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몰입'하여 집중하는 순간이 1-2시간 지속되다 보면 모임이 끝났을 때 뭐랄까. 뇌가 개운함을 느끼는 것 같다. 마치 달리기를 30분간 숨차게 달리다가 골인지점을 통과하고 나면 힘들지만 몸이 개운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독서토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캄캄한 저녁길에 나는 마치 명상을 하고 난 후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뇌가 할 일을 다 마치고 비워진 듯한 그 개운함을 모처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