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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Mar 31. 2022

악당 컬렉션

그건 죄야

당신 잘못이야.


삶이 늑골을 짓누르는 국면이 있다. 15톤의 탱크가 갈비뼈를 사정없이 눌러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국면에는 항상 나를 깔아뭉개는 주체, 짓이겨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 사람 아니 그 악당이 존재했다. 나는 이 악당들을 한데 모아 전시했다. 악당 컬렉션을 만들고 그들이 내게 했던 행위들을 잊지 않기 위해 곱씹으며 "당신 때문이잖아"라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당신들 때문이라고. 내가 넘어졌을 때 손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며 일어나지 못하게 한 건 당신 때문이라고. 매번 넘어질 때마다 나는 입에 모래를 묻혀가며 우는 사람이 되었다고. 넘어뜨린 사람에게 나를 왜 밀쳤냐고 소리치지 못하게 되었다고. 다 당신들 때문이라고.



첫 번째 악당은 초등학교 1학년 나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촌지 근절' 안내문이 나오기 시작했던 2000년이었다. 그녀는 나이 많은 선생님이었는데, 그 당시 엄마가 벽보에 배정된 담임선생님을 보고 '어머, 다행이다!'라고 한 걸로 보아 학부모들에게 여러모로 평판이 좋았던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첫 번째 악당이 되었다. 사건은 미술 수업 때 일어났다. 날이 좋아 우리 반은 학교 운동장 앞 구령대에서 야외 수업을 진행했다. 준비물은 물감과 팔레트, 물통, 붓, 걸레 등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배우고 있어서 집에 있던 준비물들을 빠짐없이 챙겨갔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니 그날은 상쾌한 바람이 부는 재밌는 야외 수업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변수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랑 별로 친하지 않았고 8살인 내가 느끼기에도 꽤나 산만했다. 단지 나랑 반 번호가 붙어있어서 내 옆에 앉게 되었고, 그 얘가 물감을 가져오지 않아 내 팔레트를 빌려주게 되었다. 내가 가만히 앉아 그림을 색칠하는 와중에 그 얘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왔다 갔다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 내가 먼저 그림을 다 칠했고, 그 그림을 햇빛에 말리러 갔고, 다른 아이들도 다 그림을 끝냈고, 시간이 다되어 내가 다시 내 자리에 돌아왔을 때는, 그 얘는 어디 갔는지 없고 마음대로 써 지저분해진 팔레트와, 더러워진 물통, 그리고 그 물통과 팔레트를 오가며 구령대 주변에 흩뿌려진 물감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자신의 것들을 정리해서 반으로 돌아갈 때 나는 내 자리에 돌아와 그 광경을 본 것이고, 담임선생님은 그 광경 앞에 서 있는 나를 본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물감을 이렇게 다 떨어트리면 어떻게 하니?!!"라며 호통을 쳤다. 나에게 그렇게 화를 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8년을 살면서 나는 어린이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집에서도 호통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 눈썹 뼈에 힘이 들어가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로 나를 보며 화를 내는 선생님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이건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내 친구가 그런 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이 "네가 그런 거니?"라고 물어봐주길 바랬다. 화를 내지 않고 "왜 이렇게 한 거니?"라고 물어봐준다면 떨리지만 작은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었다. 굳어버린 채로 나는 그 질문을 애타게 기다렸다. 제발 나한테 물어봐. 그러나 그녀는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현장 검거한 범인을 잡았다는 듯 나를 대했고, 현장에서 잡혔으니 추궁은 필요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즉각 심판을 내렸다. 그녀의 판결은 너는 죄인이며, 죗값에 대한 벌은 구령대 전체를 손걸레로 닦으라는 것. 다른 아이들이 더럽혀 놓은 것까지 네가 다 닦으라는 것이었다. 120cm 밖에 되지 않는 나에게 구령대란 그리스 신전만큼 거대했다. 그리스 신전을 나보고 닦으라니. 나는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바닥을 닦는 내내 계속 눈물이 났다. 도대체 그 친구는 어디를 간 건지. 지금 내가 너를 대신해서 그리스 신전을 닦는 벌을 받았다는 걸 알고는 있는 건지. 나는 다음 수업도 들어가지 못하고 구령대를 닦으면서 도망쳐버린 친구와 억울하게 벌을 주는 선생님을 하염없이 머릿속에 그리고 또 그렸다.  


그때 나는 학교라는 곳을 알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이란 언제든 자기 멋대로 판결하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에게 사법권이 있다는 것을. 사법권은 무서운 힘을 가졌다는 것을. 사랑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다섯 손가락을 채울 수도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나는 선생님과 절대로 친해질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나는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상하관계를 인지시켜주려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항상 긴장했고, 그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녔다. 나와 달리 담임선생님이랑 편하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보면 매번 부러웠다. 어떻게 긴장하나 하지 않고 선생님에게 투정과 애교를 부릴 수 있는지, 놀러 가듯 상담을 하러 갈 수 있는지, 나는 그들의 '티 없음'이 부러웠다. 억울하게 혼나 본 경험을 해보지 않은 그런 맑음이 부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티 없이 맑게 선생님 앞에서 웃을 수 없었다. 그것도 너무 빠른 나이에. 8살이라는 나이에 나는, 단순히 그리스 신전 같은 구령대를 닦는 벌이 아니라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를 권력관계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벌을 받게 된 것이었다. 


<첫 번째 악당의 죄 몫>
지점토나 빚을 수 있는 손가락을 가졌던 8살의 작은 아이에게, 우는 이유를 묻지 않고 걸레로 구령대를 닦게 하여 권력의 굴종을 맛보게 함 


두 번째 악당은 예기치 못하게 튀어나와 트라우마 하나를 선사한 악당이다. 그녀는 집 앞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으면 골목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아이 중에 한 명이었다. 내 또래였지만 몇 살인지는 정확히 몰랐고, 학교에서 본 적도 없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그녀는 자주 우리 아파트 단지에 출몰하고는 했다. 이름도 모르고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항상 저 멀리서 놀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자신의 강아지를 데리고 뛰어왔다. 항상 전속력으로 질주해 목표물을 발견한 것처럼 내 앞에 멈추고는, 내 얼굴에 으르렁거리는 자기 강아지를 들이댔다. 나는 그때마다 내 눈앞 1센티 반경에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씩씩거리는 강아지의 이빨을 봐야 했다. 이빨을 덮는 입가 죽을 뒤집어까고 드러낸 송곳니와 눈을 희번덕거리며 돌아가는 흰자위에 나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내 얼굴을, 내 귀를, 내 손을 금방이라도 물어버릴 기세로 강아지는 미친 듯이 컹컹 짖었다.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는 나의 반응에 강아지는 더 흥분해서 아까보다 더 크게 아파트가 떠나가라 컹컹 커 짖기 시작했고 그러면 그녀는 재밌다는 듯이 내 앞에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하지 말라고 해도 그녀는 계속 웃으면서 자기 강아지를 두 손으로 잡고 더욱더 가까이 내 얼굴에 밀어 넣었다. 또 한 번 무서워서 발버둥 치는 나를 보며 그녀는 재밌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듯 눈동자를 보이지 않은 채로 반달눈을 하며 웃었다. 


그 장면은 너무나 가학적이었고 내게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나에게 강아지는 귀여운 것이 아니라 언제든 나를 해칠 수 있는 무서운 짐승으로 인식되었다. 애완견이 아니라 짐승. 그저 폭력적인 짐승. 나는 그 아이의 강아지뿐만 아니라 어쩌다 길에서 강아지를 만나도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묶여있는 목줄을 끊어내고 금방이라도 나에게 달려올 것만 같았다. 한 발짝 떼기만 해도 강아지는 나를 노려봤고 나는 그때마다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얼마나 빨리 뛰어야 강아지가 따라오지 않을 수 있는지 계산했다. 오랜 시간의 대치 후, 강아지가 지쳐서 고개를 돌리는 타이밍에 발뒤꿈치를 들고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도망갔다. 혹시라도 내 뒤를 따라올까 봐 전속력으로 뛰었고, 뒤를 돌아봤는데 강아지가 따라오는 모습을 마주하면 너무 두려울 것 같아서 뒤도 제대로 못 돌아봤다. 머리를 앞으로 고정하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한참을 뛰어가고 나서야 조심스레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강아지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을 보면 무조건 캉캉 짖는 짐승. 숨을 헐떡거리는 리듬에 혀가 들썩이는 짐승. 그 혀 주위를 둘러싼 날카로움을 품고 있는 이빨, 누군가를 따라가기 위해 목표물을 찾아 바삐 움직이는 부산스러운 고갯짓, 고갯짓 끝에 발견한 목표물을 향해 뛸 수 있는 가볍고 날쌘 발바닥. 앞발을 들고 두 뒷발만으로 깡충거리며 뛰어오르는 그 쉼 없는 뜀박질.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게 다 싫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제멋대로 휘모리장단으로 뛰어오르는 생명체가 싫었다. 나는 강아지가 싫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했다. 친구 집에 있는 강아지를 볼 때도, 나를 보고 달려오는 그 망아지 같은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나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는 이렇게 귀여운 내 새끼를 좋아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한 듯 보였다. 강아지를 귀여워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라는 듯한, 그 본성을 가지지 않은 나는 유난스럽고 차가운 냉혈인이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지구에서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쉽게 감정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사랑스러움이라는 감정을 못 느끼는 존재.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괴팍한 존재. 소개팅을 하면 더 그랬다. 같이 산책을 하다 강아지를 마주치면 어떤 클리세처럼 '어머 너무 귀엽다!(깨물어주고 싶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라는 리액션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동그란 판다처럼 미용을 한 강아지를 보고도 벌레 보듯 거리를 두고 저 멀리 걸어가곤 했으니, 세상 냉정한 사람처럼 보이기 쉬웠다. 상대가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반려견이라면 더 문제였다. 자기 강아지를 찍은 사진을 이리저리 보여주면 아주 곤란했다. 어서 칭찬을 하라는,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라는 무언의 압박에 나는 "귀엽네"라는 짧은 한줄평을 하고 더 이상 그 사진을 쳐다보지 않았다. 어서 나에게 강아지 사진이 가득한 핸드폰을 수거하라며, 나는 너의 강아지를 이뻐해 줄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짧은 한줄평에 담긴 어색한 표정으로 알렸다. 



그러나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반려견 문화가 급속도로 퍼졌고, 길거리에는 목줄을 차고 산책하는 강아지가 많아졌다. 그리고 때맞춰 갓 형욱이 나타났다. 거의 강아지와 혼연일체인 그는 반려견을 제대로 훈육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방송을 통해 주인들에게 가르쳤다. 덕분에 주인들의 의식도 변해가면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강아지가 나를 향해 짖거나 뛰어오르려 하면 주인들이 하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제지하곤 했다. 강아지가 먼저 나에게 달려들지 않게 되자 나도 가만히 강아지를 바라보게 되었다. 너는 짐승이 아니었구나. 무조건 짖지 않는구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지도 않는구나. 나는 강아지가 통제 가능한 애완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좀 더 가까이 바라볼 수 있었고 어느 틈엔가 모르는 강아지를 만져볼 수도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고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개'소리를 하는 것을 보며, 강아지가 캉캉 거리며 본연의 소리를 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는 개소리를 내고 사람은 사람 소리를 내야지, 오히려 사람이 개소리를 하는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그게 더 정말 소름 끼치고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개는 사람에 비하면 힘없이 작은 존재였다. 나는 강아지를 보면 주인을 따라 통통 뛰어가는 게 귀엽네? 귀를 쫑긋하는 게 사랑스럽네? 이런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내 트라우마도 점점 옅어져 갔다. 그리고 내가 강아지를 싫어하게 된 것은 강아지가 문제가 아니라 주인이 잘못되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 아이가 나에게 한 행위는 정말로 가학적이었다는 것을. 그건 장난이 아니라 폭력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두 번째 악당의 죄 몫>
무서워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도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강아지를 내 코앞에 들이대어 애완동물 트라우마를 만들었으며, 성인이 되어 소개팅을 하면 상대방에게 동물을 싫어하는 무정한 사람처럼 보이게 함


세 번째 악당은 대학병원 수술실 간호사로 일할 때였다. 매 수술방 트레이닝마다 다시 배우고 적응해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한 단계씩 힘을 내어 버티고 있었던 때였다. 이제 아랫년차 후배들도 생겼고, 윗년차 선생님들이랑도 어느 정도 친해져서, 되바라진 인성을 가진 교수나 인턴들에 대해 뒷담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던 때. 그때였다. 일반외과 트레이닝을 끝내고 나의 다음 트레이닝으로는 가장 가기 싫었던 신경외과과 결정되었다. 신경외과는 야간 응급수술이 생길 수 있는 파트라서 연차가 쌓이면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수술기구들도 일반외과에 비해 2-3배는 더 많았고, 기계들이나 장비들도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내가 신경외과 트레이닝이 싫었던 이유는 세 번째 악당인 신경외과 K방장 때문이었다. 


신경외과 방장은 갑자기 나타났다. 그녀가 복직을 하고 돌아와 아침 조회시간에 인사를 하자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표정들이 보였다. 같은 방장들은 표정을 읽을 수 없었고, 중 간년 차 선생님들의 표정은 대놓고 좋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게 나는 좀 안쓰러워 먼저 가서 인사를 했었다. 그녀는 내 인사에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지을 뿐 달갑게 인사를 받지는 않았다. 그 후, 복직 후 바로 신경외과 방장으로 복귀할 수 없으니, 잠시 수술방을 도와주는 시기에 간헐적으로 스크럽과 서큐로 만났었던 K는, 필요한 순간에 수술방을 비우기 십상이었다. 한참을 복도에서 "10번 방!!"이라고 외쳐야 겨우 어디선가 나타나거나, 내가 외치는 소리에 오히려 옆방 다른 선생님이 오는 일이 잦았다. 이런 것들이 계속되니 나도 K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안 좋아졌고, 그런 상태로 신경외과 수술 방장과 트레이닝받는 간호사의 관계로 만난 것이다. 


처음에 나는 '제대로 배워서 빨리 끝내고 나가자'는 마음으로 열의 있게 메모를 하면서 트레이닝을 배웠다. 그러나 신경외과 수술은 너무 길었다. 6시간 이상 되는 수술들이 대부분이었고, 하나의 수술을 배우기도 쉽지 않았다. 준비하기 까지만도 2시간 정도가 걸려 수술 하나를 제대로 보고 퇴근하는 날이 드물었다. 점점 트레이닝이 길어지면서 문제가 생겨났다. 서큐를 보고 있을 때면 오래 걸리는 수술로 인해 그녀는 자꾸 사적인 심부름을 시켰다. 수술기구를 가져오라던지 수술 과정에 필요한 것들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핸드폰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수술 중에 있으면서 contamination 이 되면 안 되니 나보고 핸드폰을 가져와서 자기 눈앞에 위치시켜 홍채인식을 풀고 카톡을 보여달라는 요구들이었다. 한두 번은 바쁜 용무가 있을 수 있으니 이해가 갔지만, 그녀의 이런 사적인 '시녀 부림'은 한두 번을 넘어서 매일 계속되었다. 언어폭력은 매일 수술방에서 이루어졌고, 수술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물건을 이리 둬라, 저리 둬라 하며 똥개 훈련을 시키기 일수였으며, 스크럽을 들어갈 때면 수술가운에서 유일하게 드러난 목 뒤를 꼬집으면서 나를 불렀다. 목을 꼬집기 위해 몸을 기울여 수술대로 다가오는 행위가 더 contamination이 되고 있음에도 그녀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매번 내 목에 손을 갖다 댔다. 언젠가는 자신의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손등을 찰싹 때리면서 주의를 주기도 했다. 나쁜 손버릇을 가졌으나 교수들 앞에서는 그 손버릇은 발현되지 않고 가식적인 웃음으로 치장되었다. 차가운 수술방안에서 그녀는 마치 나를 시녀를 대하듯 했고 나는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행위들에 기분이 상한 것을 넘어 무언의 굴욕감과 인격모독을 느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 신경외과 방에서 수술을 끝낸 후 석션 통을 비우지 않았고, K는 나보고 왜 치우지 않았냐며 화를 냈고, 나는 내가 이방에서 수술을 한 게 아니라서 지금 알았다 했더니,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참고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죄송하다'라고 하지 않는 나를 보며 "너 기분 나쁘니?!!!!" 라며 소리 지르는 K를 뒤로하고 나는 신경외과 수술방을 나왔다. 


이미 병원생활에 미련이 없었던 나는 다음날 간호부장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다. 수술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K의 '간호사 태움' 행위를 하나하나 알려주었고, 남아있는 동기나 후배들이 이런 상황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이고 사직서를 쓰고 나왔다. 의로운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단지 사직서를 쓰는 과정이 너무 단순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온 말이었다. 수술 팀장의 전화에 나는 또 한 번 K의 만행을 알리고, 팀장은 K에게 잘 말해볼 테니 다시 돌아오라 했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30년 일생에서 가장 증오한 사람이 있다면 K다. 나는 병원을 그만두고도 그녀가 한 행위들에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시달렸다. 어느 순간 갑자기 생각나는 그녀의 못된 말들이, 그녀의 표독스러운 눈빛이, 그녀의 손오공 같은 이마가 문뜩문뜩 떠올라 내 팔과 다리를 강직시키고는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움'이라는 목적으로 밖에는 이해되지 않는 행위들을 생각하며 나는 그녀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프사에 자랑스럽게 걸려있는 그녀의 자식들까지 '망해라'라며 증오했다. 그녀의 자식들이 사회에 나가 직장을 가지게 되면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 아침에 눈 뜨는 것이 지옥이 되기를 기원했다. 출근을 하느니 차라리 차에 치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매일 수도 없이 하도록 기원했다. 수술방안에서 교수들과 시시덕거리며 은근슬쩍 나를 사람보다 못한 취급을 했을 때 느끼는 무력감, 분노, 치욕스러운 감정을 그녀의 자식들이 절절하게 느끼도록 기원했다. 그녀의 가정생활이 파탄 나기를, 대를 이어 경제가 파산하기를, 질병을 얻기를, 모든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기를 나는 기도했다. 열렬히 오랫동안 성실하게 그녀를 증오하고 저주했다.


<세 번째 악당의 죄 몫>
일명 '간호사 태움' 행위로 수술방안에서 언어폭력, 신체적 폭력을 통해 굴욕감을 주었고, 인격모독을 일삼아 직장을 그만두고도 1년 넘는 시간 동안 정신적 고통을 선사하였으며 '증오'라는 감정을 일깨워 저주를 퍼붓게 함. 


세 번째 악당을 지나 네 번째 악당은 막무가내로 수술기구를 던지며 망나니처럼 행동했던 성형외과 교수, 다섯 번째 악당은 코로나19에 걸리고도 나가겠다며 전화로 욕을 하던 민원인, 여섯 번째 악당은 우아하게 소리 지르는 직장 상사. 그밖에 내 인생의 자잘한 빌런들은 모래로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고,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여섯 악당들만 잘 굳혀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탓'을 해야 할 순간이 오면 악당 컬렉션에서 한 명을 가리키며 "당신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쉬웠다.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버린 일들의 전후 과정을 두어 번 곱씹어보다 가장 유력한 악당을 색출하는 것. 이것은 짓누르는 압박을 가장 빨리 튕겨내 버릴 수 있는 방법이다. 늑골과 늑골 사이 폐와 심장을 해치기 전에 숨을 크게 들이마셔 가슴을 풍선처럼 부풀린 다음, 있는 힘껏 반동을 이용해 상체를 하늘 방향으로 들어 올려 악당을 가십의 광장으로 발사시킨다. 반동을 줄 힘만 남아있다면 이것은 쉽다. "바로 그때 그 사람이 그런 모욕적인 말을 나에게 했다니까!" 다른 사람에게 악당의 행위를 들려주기도 쉽다. 가십의 광장에 악당을 떨어트렸으니, 모든 기승전결을 그 '못된 악당'이 '선한 나'를 어떤 식으로 할퀴었는지로 끝내면 된다. 조금 서글픈 어투로 적당히 분노를 애써 삼키듯이 말하면 "헐! 진짜? 미친 거 아니야?"라는 배심원의 리액션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마음의 절차는 꽤나 유용했다. 원인체를 정해두고 무슨 사건이나 불쾌한 감정이 들면 악당들 중에 하나를 뽑아낼 수 있었으니 경제적인 면에서 효율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정방향으로 흘러 더 이상 내가 악당들에게 동요하지 않는 고요한 순간을 맞이했을 때, 모든 일들을 그 여섯 악당들로 결론 내는 것이 오히려 내가 계속해서 그 악당들 안에 갇혀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화와 독선으로 가득 차서, 분명 다른 상황과 다른 요인이 있음에도 이해하려 들지 않고 '너네들 때문이라고!' 라며 바닥에서 떼쓰는 아이처럼 행동하곤 했다. 신처럼 죄의 명목을 정해놓고 그들을 동상으로 만들어 재단했으나, 오히려 더 나아가지 못하고 굳혀져 버린 것은 나였다. 내가 당했던 억울한 일, 트라우마, 괴롭힘 등을 곱씹으면서 상상했고, 또 증폭했으며 이제는 이겨낼 수 있는 것임에도 나는 상황을 절망적으로 인식하면서 그 안에 머물러 있으려 했다. 그게 쉬웠고, 나는 무력했다.  내가 이런 경험을 했고, 이것은 악당들 때문이니, 내가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고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합리화했다. 나는 무력감을 합리화하기 위해 악당 컬렉션을 만들어 내내 '당신 잘못이야'를 외쳤다.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었다. 한동안 엄마가 해준 밥을 먹었다. 엄마 밥은 힘이 셌다. 몸에 좋은 것은 다 주려했으니 무럭무럭 자랄 수밖에 없었다. 굳세어지라는 힘. 무탈하게 자라라는 힘이 혈관을 통해 흘렀다. 나는 악당들에게서 굳혀져 가는 몸을 떨쳐내고, 더 이상 나를 지배하고 있던 무력감을 벗어나, 손가락에 힘을 모아 주먹을 꽉 지고는 악당 컬렉션 안의 조각상을 하나하나 부숴버리기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도, 강아지를 들이댔던 어떤 아이도, 오랫동안 증오했던 K 수술 방장도, 성형외과 교수도, 민원인도, 직장 상사도 모두 다. 원투펀치 쓰리강냉이로 훅훅. 나에게 이제 그들은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그들이 내 삶의 반경에 들어올 수 없다. 그들에게 그런 자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건 사치다. 


인생에 악당들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진실로 '악한 감정'을 가지고 내게 다가오는 악당도 있고, 우연히 '악한 감정'이 발현된 악당도 있고, 의도치 않게 악당이 된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가 어떠했든 누군가에게 '악당'이 되었다는 것은 죄다. 틀림없이 죄다. 몰랐다 변명해도 그것은 죄다.


유 퀴즈_ 윤여정 편 

윤여정 배우가 유 퀴즈 프로그램에 나와 김수현 작가의 명대사 하나를 읊었다. 

"누구도 누굴 함부로 할 순 없어. 그럴 권리는 아무도 없는 거란다. 그건 죄야."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당신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것을, 마땅히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벌을 주기 위해 당사자가 애쓰며 피 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무력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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