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예수는 신이 아니라 빅브라더라는 거야.

by 김작가씨작업소

어쩌다보니 이미 지난 글에서 왜 예수가 신이 아니라 빅브라더인지를 언급해버렸네요. 예수의 생애 그리고 그가 가야 할 길에 관한 가장 정확한 예언은 이사야 53장 전체입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죠. 그렇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제물이 된 어린양이자 희생양인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이 되어 버리면 신이 피조물을 위해 제물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리가나 저리가나 외통수인 것이죠.


이사야 53장에서 볼품없는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가 받는 고통은 하나님께 벌 받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53장 말미에서 밝히죠. 그가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이 원해서라고. 그리고 그걸 원하신 것은 그를 통해서 사람들의 죄를 감당하게 한 것이라 하십니다. 네. 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한 속죄물이라는 사실은 기독교 안에서 명확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신이 되는 순간 역설이 발생합니다.


어차피 용서는 신이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신은 하나님, 여호와죠. 구약에서 죄사함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제물을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만드신 것은 결국 하나님이죠.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자기 자신이 또는 자기 자신의 일부 또는 자기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이 대신 제물이 된다? 그런다고 인간들이 그 뜻을 알지도 못하는데 복잡하게 그런 방식을 취한다고요? 그냥 사해버리면 됩니다. 그걸 못하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살인죄를 저질러서 팔을 하나 잘라야 하는데 왕이 자기 팔을 자른 후 살인자를 사면하는 꼴입니다. 여기에 무슨 감동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다고 살인자가 회개를 할까요? 다음 경우를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예수가 태어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뜻을 성취해 줄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예수가 태어나자 하나님은 그 아기와 함께 하셨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는 많은 고뇌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른 즈음이 되자 비로소 세상에 나와서 메시지, 복음을 전합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도 "이게 맞나?"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제자들과 함께 다니며 먹고 마시다보니 그 삶을 계속 살고 싶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나 그의 누이가 해주는 음식도 맛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긴 것이죠. 하지만 예수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잡혀가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합니다. 요약하자면, "아버지. 저 살고 싶습니다. 하실 수 있으시다면 그렇게 해주세요. 하지만 제 뜻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중요하니 네. 저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기도한 것이죠. 그리고 그는 이사야 53장에 예언된 대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둡니다.


자.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처음으로 자신의 뜻을 이뤄준 예수를 부활시켜 줍니다. 물론, 예수도 부활할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부활 전, 죽음 전에는 내적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부활한 예수에게 많은 일을 맡깁니다. 신약에서 부활한 예수를 뭐라 표현하는지 아시나요?

바로 '흙의 형상을 버리고 하늘의 형상을 입은 첫 사람'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에서 완성하고자 한 사람은 흙의 형상 아담이 아니라 하늘의 형상을 입은 예수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예수처럼 하늘의 형상을 입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방금 제가 쓴 이야기가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누구라도 말씀해주세요.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활한 예수를 두고 "맏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이 되기 위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도하고 순교한 것입니다. 예수 부활 전 사도들이 어땠는지는 다들 알 것입니다. 붙잡혀가는 예수를 두고 모두 도망쳤죠. 하지만, 예수의 부활 사건 이후 사도들은 달라졌습니다. 그 달라짐. 이유가 뭘까요?

바로 빅브라더 예수를 보고, 부활한 예수를 보고 확신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 예수가 부활한 것처럼 나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파하자. 그러다 죽으면 하나님께서 내 스승 예수께 그랬듯 나도 부활시켜 주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게 복음이고 복음에 대한 올바른 작용입니다. 그러니 빅브라더 예수를 닮는 것을 연구하세요. 괜히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할 생각하지 말고요. 예수가 부활 후 즉,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드린 후 하나님께 어떤 지위를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의 지위를 받았다해도 그건 그걸 주는 하나님의 마음이니까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인간이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한다? 이거야 말로 진짜 신성모독 아닐까요?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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