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수의 부활을 믿습니다.
물론, 신앙의 힘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름의 명확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은 제가 왜 예수의 부활을 믿는지 그 근거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다들 사도 바울을 알고 계시죠?
유대인이자 로마시민권을 가진 그는 소위 예수쟁이들을 핍박하고 잡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부족할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죠.
그런 그가 다마스쿠스로 예수쟁이들을 잡아들이러 갔다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눈이 멀게 되는 경험을 합니다. 다시 눈을 뜨게 된 바울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만나서 자신의 경험, 그리고 부활한 예수를 만나서 알게 된 사실(복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예수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바울의 사도 됨을 인정합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울이 한 이야기가 자신들이 예수에게서 배운 그리고 함께 경험한 것과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검증을 거치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예수의 부활이 가짜라면 바울이 회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회심을 한 후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했죠. 일본인 손에서 자란 조선인이 후에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 독립운동을 하는 정도의 개연성 또는 이유가 있어야 삶의 태도, 방향이 바뀌는 건데 바울에게는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딱 하나 이유가 있다면 그가 경험한 부활한 예수와의 만남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인 바울이 삶의 방향을 갑자기 180도 바꿨다면 그 계기는 당연히 강렬한 실제 사건으로 봐야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바울의 입장이라면 어떨 거 같습니까? 하지도 않은 경험, 미심쩍은 경험이나 꿈, 환상을 가지고 안정된 지위를 버리고 험지, 죽을 수도 있는 길을 가겠습니까? 그런 길로 두려움 없이 갈 수 있는 것은 부활한 예수를 진짜로 만나서 회심했을 때입니다.
물론, 바울이 가짜 환상 또는 그런 비슷한 꿈을 꾸고 착각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사도들에게 검증을 받았고, 검증을 통과했습니다. 즉, 허상이거나 꿈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런 바울은 평생 전도여행을 했고 많은 교회를 세웠고 끝내 순교당합니다.
부활한 예수를 만난 사건이 거짓이라면 미쳤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삶입니다.
네. 바울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다만, 바울에게도 문제점이 있습니다. 바로 종말론자였다는 것이죠.
바울은 자시 시대에 예수가 재림하고 심판이 이뤄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하지 말고 온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공동체 안에서 말을 했죠.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바울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한 바울은 비난받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의 개독교처럼 문자 그대로를 놓고 하나로 해석하지 않고 성경을 보며 오래 묵상하고 그 안에서 현실 공동체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답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할례 문제에서도, 이방인과의 식사, 제사음식을 먹느냐 마느냐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렇습니다. 먹지 말라 했으니 먹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왜 먹지 말라고 했는지 본질을 찾으려 노력한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그가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석하려고 노력한 그 자체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개독교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뭐든 지금 시대에 맞는 해석과 적용이 필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동성애 문제도 그중 하나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런 이유로 예수의 부활을 믿습니다.
자. 문제는 부활한 예수를 어떻게 볼 것이냐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독교에서는 예수에게 신의 지위를 부여합니다. 이 말은 예수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신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가 왜 신이 아닌지는 앞서 연재한 글을 참고해 주세요.
그럼 부활한 예수를 성경에서 뭐라 말하고 있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수는 아담과 같은 흙의 형상을 버리고 하늘의 형상을 입은 첫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의 완성은 하늘의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은 창조되었으되, 아직 완성품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부활 전 예수는 하나님께 독생자였습니다. 즉, 하나뿐인 아들, 자식이죠.
그런데 부활한 예수는 독생자가 아니라 맏아들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29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셨으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 1:18
말 그대로 장남이라는 뜻으로 동생들이 있거나 앞으로 생길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예수처럼... 그리하여 나의 참아들이 되거라."
아마도 순교한 사도들은 하나님의 참아들이자 예수의 동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맏아들인 예수와 달리 그들의 부활, 하늘의 형상을 입는 것은 마지막 때이겠죠.
참고로 흙의 형상과 하늘의 형상에 관한 이야기는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와 있습니다.
자. 성경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런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인간을 자녀로 삼으실 원대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엇나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인간을 자녀로 삼는 원대한 계획'입니다.
이 계획은 다른 말로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에 이르게 한다."입니다.
그런데 다들 하나님과 멀어지니 보다 못해서 예수를 보낸 것입니다.
예수에게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거나 자기 뜻대로 제자들과 먹고 마시며 살던가.
그런데 예수는 자기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대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하늘의 형상을 입혀 살리시고 맏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맏아들을 본받아서 예수의 동생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게 제대로 된 기독교 세계관이자,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보고 신이라고요? 하나님이라고요?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하늘의 형상을 입게 되면 우리도 하나님이 된다는 말로, 이야말로 진짜 신성모독 아닐까요?
부활은 예수만이 했습니다.
나머지 우리는 마지막 심판 때 예수처럼 부활하거나 벌을 받거나입니다.
기독교에서 믿어야 할 것은 예수의 부활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지 예수를 신, 하나님으로 믿어라가 아닙니다.
쳇 GPT에게 부활한 예수의 이미지를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이미지를 생성했네요. 이건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던 유대민족의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예수의 외형에 대해서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사야 53장이죠.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기독교가 이런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 예수가 아닌 보기에 그럴싸한 것들로만 채우어진 가짜.
그렇기에 성경에서는 이런 곳을 넓은 문,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가 구원으로 가는 길이자 문이라면 성경은 틀린 것이 됩니다. 찾는 이가 많잖아요.
하나님을 안 믿는 자에게는 제 글이 쓸데없지만, 하나님과 예수의 복음을 믿는 자라면 정신 똑바로 챙기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실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아무렇게나 인간적으로 대충 믿지 마세요. 물건 하나를 하도 꼼꼼하게 사시는 분들이 왜 자신의 구원과 직결된 문제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지... 아이러니입니다.
그리고... 구독 좀 합시다.
해주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