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그만 둡니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곰과 호랑이가 동굴에서 100일간 쑥과 달래를 먹는 미션에 도전, 곰만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신화 이야기를 한국사람이면 다들 알 것입니다.
곰이 사람이 된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라 만들어낸 이야기죠.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만들 때에는 이유와 의미가 있습니다.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설은 곰을 숭배하거나 곰으로 상징되는 부족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곰을 상징되는 부족이 하늘의 선택을 받았고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가 시조인 단군이다라는 이야기는 자신들 부족, 또는 이후에 세워진 나라의 정체성과 우월성을 언급하며 그 나라가 지금 자신들의 나라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신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와 해석이 유독 성경으로 가면 달라집니다. 특히 한국 개독교가 그렇죠.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아담과 하와는 최조의 인간이 아닙니다. 최초로 창조된 인간이 아니라 최초로 하나님을 알게 된 인간 또는, 최초로 하나님과 대화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입니다. 이건 하나의 인간으로 봐도 되지만 부족 또는 가족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이미 성경 안에는 아담과 하와 말고도 다른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구절은 싹 무시한 채 아담이 최초의 사람이라고 말하며 에덴동산 이야기를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한국 개독교 안에 많다는 사실. 참으로 안타깝고 아찔합니다.
먼저, 아벨을 죽이고 도망치는 가인을 살펴보겠습니다. 에덴동산 이야기를 실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개독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인이 아벨을 죽일 당시 인류는 아담, 하와, 가인, 아벨 이렇게 넷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도망을 치죠. 이때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위해 만나는 사람에게서 죽음을 면할 수 있는 표를 줍니다.
어라...
여기서 가인이 도망치다가 만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버지 아담? 어머니 하와?
딱 봐도 부모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도망친 곳에서 아내를 얻고 많은 자손을 낳습니다. 어허. 가인의 아내는 어디서 등장한 것일까요? 이 질문에 에덴동산 이야기를 실제라고 믿는 개독교 신자는 이런 해석을 내놓습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특히 여자는 기록하지 않는다. 고로 가인의 아내는 가인의 여동생이다."
참으로 궁색한 억지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이번에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에덴동산에 혼자 있던 아담.
문자 그대로 본다면 하나님은 애초에 인간을 만들 때 짝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 됩니다.
이런... 신인데... 어찌... 이런 실수를...
왜냐면 다른 동물들은 다 짝이 있는데 혼자 있는 아담을 하나님이 안쓰러워한다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서 하와를 만들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면 애초에 인간을 만들 때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동물들처럼 짝으로 만들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들어놓고 난 후에 뭔가 부족하다 여겨서, 딱하다 여겨서 짝인 하와를 만든다?
이런 ㅂㅅ같은 신이 어디 있습니까.
올바른 해석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인간들 중에서 아담이 맘에 들어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짝 없이 혼자 지내는 아담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짝인 하와를 만들어 줬습니다. 자. 어떤가요? 그리고 이 해석이 맞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하와 등장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앞에 자신이 지으신 동물들을 차례로 지나가게 하신 후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와우.
방금 쳇 GPT에 질문한 결과 현재 과학적으로 기록, 확인된 동물의 종은 160만~170만 종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어류도 포함되니 그걸 제외하고 육상동물과 조류로 한정하면 120만 종이 됩니다.
자. 이제 아담이 이름을 짓는데 얼마의 시간을 써야 하는지 계산해 보겠습니다.
계산은 쳇 GPT에게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육상의 모든 동물과 새에게 이름을 지어줬다고 해. 현실적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해 봐. 계산식도 알려주고"
자. 인공지능도 현실적인 고려를 하면 과학적으로 확인된 육상동물과 새에게 이름을 붙이는 데만 한 인간의 생애를 넘어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확인된 육상동물과 새가 아닌 더 있을 거라 추정하는 800만 종으로 확대하면... 세대를 뛰어넘는 시간이 필요하죠.
왜?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생물은 더 많답니다. 그리고 그것들도 피조물이니까 우린 아니더라도 아담은 이름을 붙였어야죠.
자. 그래서 이 사건을 기록된 실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신학적 선언으로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한국의 개독교 신자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낫네요.
더 중요한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혹시, 창세기에서 아담 보고 이름 지으라 한 동물을 세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셨나요?
바로 집짐승, 새, 들짐승이죠.
여기서 집짐승은 뭡니까?
말, 소, 돼지, 닭, 개를 뜻합니다.
아시겠지만, 이 동물들은 태어날 때부터 혹은, 창조될 때부터 집짐승이 아니랍니다.
(아. 개독교 신자는 그렇다고 우길 수도 있겠구나.)
아무튼, 누군가가 들짐승을 오랜 기간 길들여서 집짐승이 된 것이죠.
여기서 들짐승을 오랜 기간 길들여서 집짐승으로 만든 이는 누굴까요?
이때에는 아직 하와라는 인물이 등장하기 전이랍니다.
하와의 등장은 이름을 짓고 난 후입니다.
아. 개독교 신자는 이렇게 주장할 수 있겠네요.
"아담은 첫 사람이 맞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만 만드신 것이 아니다. 기록되지 않은 다른 사람도 흙으로 빚으셨다."
와우. 정말 이거야 말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랍니다.
이것만 봐도 아담이 최초의 사람이 아니라 즉, 육체적 계보의 정점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인간, 둘째는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첫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첫 사람은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습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창세기는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믿으라고 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한국의 개독교인들은 그걸 믿는 걸까요?
정리하겠습니다.
아담은 처음으로 창조된 인간이 아닙니다. 기원 전하고도 아주 오래전, 호모사피엔스 중에서 어떤 개체나 무리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었지만,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또는, 그런 종족을 두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토끼와 거북이 경주 이야기에서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인양 믿지 말고 그 이야기가 주는 교훈에 주목해야 합니다.
언제부턴가 한국 개독교인들은 그걸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개독교인이 다니는 교회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길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끝으로...
이제 더는 연재를 하지 않으렵니다.
연재해 봤자 팔로우도 없고.
아마도 글이 형편없어서일 것입니다. 그러니 연재를 그만두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이건 연재를 진짜로 그만두겠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팔로우해 달라는 뜻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