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도교인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류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은 과연 그 믿음이 올바른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창세기 안에서 창조의 순서가 불일치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창세기 1장에서는 식물을 창조한 후 동물 그다음에 인간을 창조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인 2장으로 넘어가면 인간 아담을 창조한 후 식물, 동물, 여자(하와)를 창조하는 식으로 순서가 바뀝니다.
이번에는 대홍수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6:19~20절에는 모든 동물 암수 한 쌍을 태웁니다. 그런데 7장 2절로 가면 정결한 동물은 일곱 쌍, 부정한 동물은 한 쌍을 태우라고 합니다. 동일 사건에서 방주에 태우는 동물 수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육식동물은 그 긴 시간 동안 무얼 먹었을까요? 사자 한 쌍, 호랑이 한 쌍이 40일 동안 방주 안에서 먹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렇다면 어떤 종은 방주 안에서 멸종했겠네요.
이걸 가지고 노아의 방주 사건 전에는 모든 동물이 초식동물이었다는 기적의 논리를 펼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 쓴 글에서도 밝혔듯 아담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집짐승과 들짐승을 구별했습니다.
아. 그때 아담이 구별한 집짐승은 먹는 용도가 아니라, 일을 시키거나 집을 지키거나 사냥은 육식을 위한 것이니 아니고, 애완용이라는 소리? 모든 동물이 초식동물이라는 기적의 논리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아시겠죠?
성경에는 서로 다른 예수의 족보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이죠. 요셉 그러니까 예수의 아버지의 아버지 이름도 다르고 인물수, 구조, 방향까지 다릅니다. 다른 것에 대한 이유는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의도는 유대인 독자를 대상으로 쓴 글입니다. 그렇기에 예수가 다윗의 왕의 계승자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의도는 다릅니다. 이방인 독자를 대상으로 쓴 복음서로 예수가 이스라엘이 아닌 전 인류의 구원자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족보가 아담까지 올라가서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까지 표기합니다. 즉, 글쓴이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는 족보일 뿐 하나님의 생각이나 뜻, 받아 적은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태와 누가는 같은 예수를 말하고 있지만, 같은 역사를 쓰려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신학을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도 성경은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헤롯대왕 재위 중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누가복음은 구레뇨 총독의 호적 때라고 기록하고 있죠. 문제는 두 시기가 겹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헤롯은 기원전 4년에 사망했고, 구레뇨 호적은 기원후 6년, 그러니까 약 10년의 차이가 납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지 전, 최후의 만찬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유월절 식사로 표현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유월절 준비일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차이 또한 신학적 견해의 차이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가 새 언약의 유월절 공동체로써 만찬을 강조했다면 요한복음의 신학은 예수가 유월절 어린양으로 뼈가 꺾이지 않은 채 십자가 재물로 바쳐진 성전 제사의 이미지를 강조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에서는 유월절이 아닌 유월절 준비일 즉,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네 개의 복음서도 각자의 신학적 관점과 목적에 따라 기록을 달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를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굉장히 유명한 구절입니다. 바로 마태복음 1장 23절이죠.
마태는 이사야 7장 14절을 인용하며 예수 탄생의 예언이 이루어져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7장 말씀은 이사야가 살던 당대 아하스 왕에게 주어진 징조와 예언으로 메시아 예언이 아닙니다.
마태의 오류는 또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젊은 여자(알마 almah)'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그리스어(70인역) 번역 과정에서 '처녀(베툴라)'로 잘못 번역한 것을 마태는 확인 없이 그대로 마리아에게 적용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하스 왕 때 젊은 여자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라고 한 이사야서의 문장을 마태가 오역을 거친 70인 역 성경을 인용해서 이것이 예수와 마리아의 이야기라고 신학적 재해석을 한 것입니다. 재해석의 결론은? 네. 억지죠.
이번에는 마태복음 2장 15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헤롯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살았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예언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 "
마태복음에서 인용한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라는 문장은 호세아서 11장 1절 말씀으로 이는 예수에게 해당되는 예언이 아니라 일종에 '역사 회고' 성격의 이야기입니다. 즉, 이미 지나간 예언, 다른 대상을 향해서 한 예언, 예언이 아니라 과거에 그랬다는 것을 다시 언급한 것을 가지고 예수의 탄생에 끼워 맞춘 것입니다. 이런 것은 사실 오늘날 한국의 이단, 사이비 종교에서 성행하고 있는 행위죠.
예를 들면, 성경에 동방, 해 돋는 곳, 땅모퉁이라는 것이 나오니 동방 그리고 대륙에서 땅 모퉁이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재림예수는 한국에서 나온다라는 식으로 아전인수격 성경풀이를 합니다. 당시 마태도 그런 식으로 복음서를 쓴 것입니다. 물론, 마태의 목적이 불순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예수 탄생에 대해서 분칠을 하지 않아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게 탄생에 대해서 구약의 예언을 이룬 것처럼 이것저것 붙여다가 죄다 예수에 해당된다고 해놓고 정작 생일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아이러니. 그러니 이런 것이 얼마나 허무한 행동이겠습니까.
마태의 엉터리 주장은 또 있습니다.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들어가 살았습니다. 이로써 예언자를 통해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하시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마태복음 2장 23절인데 마태가 인용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라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외경이건 뭐건 존재하지 않는 예언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예언을 만들어서 인용한 사례가 오늘날까지 예수에게 이뤄진 예언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 정말 놀랍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예언을 '성취'라고 주장하다니... 지금으로 말하면 부정선거론자네요. ㅎㅎㅎ
참고로 나사렛이라는 지명은 구약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지명입니다.
더 웃긴 것이 있습니다.
"이로써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은돈 30을 곧 이스라엘 자손이 값을 매긴 사람의 몸값을 받아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이다.' "
마태복음 27장 9절 말씀입니다. 여기서 마태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말씀이 이뤄졌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가 인용한 예언은 예레미야가 아니라 스가랴의 예언으로 이 구절은 스가랴 11장 12~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예레미야와 스가랴의 활동시기는 다릅니다. 그러니 예레미야도 스가랴의 예언을 했었다고 주장하기엔 논리가 부족하고, 무엇보다 예레미야는 그런 예언을 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두 선지자의 핵심 메시지도 다릅니다. 간단히 말한다면 예레미야는 '망한다'의 메시지이고 스가랴는 '다시 세워진다'의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입니다. 자. 이쯤 되면 복음서는 쓰는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여러 가지 마사지와 분칠을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무수히 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오류가 하나님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쓴 글입니다. 그 글 안에는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예언도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바울의 글을 예로 들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자 그걸 해결할 목적으로 교회 공동체에 보내는 글을 썼습니다. 바울은 구약 등의 책을 열심히 살폈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 당면한 교회 문제를 풀어내려 했습니다. 그중 다수는 탁월한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존재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여자는 교회 안에서 잠잠하라"죠.
물론, 그 해결책이 바울 당시에는 탁월한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같은 문제를 그런 식으로 해결한다고 한다면 미친놈 소리를 듣습니다.
이 말은 성경으로 묶인 각각의 책과 서신들은 저자의 의도가 들어가 있고, 저자의 해석에 따라 같은 것을 가지고도 다르게 기술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기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류가 없다 인식하기보다, 교차 검증을 해서 진짜 원형을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일종에 고고학인 셈이죠.
그러니, 성경에는 오류가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성경은 인간이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 아는 만큼 쓴 것입니다. 그 아는 만큼은 개개인의 해석 차이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걸 인정하고 성경을 바라봐야 비로소 진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성경은 금광입니다. 금광은 금이 아니죠. 금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금광 전체를 금이라고 말하는 잘못을 개독교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글입니다. 어찌 인간이 쓴 성경이 하나님 전부를 설명하겠습니까. 그 자체가 오만이죠.
교과서를 볼 때 달달 외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끝으로 제가 제작하는 연극의 펀딩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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