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정해드리겠습니다.

성경만 유별난 대접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by 김작가씨작업소

성경.

참으로 논란이 많은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뉩니다.

바로 '하나님께 받아서 적은 책'이라는 견해와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쓴 책이나 하나님을 알기에 좋은 책'이죠. 전자는 신앙의 영역이고 후자는 논리의 영역입니다.


먼저 전자인 신앙의 영역을 살펴보겠습니다.

과연 성경이 하나님께 받아서 적은 책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이걸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것 역시 성경구절입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후서 1:20~21-


자. 명확하지요. 성경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두고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경 전체로 맥락 없이 잘못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구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16-


베드로후서 구절과 연결해서 보면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감동, 성령의 감동을 받을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적은 글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으로 번역된 디모데후서지만 저자인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디모데에게 보낼 당시인 서기 60년대 후반에는 성경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성경은 서기 393년 히포 공의회, 서기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를 통해 신약 27권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후에 16세기 루터에 의해 가톨릭 구약에 포함된 7권을 정경에서 제외 지금의 신구약 66권 체계를 확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이 언급한 성경은 구약에 한정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스스로도 자신의 편지가 신약으로 성경으로 묶일지 몰랐으니까요. 자. 이번에는 디모데후서 3:16절을 원래 의미에 더 가깝게 번역한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역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깃들어 있어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보여주고, 우리의 반역을 드러내며, 우리의 실수를 바로잡아 주고, 우리를 훈련시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게 합니다."


어떻습니까? 성경이 하나님께 받아 적은 완벽한 글, 일점일획도 틀릴 수 없는 글이라는 의미보다 하나님을 알기에 좋은 책,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게 만들도록 가르치는 글이라는 '논리의 영역'에 더 가깝다고 여겨지지 않나요?


성경은 매일 보며 달달 외우라고 있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 속 많은 이야기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뜻, 하나님의 방식이 무엇인지 알고 삶을 바꾸라는 의도를 가진 책입니다. 세종대왕을 알기 위해서는 세종대왕 위인전이나 당시 실록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유독 성경만 '일점일획'까지 소중하게 여기고 신성시 여깁니다.


성경이 신성한 것이 아니라 성경 속 이야기를 통해 발견한 하나님의 참뜻, 하나님의 방식이 신성한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여호수아가 그 온 땅을 쳐서 호흡이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멸하였더라" -여호수아 10:40-


위 구절만 보면 하나님은 정말 잔인하고 나쁜 악신입니다. 죄 없는 아이까지 동물까지 다 죽이라는 말이니까요. 이걸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분이라고 인식해야 할까요? 아니면 어떤 것은 유리하게 해석하고, 어떤 것은 있는 그대로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호수아서에는 정복 전쟁 과정에서 아이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죽였다고 서술되는 구절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받아 적은 글이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와우. 하나님은 정말 잔인하시네요.


이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령,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그 따위로 살 거면 나가 죽어"라고 했습니다. 이게 진짜로 나가 죽으라는 소리인가요? 아니면 좀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라는 뜻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기록한 것이기에 과장되는 측면이 매우 많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이 아주 작은 승리임에도 상대를 전멸시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고대 근동 전쟁 기록에는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씨가 없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씨가 없으면 망한 것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계속 존재합니다. 즉, '모두 죽였다'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는 문학적 수사일 뿐입니다.


분명 위에 여호수아 구절에는 호흡이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15:63절을 보면 "유다 자손이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예루살렘에서 유다 자손과 함께 살더라."

이런... 남았네요.


이번에는 성경 안에서 서로 충돌하는 기록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사무엘하 24: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역대상 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같은 사건인데 사무엘하에서는 하나님이 인구조사를 지시했다고 적었는데 역대상에서는 사탄이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기록이 맞으려면 하나님이 사탄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그게 맞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과 사탄이 인구조사와 관련 없는데 저자의 입장에 따라 끌어다 쓴 걸까요?


유다의 죽음에 있어서 마태복음은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사도행전에서는 "그가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라고 투신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 목을 매었는데 떨어졌고 그로 인해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온 건가요?


그럼 이건 어떤가요.

마가복음 15:25절을 보면 "때가 제삼시(오전 9시)가 되어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요한복은 19:14절을 보면 "때가 제육시(정오쯤)이라"라며 서로 시간이 다릅니다.


요한복음 1:18절에는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이 친구와 말하듯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출애굽기 33:11-


자. 이래도 성경이 하나님께 받아서 기록한 하나님의 글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글인가요? 앞선 연재 글에서 언급했듯 창조순서도 창세기 안에서 다르고, 예수 부활 후 여인들이 무덤에서 만난 이도 다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한 천사', 마가복음은 '한 청년', 누가복음은 '두 사람', 요한복음은 '두 천사'.

뭐 천사를 청년, 사람으로 묘사했다 하더라도 사람 수, 천사 수도 다릅니다.


이제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정해드리겠습니다.

수차례 언급했지만 성경은 일종에 '금광'입니다. 금광은 금을 캐는 곳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책입니다. 그렇다면 금광에서 금을 캐듯 성경 속에서 묘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과 뜻을 찾아내야 합니다. 금이 중요하지 금광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중요하지 성경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지위에 신성을 부여한다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인간의 기록임을 인정하고, 선배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지금의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게 금광에서 금을 캐는 행위이지 하나님을 알고자 노력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교과서 달달 외워봐야 소용없습니다. 교과서는 달달 외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만가지 구절 달달 외우고 입에 달고 산다고 하나님을 하는 것이 아니죠.

염불 백날 외우면 뭐 합니까. 뜻을 알아야 하죠.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뜻을 알아야 합니다. 뜻을 알기 위해서는 기록자의 신앙, 기록자의 의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퉁쳐버리면 텍스트만 남고, 콘텍스트는 사라지게 됩니다. 문맥이 사라진 글. 그게 뜻을 모른 채 외우기만 하는 염불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월, 목 연재
이전 13화성경은 사실 오류투성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