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하고 가뿐한 상태로(그림;.moneymarketing.co.uk)
“당신의 소중한 마음을 항상 잘 케어해 내어라.
결코 다치지 않게 잘 보듬어 내고, 아주 산뜻하게 해 두어, 언제라도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준비된 상태로 있게 하여라!”
우리가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여러 힘들고 난해한 일들에 자주 찌들고 시달리다 보니, 아주 복잡한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마구 꼬이게 되고, 드디어 판단력과 분별력이 흐릿해지게 되고, 결국은 의도치 않게 내 마음도, 상대방의 마음도 다치게 하기가 매우 쉽다.
만약, 정말로 어려운 문제로 인하여 서로 이렇게 마음을 다치게 되는 경우라면, 그나마 억울하지는 않을 터인데, 때로 아주 하찮은 일로 인하여 혹은 말도 안 되는 일로 인하여 상호 마음을 다치게 되는 경우가 무척 많으니, 참으로 딱하고 억울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점이, 이렇게 자기 마음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치게 될 경우, 이를 그냥 오래 내버려 두게 되거나, 무엇인가 꼬인 실타래를 제대로 풀어 깔끔하게 정리해 내지 못하게 되면, 그 순간, 평생을 두고 생장시켜 나가야 할 자기 마음(정신)의 생장을 그만 멈추게 해 버릴 수 있고, 더군다나, 자기 생각이나 의지가 제대로 정돈되지 못하여 그 어떠한 유의미한 일도 제대로 치고 나가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즉, 자기 마음속에 무슨 풀지 못한 문제나 응어리가 있거나, 큰 상처가 오래 머물러 있을 경우에, 자기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이리저리 얽혀진 모순과 대립적 심리의 상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생장이 멈추어버린 나무처럼 말이다. 가야 할 곳을 잃고 멍하니 헤매고만 있는 나그네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평소, 자기 마음을 잘 케어하여 항상 산뜻하고 가뿐한 상태로, 매우 잘 정돈되고 준비된 상태로 만들어 둘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고, 상대의 마음 또한 절대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서, 항상 잘 케어해줄 수 있어야 마땅하겠다.
그런데, 자기 마음을 잘 케어하기 위해서는, 자기 심리적 방패가 아주 든든하여야 할 것이니, 평소 자기 마음이 웬만한 외란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크게 키워놓아야 하겠다.
마치 엄청난 폭풍우에도 끄떡없는 큰 산의 바위처럼, 큰산 호랑이의 거침없는 기개처럼 말이다.
또, 상대의 마음을 잘 케어해 주기 위해서는, 절대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상호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할 것이니, 조금의 오해 기미가 있어도 바로바로 풀어버리거나, 차라리 당신이 먼저 사과를 건네어, 상황을 해결해 버려라.
무엇이든 펜딩된 상태는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당신 마음을 아주 혼란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절대 큰일을 해낼 수 없는 상태가 되게 할 것이니, 당신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불확실하거니 미결된 부분이 아주 최소화되도록, 특히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이 당신의 관리능력 범위를 절대 초과하지 않도록 잘 다루어 나가야 하겠다.
이렇게 하여, 자기 마음의 상태가 항상 칙칙하지 않아 산뜻하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아 잘 정돈되어 있게 하고, 그 무엇에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홀가분해진 상태가 되게 해 놓는다면,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아주 일생일대의 큰 일도 너끈히 치고 나갈 수 있는 매우 준비가 잘된 상태가 된 것이겠다.
그럼 여기서, 이렇게 자기 마음도, 남의 마음도 결코 쉬이 다치지 않게 하고서, 특히 자기 마음을 항상 산뜻한 상태로 반석 위에 놓이게 하여, 늘 준비된 상태로 만들어놓을 수 있는 그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의연히 살아라.
의연함은 민감한 마음 혹은 취약한 마음의 반대적 개념일 것이다.
이러한 의연함을 위해서는 평소 ‘둔감 연습’ 혹은 ‘외란 적응 연습’을 많이 하여, 이를 자기 습관화로 잘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생활상 FOBO(아주 작은 일에 대해서도 결정을 하지 못하고서, 자꾸 망설이거나 미련을 갖게 되는 일)나 FOMO(타인이 가진 것을 탐하거나, 따라 하지 못해 안달을 냄)의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게 되면, 이와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연습해 보는 것이 좋겠다.
즉, FOBO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한번 결정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아예 되돌아보지도 않고, 생각 자체를 꺼버리려는 그러한 연습이 필요하다.
FOMO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항상 타인이 가진 것이나 그들의 시선보다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내적 시선에 보다 집중을 잘 해낼 줄 아는 연습이 꼭 필요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러한 연습이 매우 힘들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매사를 매일매일 이런 식으로 훈련해 나간다면, 현격히 개선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도 FOBO와 FOMO의 구렁에 빠져 마냥 괴로워하는 이들이 무척 많은데, 소중한 당신은 과연 이러한 굴레로부터 아주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모쪼록 큰일을 해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살다 보면 매사 이래 저래 신경 쓰이고 짜증스런 일들이 많이 발생할 터인데, 그럴 때마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심할 수는 없을지라도, 자기 마음을 최대한 털털하게, 최대한 둔감하게, 최대한 의연하게 가져보는 것이 참으로 필요하겠다.
그래야만, 자기 민감한 마음으로 인한 상처로 인해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고, 설령 그런 상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상처가 더 이상 덧나지 않게 하고, 그 상처의 크기도 매우 줄여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남을 많이 칭찬하기도 해 보아라.
혹자는 칭찬과 의연하게 사는 것과 무슨 관련성이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당신이 타인의 작은 장점에도 칭찬을 흔쾌히 잘해주게 되면, 당신 마음의 통이 그만큼 커지고, 일반적으로 타인에게도 매우 합리적인 사람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스스로도 결코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매사를 대의적으로 크게 크게 바라볼 줄 알게 될 것이며, 그래서 당신 마음이 비교적 넓고 편해지고 거침이 없을 수 있게 되어, 매우 의연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진정으로 의연한 삶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완벽히 의연한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니 만큼, 당신 생(生)을 통하여 지속해 당신 마음의 통을 크게 크게 업글해 나가야 할 것이고, 지극히 사적인 일, 자극적인 일, 자기 소모적인 일 등으로 인하여 공적인 일, 신뢰 관계에 기반한 일 혹은 대의적 일들을 절대 그르치지 않도록 특별히 잘 제어해 나가야 하겠다.
둘째, 중간에 누구를 두어라.
어려운 관계 혹은 매우 조심스러운 관계를 지속해 나가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면, 너무 정면 돌파만을 고집하지 말고서, 그 중간에 제삼자를 적절히 두어,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여러 민감한 일에 있어서, 그 껄끄러운 사람과 직접으로 부닥치는 일을 최대한 줄이고서, 제삼자를 매개로 하여 적적히 소통과 조율을 진행해 나가야, 당신의 마음이 쉬이 다치지 않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가령, A라는 사람과의 관계가 매우 껄끄럽다면, 그러나 그 관계가 결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B라는 사람을 중간에 두어, A에게 요청할 일을 중간에 B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A에게 전달하게 함으로써, 아주 첨예한 상황을 잘 피해나가면서도, 무언가 자기표현이나 주장을 얼마든지 잘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너무 부담되는 관계를 다소 원만하고 부드럽게 조절해 나갈 수가 있어서, 큰일이나 공적인 일을 자기 개인적 사정이나 사적 인간관계로 인해서 결코 그르치지 않게 관리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것도, 마치 생물과도 같아서, 시간이 다소 흐르게 되면, 얼마든지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니, 그 어려운 사람과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고, 과거의 애로사항이 말끔히 해소될 수도 있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변한다면, 당신이 먼저 그 껄끄러웠던 사람에게 한 발 더 다가서고, 서서히 관계를 회복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점차 스스럼없이 그와의 직접적인 맞상대를 주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당신이 어쩌다 아주 어려운 인간적 관계를 직면하게 되면, 이를 정면에서 너무 대적하지 말고, 고지식하게 원칙만을 너무 고집하지도 말고, 상황에 맞게 다소 융통성 있게 대응하려는 자세가, 그렇게 하여 어려운 국면을 무사히 통과하게 되는 지혜가 꼭 필요하겠다.
셋째, 충고는 한 번으로 족하다.
우리가 주변 누구에게 충고를 막 하고 싶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당신의 충고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상황이라고 판단이 된다면, 차라리 그냥 접어두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 주어 보아야, 당신의 말이 그에게 잘 먹히지도 않을 것이며, 서로 간의 관계만 더 악화일로로 치달을 수 있고, 무엇보다 상호 오해의 소지가 점차 커질 수 있을 것이고, 때로 마음을 크게 다치게 하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당신의 그러한 충심의 마음은, 너무나 순수하고 고운 마음이었겠지만, 사실은 아주 순진한 생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런 경우라면, 마치 당신이 벽이나 돌을 보고 말을 하는 경우에 흡사할 수 있다.
아무런 승산이 없는 싸움을, 단지 당신의 지극한 순진함으로 인하여, 당신의 자존심을 잘 제어해 내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렇게 뛰어들게 되는 것이라면, 이렇게 무모한 당신의 선택으로 인해, 당신은 관계를 잃고, 실리도 잃고, 무엇보다 친구마저도 잃어버릴 것이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라면, 차라리 당신의 인내만이, 당신의 내적 삭힘과 자제력만이 유일한 답이 되어, 그래도 당신을 잘 지켜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당신의 충고가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그 충고의 말을 당장 꺼내어도 된다.
이러한 경우라면, 당신의 충고는 진실한 충언이 되어, 상대가 나중에 매우 고마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이러한 충고의 이야기는 처음에 한 번만 하도록 하여라.
아무리 고맙고 합당한 충고라고 하여도, 충고는 충고인 것이다.
여러 번 하게 되면, 과연 거슬릴 수밖에 없다.
계속 반복하게 되면, 그는 당신이 건네는 충고의 말을 좋아할 수는 있어도, 당신이라는 인간을 좋아할 수는 없다.
결국은 당신이라는 사람을 왠지 미워하게 될 수밖에 없을 수 있다.
그러니, 이러한 경우라면, 충고는 단 한 번만 하고서, 그 이후에는, 당신의 충고가 받아들여지든 아니든 간에, 가급적 그의 결정에 협조를 해 주는데 초점을 맞추어 보아라.
항상 그의 의견이나 행동에 협조를 해 주려 하고, 서로 관계의 상승적 발전을 위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려 하고, 늘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서로 도움이 되는 방향에만 집중하여 보아라.
즉, 이미 당신의 입장이나 의견을 잘 전달하였으니, 그것을 더 이상 여러 번 거론하지 않아서 결코 부담을 주지 말고서, 오로지 서로에게 도움을 될 만한 것에만 집중을 해 나가야, 서로 마음이 상하지 않으면서도, 무엇인가 관계의 시너지를 잘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설령, 그가 당신의 충고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고려하여 모든 결정을 해나갈 것이니, 당신이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넷째, 집착과 집중을 잘 구분하여라.
사람이 무엇에든 집착스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별 문제도 아닌 것 혹은 내버려 두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를 덧나게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이렇게 아무런 가치 없는 것에, 아주 부질없는 것에 자기 생각을 소모하고, 자기 마음을 마구 갉아먹게도 될 수 있다.
또, 이러한 집착의 마음은 자기가 스스로 제어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부분까지 자꾸 들여다보려 하게 만들기도 하고, 아무런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가지 일에 마구 매달리게 하기도 한다.
과연 이렇게 하여, 자기 소중한 생의 시간을 의미 없이 소모하게 되기도 하고, 자기 소중한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마저도 몽땅 쓸데없이 마구 탕진하게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이러한 집착이란 것은, 자기를 그렇게도 심히 소모시키면서도, 아무런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고, 아무런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니, 자기 심적 상태(마음)를 참으로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무엇에든 집착스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며, 당신의 인생을 마구 후퇴시키는 훼방꾼에 다름 아닐 것이니,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느껴지거들랑, 그때그때 잘 털어내는 것이 참으로 필요하겠다.
특히, 당신이 최근 한두 번 이러한 집착스런 마음에 당했다고 한다면, 더 이상은 당하지 않도록, 더 이상은 당신의 소중한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그래서 당신의 소중한 시간과 마음을 결코 까먹지 않도록, 부디 당신의 마음을 아주 강하게 먹고서, 그러한 부질없는 집착의 마음과 바로 절교를 선언할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겠다.
때로, 집착과 혼동하기 쉬운 집중이라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사실, 집중은 차라리 집착과는 정반대적 개념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집착이 부질없이 행사되고 아무런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마음이라고 한다면, 집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매우 바라는 것 혹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에 자기 마음을 솟아 부어, 그 결과나 성과를 만들어내기가 상당히 용이해지는 그러한 훌륭한 마음일 것이니 말이다.
또한, 제대로 행사되는 집중의 마음은, 무엇이든 대충대충 하게 하려는 마음을 잠재우고, 제대로 혹은 아주 바람직한 방향으로 당신의 생각과 행동을 이끌어 내어, 아주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주는 방향타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집중이라는 것은, 그냥 무엇에 몰두할 수 있는 마음의 수준을 넘어서서, 당신이 추구하는 일이 지극히 원하는 방향으로 잘 흘러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러한 것이어야 하고, 그 결과의 성패를 떠나서도, 당신에게 경험적인 측면에서도, 유무형의 결실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가치로운 성과를 안겨줄 수 있는 그러한 것임이 아주 당연하다.
그러니, 이러한 집중의 마음을 잘 간직하게 되면,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것을 절대 적당한 수준에서 봉합하려 하지도 않게 될 것이며, 어렵거나 힘겨운 삶의 전쟁터에서 적군과 적당히 타협하여 대충 마무리하려는 그러한 나약한 마음을 가지지도 않게 해 줄 것이다.
진정 당신에게 가치로운 ‘참 집중’이라는 것은 언제나 정도를 걸어가는 마음이어야 하고, 당신 생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향한 불굴의 마음이어야 할 것이고, 도중에 엉뚱한 훼방꾼이나 타협자에게도 결코 꺾이지 않는 그러한 꿋꿋한 마음이어야만 하겠다.
이렇게 제대로 된 참 집중의 마음을 잘 지니어, 매사 당신이 이 땅에서 진정 원하는 바(하고자 하는 바 혹은 이루고자 하는 바, 자기 고유의 가치 등)에 잘 매진하여 보아라.
즉, 어설픈 폼이나 가오 같이 부질없는 마음들을 잘 자제해 내고서, 무엇에든 한결같이 도전하고 매진하여, 결국 당신이 이 땅에서 진정 원하는 바를 잘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한번 해 보아라.
그렇다면, 만약 당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 원하는 바를 잘 알아낼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아라.
답을 구할 때까지 질의를 계속하여라.
언젠가는 분명히 응답이 올 것이다.
세상일은 어차피 자신이 진심으로 질의한 대로, 진정 간절히 바라는 대로 흘러갈 공산이 매우 크다.
마치,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 말하는 대로, 간절히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처럼 말이다.
다섯째, 논리보다, 호소보다 양보가 우선이다.
어떤 대립되는 사안을 맞닥뜨려서, 처음에는 당신의 명쾌한 논리와 감정적 호소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 그러한 대립적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라면, 과연 당신의 명쾌한 논리보다, 호소력 짙은 말보다, 오히려 양보가 더 우선되는 것이 좋다.
이 말을 좀 더 확장하여 표현해 보면, 우리가 어떤 첨예한 논쟁이나 다툼에 있어서, 자기 말이 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하여도, 아무리 합리적이라고 하여도, 아무리 정의롭다고 하여도, 아무리 당신의 입장을 잘 설파하여도, 결코 의견의 합치를 이루어 내기 어려운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매우 양보를 잘한다고 한다면, 매우 배려심이 큰 사람이라면, 매우 마음을 선하게 행사한다고 한다면, 아마 매우 쉽게 그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당신이 이렇게 양보를 잘하게 되면, 처음에는 손해를 본다고 느 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길게 내다본다면, 꼭 그렇게만 생각할 상황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상대가 그렇게도 정색을 하여 주장하고 있는데, 당신이 꼭 이겨먹어서 과연 무엇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용기를 좀 내어, 흔쾌히 양보를 잘해 줄 수만 있다면, 처음에는 져 주는 것 같아도, 결국은 당신이 이긴 것이나 다름없을 수 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상대가 겉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든 안 하든 간에, 기꺼이 양보를 해준 당신에게 매우 고마운 마음이 들 것이고, 이러한 고마움의 감정은, 다음번의 또 다른 사안에서, 결국 당신이 양보를 받아낼 수도 있게 해 줄 수 있고, 당신을 향한 상대와 주변인들의 시선을 매우 호의적으로 만들어 주는 등, 어떻게든 당신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점차 흘러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이런 현상은 아마, 큰 용기를 가지고서, 기꺼이 먼저 양보를 행한 사람이 오히려 심리적 주도권을 쥐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어떤 첨예한 상황에서도 논리를 너무 앞세우지 말아라.
당신의 입장을 헤아려 달하고, 너무 호소를 하지도 말아라.
당신의 논리와 호소가 거의 안 먹히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주장을 하는 것은 더더욱 피하여라.
이럴 경우, 차라리 당신 전면에 양보를 앞세워 보아라.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주 여유롭고 느긋한 양보의 마음으로, 아주 부드럽지만 강한 눈빛으로 상대를 한번 압도하여 보아라.
상대의 주장이 매우 강하다면, 상대의 절심함이 매우 크다면, 더욱더 그렇게 하여라.
상대를 그냥 한번 믿어보아 주어라.
당신이 매사 자신감이 우뚝한 사람이라면, 몇 수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길은 양보로서 상대를 심리적으로 이겨내는 상황일 것이고, 역설적으로는 양보로서 상대를 정신적으로 굴복시킨 경우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그 어떠한 논리력보다, 그 어떠한 호소력보다 양보가 더 위대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여섯째, 끝까지 일관성과 평정심을 견지하여라.
여러 복잡하거나 착잡한 일들로, 네 마음이 매우 혼란스럽더라도, 세상일이 마구 어지럽더라도, 끝까지 당신의 일관된 입장과 지극한 평정심을 잘 유지하고서, 사태가 다시 잘 정리되어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즉, 어려울 때일수록 아주 고요한 마음으로, 아주 평정한 마음으로 끝끝내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때까지 네 입장의 일관성 또한 잘 버텨내게 하여야 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도모할 때, 그 일의 좋은 결과를 위한 토양이 완전히 정착될 때까지, 상황이 완전히 무르익을 때까지, 잘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 그 일의 성공에 참으로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다.
혹여, 작은 중간 결과에 섣불리 만족해하거나, 최종 결과를 속단하여 마구 날뛰다가, 만약에 그 결가가 예상과는 아주 정반대로 나오게 된다면, 당신의 실망이 너무나 커질 것이며, 그래서 당신 마음을 심히 다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도면, 모든 일은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고, 당신의 자존심 또한 매우 혼미해질 것이니, 과연 얼마나 아파올 것인가?
또한, 상대와의 크고 작은 다툼에서도, 절대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자기 말의 일관성과 주장하는 바에 대한 평정심 등을 잘 유지해야만, 상대와의 보이지 않는 대결 구도에서 상대의 심리를 점차 압도해 나갈 수 있다.
자칫, 당신이 말을 이리저리 바꾸게 되거나, 주장하는 바가 오락가락하게 되면, 당신의 신뢰가 바닥을 치게 되어, 결국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수가 있고, 보이지 않는 암묵의 심리 전쟁에서 결국 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항상 자기 일관성과 평정심을 끝까지 잘 유지하고서, 자신에게 절호의 기회가 올 때까지 잘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내 참고, 자기 기회를 잘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며, 자칫 조급한 마음으로 자기 입장을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이야기하거나, 그때그때 말을 바꾸게 되면, 결국 상대에게 약점을 크게 잡히고, 자기 마음속에 아주 큰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곱째, 세상 순리를 따라라.
욕심을 버리고, 물 흘러가듯, 바람 불어가듯, 세상만사가 자연스럽게 변해가듯, 세상 순리의 길을 잘 찾아, 끝내 따르려 해 보아라.
이러한 길은 소중한 당신의 마음을 아주 잘 케어해 줄 것이며, 항상 당신의 생을 아주 산뜻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신이 도모하는 모든 일에는, 결국 ‘진인사 대천명’의 마음이 참으로 필요할 것이다.
즉, 항상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놓고, 그 결과를 결코 섣불리 짐작하려 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세상 순리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이다.
모든 결과는 그야말로 하늘에 맡기고서, 인간은 그저 잘 기다릴 줄만 알면 된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나중에 결과가 안 좋게 나오더라도 결코 누구를 원망하거나, 마구 한탄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
오직 진인사대천명의 논리에 따라, 당신이 모든 일의 결과를 하늘에 맡겼으니, 결과가 좋게 나오든, 안 좋게 나오든 간에, 당연히 잘 수용하여야 할 것이며, 만약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하여 결코 원망을 하려 하거나, 불평을 늘어놓는 그러한 자의적이고 소인배의 마음은 자기 욕심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억지로 하려 하지 말고, 엉뚱한 꼼수로 무슨 이득을 보려 하거나,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 아주 가식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행동은 더더욱 삼가고서, 오로지 자연스럽고도 아주 합리적인 마음을 잘 견지하여, 진심을 다해 자기 생의 미션을 완수애 나가려는 그러한 대의적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는 것이 좋겠다.
이러한 삶이 바로 진인사대천명의 삶일 것이요,
지극히 생(生)의 순리를 잘 따르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항상 당신 스스로를 아주 산뜻하게 하여라.
당신의 소중한 마음을 늘 잘 케어해 내어라.
결코 다치지 않게 하고, 늘 잘 보듬어 내어라.
그리하여, 아주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준비된 상태로 만들어 두어라.
그러고는 당신의 때를 잘 기다려라.
완전히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라.
작은 성과나 순간순간의 기쁨에 취하지 말고, 경거망동은 더더욱 삼가고서,
오직 순리에 따르는 자연스런 결과만을 기대하여라.
이미 아주 차분하고 산뜻하게 준비가 잘 되어있는 당신은 아마 아주 큰일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중에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을 봉착하여서도, 끝까지 당신의 평정심을 잘 버텨내고서, 당신의 말에는, 당신의 행동에는 늘 일관성을 잃지 않도록 하여라.
당신 주변을 향하여서는 항상 그득한 신뢰를 보여주고, 언제나 꿋꿋한 모습을 견지해 나가라.
그래서, 지극히 순리를 따르는 방향으로, 마치 당연한 방향으로 당신의 세상 미션을 결국 이루어 내어라!”
“끝”